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밀양 6월이 다 가기 전 밀양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달 초, 과거 밀양에서 일어난 두 가지 일이 다시 회자했습니다. 20년 전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한 유튜버가 공개하면서 사적 제재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리고 밀양에 고압 송전탑을 설치하기 위해 반대 농성장을 철거한 정부의 행정대집행이 있은 지 10년이 됐습니다. 오늘은 후자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홍근 기자가 밀양을 찾아 당시 행정대집행 현장에 있었던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할머니들은 '웅웅웅' 소리를 내며 전기를 옮기는 송전탑에서, 10년 전 농성장을 부수려 산을 오르던 경찰의 '쿵쿵쿵'하는 걸음소리가 겹쳐들린다고 말합니다. 잠시 기사를 함께 읽고 다시 이야기 나눠요. 기사 일부를 생략했습니다. 전체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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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을 잊은 당신에게 2024. 6. 9. 이홍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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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의 적막을 깬 건 '쿵쿵쿵' 소리였다. 김영순 할머니(70)는 고개를 떨구고 쇠줄로 묶인 가슴을 바라봤다. 심장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한 해 전 송전탑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나무를 잡고 버티다 굴착기에 나무뿌리 채 실려 나간 경험도 있는 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시선을 돌려 산 아래를 내려다봤다. 시골길을 가득 메운 경찰의 군홧발 소리였다. 2014년 6월11일 새벽, 다리가 아파 농성장에 오르지 못한 정용순 할머니(76)는 자꾸만 김 할머니가 눈에 밟혔다. 전날 초저녁에 농성장으로 올라간 음식은 빵 60개, 우유 60개가 전부라 했다. 급한 대로 김밥을 말아 산을 오르는 수녀들의 배낭에 밀어 넣었다. 정 할머니가 할 수 있는 건 마당에 나와 산등성이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행정대집행은 신속했다. 경찰은 자신을 농성장에 묶은 할머니들을 뜯어내고, 자르고, 날랐다. 철컥, 쿵, 쾅 하는 굉음들 소리들 사이에서 인간의 소리는 할머니들의 비명뿐이었다. 웅덩이가 되어버린 농성장을 보며 할머니들은 울부짖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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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고정마을 자택에서 인터뷰하는 김영순 할머니 .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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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대집행으로부터 10년이 지난 7일,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마을 농성장 자리엔 115번 송전탑이 "비석처럼" 세워져 있었다. 송전탑은 '웅웅웅' 소리를 내며 전기를 옮길 뿐이었지만, 고정마을 주민들은 송전탑에서 자꾸만 '쿵쿵쿵' 하는 군홧발 소리를 들었다. "아들이 그래요. 저 철탑은 우리를 따라다니는 거냐고. 마을만 들어오면 어디서든 보이니께는." 김 할머니는 창문 너머로 송전탑을 보며 말했다. 그는 이어 "어떻게 잊겠습니까. 전기 쓰는 서울 사람들이야 까먹겠지마는. 나는 자꾸 눈물이 나서..."라고 했다. 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서게 된 것은 한국전력이 '765㎸(킬로볼트)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다. 울산 울주군 신고리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나르기 위해선 대규모 송전탑이 필요했다. 수도권의 지방 착취라는 논란이 있자, 한전은 종착지를 경남 창녕군 북경남변전소로 변경했다. 2005년 5월 초고압 송전선로가 마을을 관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밀양 주민들은 반대 투쟁에 나섰다. 사람이 살지 않는 곳으로 송전탑 노선을 바꾸거나, 지하화해달라는 것이 주민들의 요구였다. 정 할머니의 남편 안병수 할아버지(75)는 "아는 한전 직원이 송전탑 얘기를 듣더니 '이유 불문하고 얼른 떠나라'고 했다"면서 "전자파가 그만큼 유해하다는 뜻이었다"고 말했다. 2014년 농성장이 철거될 때까지 주민 요구는 같았지만, 한전은 사업성을 이유로 사업을 강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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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송전탑을 '과거의 흉터'로 여기고 있지 않았다. 딱지조차 내려앉지 않은, '지금도 피 흘리는 상처'라고 했다. 송전탑 건설은 완료됐지만, 공사 과정에서 갈라진 마을 공동체는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 할머니는 "한전이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에게만 개별지원금을 주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갈라졌다"면서 "어느 집은 얼마를 받았다는 식으로 한전 직원들이 악의적인 소문을 냈고, 서로를 의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도 "초상 날 때마다 다 같이 불 때고 밥 해 먹고, 명절에 밤새도록 장구치고 윷놀이하며 놀던 동네가 철탑 하나 때문에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중에 보니 경찰들보다 무서운 건 이웃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김 할머니는 행정대집행 이후 마을이 찢어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신경병을 얻었다고 했다. 발이 붓고, 잇몸이 조여드는 탓에 약 없이는 거동조차 힘든 상태였다. 송전탑으로 인한 전자파와 소음 탓에 농사를 포기한 이도 있었다. 이날 찾은 115번 송전탑 옆 자두밭은 버려진 채 잡초로 뒤덮여 있었다. 송전탑과 가까운 나무는 바짝 말라 비틀어져 열매조차 맺지 못했다. 안 할아버지는 "자두 끝에 전자파 측정 장치를 달아 조사했는데 높은 수치의 전자파가 확인됐다"면서 "주인이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과수원을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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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시 고정마을에 설치된 115번 송전탑. 정효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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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남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를 포함한 197개 단체, 1500여명의 시민들은 밀양 송전탑 6·11 행정대집행 10년째를 맞아 '다시 타는 밀양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모였다. 10년 전 전국에서 송전탑 건설 반대에 뜻을 같이 하는 시민들이 탑승했던 '밀양행 희망버스'가 재현된 것이다. 