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가 안 맞는데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15일 연평해전 25주년을 맞아 "25년 전의 역사는 평화는 강한 힘으로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해 왔어요. 힘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군대에서, 군인들에게서 나온다면 윤 대통령의 메시지는 공허하기만 합니다. 군인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손제민 논설위원이 이 점을 지적합니다. 3분 정도 칼럼을 읽고 더 이야기 나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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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힘은 누가 낼까 2024. 6. 13. 손제민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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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육군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병이 수류탄 사고로 숨졌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20대 때 악몽이 떠올랐다. 훈련소에서 처음 수류탄 안전핀을 뽑으며 느꼈던 극도의 긴장감과 불길한 상상 말이다. 수류탄은 적절한 시점과 장소에 투척하지 않으면 내 주변에서 터지거나 상대방이 집어서 다시 던질 수 있는 무기이다. 근접전에서 자신도 죽을 각오를 하고 던진다는 점에서, 어쩌면 '인간적인' 무기라고 할 수도 있다. 각종 '무인' 첨단무기가 전시되는 시대에 이 재래식 무기를 쓸 일이 있을까. 도도한 탈냉전 분위기 속에 군 생활을 한 나는 거의 없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질문에 누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와 중동, 그리고 오물 풍선을 뒤집어쓴 우리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한반도가 또다시 전쟁 위기를 맞고 있다. 언젠가부터 남쪽에 보수정부가 서면 꼭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놀랍지 않다. 그런데 이번엔 좀 다른 점이 있다. 유난히 많은 장병의 죽음 속에 맞는 위기라는 점이다. 해병대원이 구명조끼 없이 수해 현장에 투입됐다가 죽고, 훈련병이 비인간적 군기훈련을 받다 죽고, 그보다 더 많은 장병이 자살'당했다'. 군 집계에 따르면 2013~2022년 그렇게 숨진 군인이 891명에 달한다. '전투 중 사망'이 아니다. 군 사망 사건이 민간 경찰로 이첩된 2022년 7월 이후 알려지는 사례가 많을 순 있다. 군 사망률이 바깥보다 낮다고 하나 징집된 병사들에겐 위안이 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장교, 준·부사관, 군무원 사망엔 적용돼도 병사들에겐 안 된다. 대통령은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하는데, 그 힘이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알까. 수류탄을 던질 힘을 누가 내는가. 안다면 해병대 사망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렇게 조직적으로 방해하진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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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훈련을 받다 쓰러져 숨진 박모 훈련병을 추모하기 위한 서울 용산역 광장 시민 분향소. 한수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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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목숨 경시는 휴전선 이북에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3월 북한 매체에 공수부대 훈련 장면이 공개됐다. 강풍이 부는 날이었지만 김정은 부녀 참관하에 강행된 훈련에서 낙하산 줄이 서로 꼬이고 충돌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사상자가 발생했을 수 있다. 자해적인 훈련 강도는 북한에서 더 심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정권을 초월해 '방산 수출'을 성과로 자랑하는 이 나라에서, 반전·평화 목소리가 들어설 자리는 매우 작다. 작은 가능성이나마 군대에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 젊은이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정치사상가 더글러스 러미스의 <래디컬 데모크라시>에 나오는 '근원적 민주주의'를 새겨보고 싶다. 미국 해병대원이기도 했던 저자는 민주주의의 본래 의미가 '권력이 민중의 손에 있는 상태'임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보이콧을 통해 체제 균열과 틈새가 만들어지는 상황에 주목한다. 보이콧은 체제 안에서 일을 직접 떠맡는 노동자들이 의무로 주어진 업무 수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옛 로마 공화국 초기 계속된 전쟁 차출과 빚에 시달리던 평민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도시 밖 몬스사케르(거룩한 산)에 올라가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될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한 뒤 결국 호민관 제도를 끌어낸 것이 좋은 예다. 1917년 독일·오스트리아군과 참호전을 벌이던 러시아군이 스스로 교전 중지를 결정하고 전장에서 걸어 나감으로써 케렌스키 임시정부 붕괴, 10월 혁명으로 이어진 것도 비슷한 사례다. 주권자는 원로원도 집정관도, 케렌스키도 사령관도 아닌, 전투를 수행한 평민과 노동자들이었다. '병사들은 퇴장해버림으로써 투표했다.' 국가는 입대 '자원'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아무도 군 병력 감소를 의도하진 않았다. 다만 이 사회의 여성과 남성들이 출산하지 않음으로써 '전쟁터' 같은 삶을 강요하는 현 체제에 반대표를 던지고 있다. 그 와중에 우연히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군대라는 공간에 가서 갇혔는데, 목숨까지 바치라니. 군 복무 경험 없는 정치인들이 풍선을 격추하라고 핏대를 올릴 때 정작 수류탄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속으로 분노한다. 사령관의 '즉강끝' 얘기를 듣고는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부패한 엘리트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부조리가 넘쳐나는 이 국가를 위해 내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한다면, 북한 군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계속 반복될 지금의 위기는 결국 양측의 총알받이들이 주권자로서 힘을 인식할 때 비로소 해결의 단초를 찾을 것이다. 민주주의가 평화를 만드는 힘이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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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19일 경북 예천군 내성천에서 집중호우 실종자를 수색하라는 지시를 받고 물에 들어갔던 해병대 채모 일병(사후에 상병 추서)이 사망했습니다. 지난 5월21일에는 한 육군 훈련병이 훈련 도중 수류탄 폭발 사고로 숨졌고, 4일 뒤에는 육군 12사단 한 훈련병이 군기훈련(얼차려)을 받다 쓰러져 숨졌습니다. 매년 100명 안팎의 군인이 목숨을 잃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사나흘에 한 명꼴로 군인이 죽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의 죽음은 원인이나 그에 따른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채 묻힙니다. 채 상병 사건은 그 갈림길에 선 사건이었습니다.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에게 이 사건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는 수사보고서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했습니다. 