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 5월을 보통 '가정의 달'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이 있고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1일은 부부의 날입니다. 이 가정의 달이 끝나갈 즈음 대형 뉴스가 하나 나왔습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판결입니다. 오늘은 '세기의 이혼'이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 뉴스의 맥락을 차분히 들춰봅니다. 재벌가 사생활에 관한 가십이라고 하기엔 이 판결 전후 드러난 시사점이 적지 않습니다. 3분 동안 기사 한 편 읽고 대화 이어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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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이혼' 소송에 담긴 의미 2024. 6. 5. 유선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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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간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1조원대 재산분할을 명령하면서 '노 관장의 가사노동 기여'를 인정했다. "내조와 가사 노동만으로는 사업용 재산을 나눌 수 없다"는 1심 재판부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는 가사노동의 개념·가치와 공동재산 기여 정도를 더욱 폭넓게 해석하는 최근 판례를 반영한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재산분할 제도는 1990년 1월 민법을 개정하면서 등장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재산은 주로 남성 소유로 추정됐고, 여성 배우자의 재산 형성은 일반적이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남성 배우자와 비교해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인 경우가 많은 여성 배우자의 권리 보장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법이 개정됐다. 부부간 경제적 독립이나 실질적 불평등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였다. 재산분할 제도를 마련했지만 재산 형성과 유지에 대한 기여 범위와 대상에 대한 논쟁이 이어졌다. 해외에선 법으로 형평에 따른 재산분할 비율을 정하고 있지만 국내에선 재산분할 비율과 범위, 대상 등을 법으로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개별 이혼 사건마다 재산 기여도에 대한 법원의 해석과 판례가 쌓이면서 기준이 형성됐다. '특유재산'은 이 논쟁을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민법은 특유재산을 "부부 중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과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정한다. 결혼 전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주식, 부동산 등이 대표적이다. 특유재산은 혼인 전 취득한 재산이기 때문에 혼인 뒤 배우자의 기여가 없는 한 이혼소송에서 재산분할 대상으로 포함되지 않는다.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에서도 SK그룹 주식을 특유재산으로 볼 것이냐가 핵심 쟁점이 됐다. 최 회장 측은 "SK그룹 주식은 선대로부터 증여·상속받은 특유재산이라 재산분할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최 회장 쪽으로 기울었다. 재판부는 "사업용 재산을 가사노동에 의한 간접적 기여만을 이유로 재산분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SK주식은 특유재산으로 보고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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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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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심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최 회장 명의의 계좌거래 등을 보면 과거 SK주식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선대 회장 돈만으로 매입한 것이 명확히 입증되지는 않는다고 봤다. 오히려 SK그룹이 성장하는 데 노 관장의 선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자금이 쓰였다고 봤다. 당시 노태우 정부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사업 진출에 길을 터주는 등 노 전 대통령을 포함한 노 관장 측의 유·무형적 기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노 관장이 혼인기간 가사 및 양육을 담당했고' '그러는 사이 이뤄진 최 회장의 경영활동이 SK주식 가치 상승에 기여했으며' '노 관장은 SK그룹 산하 워커힐 미술관 관장이 된 이후 미술관 후신인 아트센터 나비 관장으로 재직한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가사노동 및 양육과 일정한 영역의 대외활동 등을 통해 가족관계를 비롯한 일정한 영역에서 최 회장의 대체재 내지 보완재 역할을 담당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최 회장의 경영활동과 SK주식의 가치 유지 및 증가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는 대법원 판결 추세와도 비슷하다. 대법원은 1998년부터 특유재산 인정의 예외 범위를 점차 넓혀 왔다. 