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신림동, 분당 서현역에서 있었던 흉기난동 사건을 기억하실 거예요. 경찰은 이후 이런 이상동기 범죄를 사전에 막겠다며 대대적으로 조직을 개편해 기동순찰대, 형사기동대를 설치했습니다. 치안사각지대, 사람이 많은 거점 지역을 순찰해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경찰에게 홈리스는 범죄로부터 보호해야 할 시민보다는 단속하고 감시해야 할 잠재적 범죄자에 가까웠나 봅니다. 홈리스행동이 지난 6월7일 발표한 '2024 홈리스 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지하보도,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홈리스에 대한 강제퇴거 및 부적절한 불심검문이 다수 발생했습니다. 기동순찰대와 형사기동대가 신설된 뒤 불심검문이 늘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 가운데 조씨는 살인 범죄의 피해자가 됐습니다. 그것도 기동순찰대가 설치된 이유였던 이상동기 범죄로, 도시 한복판에서요. 뼈아파야할 일이지만 경찰은 어떤 메시지도 내놓고 있지 않습니다. 윤희근 경찰청장이 전국 시·도 경찰청장과 긴급 화상회의를 열고 "모든 수사력을 집중하라"고 지시하는 등 분주했던 지난해 이상동기 범죄 발생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경찰이 이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세상이 조용하기 때문입니다. 왜 어떤 죽음의 무게는 너무나 무거워 반성을,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어떤 죽음은 너무나 가벼워 제대로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걸까요. 조씨를 알고 있던 또 다른 홈리스 김씨의 말이 서늘하게 다가왔습니다. "왜 하필 조씨였을까. 내가 됐을 수도 있었을까?" 어쩌면 조씨의 죽음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됐을 수도 있었다'는 감각을 떠올리게 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홈리스의 삶과 죽음이 대중에게 너무 먼 일이기 때문, '내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2021년이 떠올랐습니다. 그해 4월, 서울 성북구 장위동 재개발 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해 한 60대 일용직 노동자가 매몰돼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매몰 현장에 간 이후 마음이 쓰여 후속 보도를 몇 차례 했는데요, 쓰는 것마다 단독이었어요. 저 말고는 아무도 취재하지 않았거든요. 제 기사를 받아쓰는 매체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기삿거리가 아닌가?' 저조차 의심이 들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의문점이 없는 죽음이 아니라, 누구도 묻지 않는 죽음이었습니다. 이 일용직 노동자가 매몰된 날은 한강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실종됐던 의대생이 주검으로 돌아온 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일주일 전에는 평택항에서 일하던 한 대학생이 300kg의 컨테이너 날개에 깔려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상은 의대생의 주검에 주목했습니다. 대학생이 당한 산업재해는 그보다 관심을 받지 못했고, 60대 일용직 노동자의 죽음은 그보다도 더 쓸쓸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하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려주는 장면들을 마주합니다. 기자로서의 역할은 무엇일지도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죽음의 무게'를 생각하면 꼭 떠오르는 글이 있어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 인류학자 김현경 교수가 < 오늘의 교육>에 게재한 글의 일부를 공유하며 글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