다음날 예정됐던 언론 브리핑은 2시간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취소됐습니다. 경찰에 이첩됐던 수사보고서는 회수됐고, 박정훈 대령은 수사단장에서 보직해임됐습니다. 이 과정에 대통령이 개입했는가, 즉 '수사 외압 의혹'이 또 다른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사실이라면 황당할 노릇입니다. 2021년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사건 이후 성범죄, 과실치사 등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범죄 등에 대해서는 민간에서 수사할 수 있도록 군사법원법이 개정됐습니다. 군에서 발생한 사건을 군에서만 수사하면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려는 시도가 반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거든요. 그런데 여전히 사실조사, 내사 등 초동단계는 군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법 개정 취지가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채 상병 사건은 이 허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군의 조사가 엄격하게 이뤄져도 민간에 이첩되는 과정에서 뭉개질 수 있다는 걸 드러냈어요. 그렇다면 군 밖, '민간'은 믿을 만할까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채 상병 사건 수사에 돌입한 와중, 윤석열 대통령은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 대사로 임명해 비판받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는 기소권이 없어 검찰이 최종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수사 중립성 담보를 위해 특검을 통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렇게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을 발의했습니다. 대통령은 "특검법이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고, 특검 제도 취지에 맞지 않으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고요.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윤 대통령이 어느 대통령보다도 강하게 보훈과 안보를 강조하는 대통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해 국가보훈처를 '부'로 승격시켰습니다. 군에 대해서는 "압도적인 대응 능력을 갖추고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전투형 강군으로 거듭나"고 "북한의 도발 심리를 꺾어놓을 만큼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는 국방 혁신의 목표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보훈요양원을 방문했고요. 인구 감소로 군 병력은 줄고, 입대한 사람들은 변함없이 죽어가고, 국가는 죽은 이들에 대해 여전히 진상 규명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연 군이 힘을 낼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부름에 응답한 분들을 정부는 어떤 경우에도 잊지 않을 것이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런 국가는 미래가 없다." 모두 윤 대통령이 한 말입니다. 공허한 말잔치가 되지 않으려면 여태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 6월21일, 채 상병 특검법은 다시 국회 법사위 문턱을 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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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전쟁이 없이도 군인이 사나흘에 한 명꼴로 죽고 있다.
✦ 2. 대통령은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한다. 그 힘이 누구에게서 나오는지 아는 걸까.
✦ 3.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개인들이 주권자로서의 힘을 인식할 때 위기 해결의 단초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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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솜방망이 처벌' 범죄였던 동물학대, 공중밀집 장소에서의 성범죄, 직장 고용주 등의 성범죄 양형기준을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들여다 봅니다. 기준은 내년 3월 확정돼요. |
기획재정부는 매년 공공기관 경영실적을 평가합니다. 공공서비스 혜택을 늘리면 경영실적이 나빠져 경비가 깎일 수 있어요. 이 일률적 평가 방식, 괜찮은 걸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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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가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일부를 다시 썼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걸리버 유람기>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공개될 예정이에요. 홍길동이 등장한대요! |
광주·전남의 시민단체들이 건강과 안전이 걸린만큼 재난문자는 이주민도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며칠 뒤 광주고려인마을은 러시아어 문자를 지원하기로 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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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무게를 다르게 보는 것, 왠지 찔리네요. (강쑤기님) 📬 죽음조차 가치있게 기억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세상이 당도한 건 아닐까요. (익명의 독자님) 📬 "공포와 슬픔은 거리에 남았다"로 끝맺음이 아쉽다. 해결 방안으로 맺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익명의 독자님) 📬 때론 끝없는 사건에 지치고 무력감을 느끼실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나마 회복의 시간을 잘 마련하셨으면 합니다. (초특급거북이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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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이토록 가벼운 죽음>을 읽고 남겨주신 의견들입니다. 함께 애도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려요. 독자님들도 답답하고 안타까운 소식 속에서 너무 지치지 않으시기를 항상 바랍니다. 한 익명의 독자님은 해결 방안이 없어서 아쉬웠다는 평을 보내주셨습니다. 레터를 보낼 때마다 최대한 어떤 대안이나마 전하려 머리를 굴려보곤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답이 없는 '문제'들을 독자님들께 던져만 드리게 됩니다. 한편으론 세상 어떤 일이 그렇게 간단히 해결될까 싶기도 합니다. 조씨의 죽음과 그 이후의 일들만 해도 너무 많은 맥락이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읽어내는 것부터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저도, 독자님도 각자의 자리에서 곰곰이 궁리해볼 수밖엔 없을 것 같습니다. 좋은 생각이 나시면 언제든 메시지 남겨주세요. 짧은 레터 속엔 미처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 의견으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아래 버튼을 눌러 의견을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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