이날 현장에 모인 시민들은 "윤석열 정부는 지난달 31일, 핵 폭주를 실현할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발표했다"면서 "또 다른 밀양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은정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장은 "삶터를 저당 잡혀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또 실어 나르기 위해 수백킬로 떨어진 곳의 피해를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부정의한 에너지 구조는 이제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는 핵발전소 4기를 더 짓고 게다가 2038년까지 그 어떤 노후 핵발전소 폐쇄도 없이 총 30기를 가동하겠다는 '에너지 탐욕'을 보여주었다"면서 "기후 위기를 심화시킴은 물론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밀양을 반복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주 월성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 황분희씨는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다"라면서 "발전소가 내뿜는 방사능으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피폭된 상태다.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인희 녹색연합 활동가도 "11차 전기본은 여전히 전기가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전기를 많이 쓰는 곳의 전기는 스스로 생산하고 책임져야지, 더 이상 장거리 송전과 지역의 희생에 기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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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일구고 돼지를 키우던 밀양 주민들은 마을을 관통하는 송전탑이 들어온다는 계획을 알게 됐습니다. "땅만 파먹고 사는 할머니들을 대체 왜 죽이려고 하느냐" "돈 필요 없다. 평생 살던 곳에서 안전하게 살고 싶다"며 공사를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굴착기 등 장비에 쇠사슬로 몸을 묶거나 한국전력 직원과 실랑이를 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이가 다쳤습니다. 고령의 주민들에겐 매일 산을 오르내리고 뙤약볕에 자리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두 명의 주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014년 6월11일 2000여명의 공무원·경찰이 송전탑 건설 반대 농성장에서 주민들을 끌어내고 농성장을 철거했습니다. 송전탑은 완공됐습니다. 서울 등 도시 곳곳에서도 154㎸의 고압송전탑을 볼 수 있습니다. 밀양에 들어선 건 이보다 18배 많은 전기를 보내는 765㎸ 송전탑입니다. 서울·인천·대구·대전·부산·광주 등 대도시에는 단 한 개도 없는 이 송전탑이 밀양에만 69기가 세워졌습니다. 마을 어디서든 40층 높이의 송전탑이 보입니다. 이홍근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김영순 할머니 머리 위에, 정용순 할머니 뒤편에도 있어요. 고개를 들면 어디서든 폭력의 결과물인 송전탑이 보이는 곳을 떠나지 않으면서, '분열이라면 우아한 소리고 마을이 그냥 쪽사리 나(< 전기, 밀양-서울> 중)' 서로 인사도건네지 않는 이웃을 마주치면서, 하루하루 그렇게 10년을 살아내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주민들이 있습니다. "우리 반대 주민 150가구는 지난 12년 사이에 두 사람이 목숨을 끊고, 수백 명이 경찰서, 검찰청, 법원을 드나들고 철탑도 다 섰지만, 해야 할 일들이 있어 지금도 합의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막는 일입니다." 송전탑이 다 세워진 뒤에도, 밀양 여수마을 주민 김영자씨는 경향신문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밀양 송전탑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전제로 추진된 사업이라 송전탑이 세워진 이후에도 주민들은 신고리 원전 건설 중단에 희망을 걸었던 거예요. 그러나 신고리 5·6호기 건설도 재개됐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은 여전히 한국전력이 주는 합의금을 받지 않고 싸우고 있습니다. '달라진 것이 없어도'요. 책 <밀양을 살다>에 실린 주민의 말입니다. "내가 싸우지 않다가 이걸 봤으면 얼마나 후회했겠나. 송전탑 안 들어오게 하려고 그리도 오래 싸웠는데 그래도 들어왔구나. 그러나 역시 싸웠으니까." 주민들이 10년 간 싸워온 덕분에 공짜로 쓸 수 있는 편한 에너지는 없다는 사실, 누군가의 피해와 희생을 도시의 소비자들은 망각하곤 한다는 사실, 송전선로의 끄트머리에는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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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년 6월11일 정부가 송전탑을 반대하던 할머니들을 끌어내는 행정대집행을 한 뒤로 10년이 흘렀다. 밀양 고정마을 농성장 자리엔 115번 송전탑이 들어섰다. ✦ 2. 주민 김영순씨와 정용순씨는 송전탑이 '과거의 흉터'가 아닌 '지금도 피 흘리는 상처'라고 말했다. ✦ 3. 활동가들은 다시 밀양에 모였다. 원전과 송전탑을 지역에 짓고 수도권 등 수요처에 전력을 보내는 중앙집중형 송전 구조를 타파할 것을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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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전역 조치를 당했던 트랜스젠더 군인 변희수 하사가 숨진 지 1209일 만에 현충원에 안장됐습니다. 안장식 현장 분위기를 전합니다. |
화성 리튬전지 공장 화재로 목숨을 잃은 대다수가 이주노동자로 파악됐습니다. 김송이·전지현 기자가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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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로 알려진 붉은등우단털파리가 서울 전역에 확산했죠. '착한 벌레'라고는 하지만 성가십니다. 이번 주말 비가 내린다는데, 러브버그가 사라질까요? |
재난이 반복됩니다. 책임자는 '예상할 수 없었다'고 핑계를 대고, '지나칠 정도'의 사후 대책을 말단에 강요합니다. 미류 활동가가 제대로 된 재발 방지를 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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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국가에 내가, 남자들이, 청년들이 목숨을 타의적으로 내놓아야 할지 이해가 안 된다. (한누리07님) 📬 애국이나 사회공헌이나 이런 것보다 낭만을 챙기고 싶네요. 선조가 지킨 조국엔 미안하지만 지금 국가는 그들의 죽음을 들여다보지도 않는 것 같아서요. (강쑤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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