대법원은 재산분할 제도의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특유재산을 취득하고 유지함에 있어서 상대방의 가사노동 등에 의한 내조가 직·간접으로 기여했다면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파격적인 결과가 아닌 법리 그대로 적용한 재산분할 판결"이라며 "가사노동이 과거엔 집안 업무에만 국한됐다면, 최근에는 가사 전반에 관한 기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가사노동'에 대한 직·간접적인 기여는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는 지난달 30일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3808억1700만원,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이후 최 회장 측은 대법원에 상고 뜻을 밝혔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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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노소영' 같은 이름을 다 지우고 보면 이혼 재산분할 시 가사노동 몫을 인정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경향신문은 이미 지난 2010년 가정법원이 이혼하는 전업주부에게 재산의 반을 분할하는 추세가 뚜렷해졌다고 보도했어요. 이번 최태원-노소영 이혼 관련 2심 판결은 이 경향을 다시 확인하면서, 분할 대상인 재산에 대해서도 진전된 판단을 내렸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재산'의 문제를 좀 더 들여다봐야 합니다. 판결 후, 우리는 지극히 한국적인 장면 두 가지를 볼 수 있었어요. 하나는 SK그룹 사장단이 6월3일 최태원 회장과 긴급회의를 연 장면입니다. 이 그림은 무척 어색합니다. 미국 빅테크 기업의 회장(가령, 메타 플랫폼스의 마크 저커버그)이 이혼했다며 그 기업의 핵심 경영진이 모여 긴급회의를 여는 장면을 상상하면 그렇습니다. 이혼은 명백히 회장의 사생활에 속하니까요. SK그룹은 재판부가 지적했듯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는 역사를 지녔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재임기간 1988~1993년)의 딸 노소영과 선경그룹 장남 최태원의 결혼, 1991년 선경그룹에 흘러든 노태우의 비자금 300억과 태평양증권 인수, 정권의 지원 논란 끝에 선경그룹이 한국이동통신 인수…. 재벌 SK그룹은 이렇게 혼맥에 기반한 정경유착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용 재산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경영자·소유자와 별개 인격체로 독립해 존재하는 사업체의 존립·운영이 부부간 내밀하고 사적인 분쟁에 좌우되게 하는 위험이 있다"는 1심 재판부 판결을 보면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SK그룹과 최태원, 노소영, 그리고 노태우까지 공과 사가 마구 얽힌 역사에 눈을 감은 셈입니다. 어느 유명한 문구를 비틀어 쓰면 '성공한 정경유착은 분리할 수 없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였죠. 이번 판결 직후 SK그룹의 지주사 SK(주)의 주가는 한때 15% 급등했습니다. 소유주 일가의 악재가 증시에는 오히려 호재가 되는 풍경, 이 또한 들춰봐야 할 지극히 한국적인 장면입니다. 섬유회사였던 선경은 증권사와 통신사를 합병해 그룹사로 덩치를 키웠습니다. 문제는 계열사 중 하나에 불과한 선경의 장남 최태원이 어떻게 전체 그룹사를 휘어잡을 수 있었느냐는 점입니다. 시민단체 경제개혁연구소가 2019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최태원은 자신이 최대주주인 회사 SK C&C를 통해 무려 8만4403%란 '경이로운' 수익률을 올렸습니다. 이 회사는 SK텔레콤 등 SK그룹 계열사의 전산 용역을 도맡으며 성장했습니다. 전형적인 일감 몰아주기입니다. 그리고 2015년 SK C&C와 SK그룹의 지주사 SK(주)의 합병이 일어납니다. 최태원의 SK(주) 지분이 0.02%에 불과했지만, 그가 최대주주인 C&C는 SK(주) 지분 43%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C&C와 SK(주)는 1:0.74의 비율로 C&C 우위로 합병됐습니다. 작은 회사가 큰 회사를 먹은 셈입니다. 당시 SK(주)와 C&C 지분을 보유했던 국민연금이 "SK(주)의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며 합병에 반대했을 정도로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번 이혼 재산분할 판결 이후 SK(주)의 주가가 뛴 것은 바로 이렇게 확보된 최태원 일가의 지배력이 약해지고, 그 와중에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란 분석이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식 거래 관련 세금 폐지를 약속하며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가 저평가되는 현상)를 해소하겠다"고 말한 적 있습니다. SK그룹과 같은 재벌이 한두 곳이 아닌 한국,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진짜 원인은 무엇일까요? 여전히 문제는 재벌입니다. 미국 언론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 슐리 렌은 지난 6월5일 이렇게 썼습니다. "(한국의 재벌가는) 실제 부를 감추기 위해 미로처럼 얽힌 지주회사를 상장해 전체 주식 시장을 희석시키고 있다." 그리고, 최태원·노소영의 이혼 과정을 드라마에 빗대 이렇게 덧붙였어요. "완고한 K-디스카운트는 K-드라마로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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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태원·노소영 이혼 2심 재판부는 노소영의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노소영의 가사노동이 최태원의 SK그룹 주식 등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판단했다. ✦ 2. 최태원의 재산 형성은 정경유착의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일감 몰아주기나 불공정 합병 등 재벌 고착 과정에서 일어나는 반시장적 행위로 가능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 3. 여전히 문제는 재벌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이다. 블룸버그통신 칼럼니스트는 "완고한 K-디스카운트는 K-드라마로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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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에 남은 노인들이 그저 소일거리로 공공근로를 하며 생계를 영위하는 모습, 조용함을 넘어 고요함, 적막함이 감도는 시골 마을은 미래 한국 사회 모습이 아닌,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입니다. (하얀나라님) 📬 저는 지방도시에서 나고 자라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청년입니다. 제 선배, 친구들은 다 수도권으로 떠나고 남은 사람은 몇 없네요... 오늘 뉴스레터는 제 고향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착잡합니다. (뱀술님) 📬 글을 읽으면서 서울의 쓰레기 매립장 문제가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서울을 "살고 싶어하는 도시"로 생각하지, "쓰레기 있는 도시"로 만들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군요. 충청도에 사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익명의 독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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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죽어야 사는 지방도시>를 읽은 독자님들께서 보내주신 이야기입니다. 이 레터에서 점선면 독자님 네 분 중 세 분은 서울·경기 거주자라는 자체 설문 결과를 전해드렸는데요, 지방소멸 문제에 수도권과 비수도권 가리지 않고 점선면 독자님들께서 큰 관심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어요. 공동의 문제를 늘 진지하게 함께 고민해 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난 11일 점선면 <🏫 학생인권이 학교를 무너뜨릴까?> 레터에서 정정할 부분이 있어요. 생각대로가자 독자님이 아직 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된 게 아니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현재 서울시의회는 조례 폐지안에 대한 재의결을 요구받았고, 충남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당분간은 두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의 효력이 있어요. 정확히 정보를 전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 밖에도 독자님들이 다양한 의견을 남겨주셨습니다. 지난 레터는 최근 이슈가 된 사건들과 학생인권조례의 '관계 없음'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는데요, 독자님들이 이 밖에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셨습니다. 학교마다 상황이 너무 다르다는 점, 학생 자치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 특히 공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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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교사에게 자녀 관련 상담을 신청하는 것조차 주저할 만큼 교사를 어려워하는 학부모도 많습니다. 게다가 내신 성적과 세특/행특 한 줄이 입시에 영향을 미치기에 고등학생들과 고등학생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느끼는 부담은 상상 이상입니다.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찍힐까 봐' 못하는 현실이죠. 특정 교사의 문제가 모든 교사의 문제가 아니고, 특정 학부모의 문제가 모든 학부모의 문제가 아닌데 자꾸만 갈등과 대립 구도로 몰아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국제학교 경험이 있는 부모들은 소위 문제행동을 하는 학생을 교장이 직접 해결에 나서고, 특히 왕따 같은 괴롭힘이나 수업 방해 등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것에 반해 한국 학교는 교장 교감은 무엇을 하고 있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정책입안자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선진국 사례' 중 왜 이런 건 적용이 안 되는지 의문이지요.
내가 학교를 졸업하면, 내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면, 교육계에 무관심해지거나 내 경험 수준으로만 기억하고 말을 얹는 게 교육 이슈인 듯합니다. 그래서 정작 교사와 학부모들은 A라는 정책이 간절한데 다수 유권자가 보기에 B라는 정책이 그럴듯해 보이면 ‘다수결’로 B로 정책 방향이 설정되는 것도 문제고요. 출생율 저하로 결국 교육에 직접 관련자들이 줄어 교육 정책이 더 산으로 가게 될까 싶은 마음으로 긴 글 남겨봅니다. (익명의 독자님)
📬 학생과 교사의 대립으로 볼 게 아니라, 학교도 조직이라면, 일하는 직원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지 근로자의 인권/안전 체계를 검토해봐야죠. 돌봄교사, 방과 후 교사, 기간제 교사 등 더 힘없는 교사들이 수두룩하죠. 아이를 키우고, 학부모가 되어보니, 학교 안의 권력생태계도 눈에 보이더군요. 더 많은 권한을 가진 사람이 좀 더 고민하고 책임지는 학교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최고 관리자의 책임을 묻는 법이듯이요. (지렁이언니님)
📬 청소년 인권에 대해서 아직도 한국 사회가 굉장히 보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레터도 학생의 주체성보다는 학생을 더 잘 보호하는 교사와 그런 교사를 위해 필요한 장치에서 그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청소년 인권운동의 맥락이 더 반영되는 진보적 관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익명의 독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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