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수입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전 국민이 어렵게 살아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특정 집단을 위해 사회가 이유를 불문하는 희생을 하는 것은 맞지 않고 가능하지도 않죠.
다만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습니다. 당장의 국민 주머니 사정, 즉 물가 안정을 위해 농민들이 계속 어렵게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올봄의
사과 파동은 앞으로 계속해서 나오게 될 것이 분명한 이 질문의 신호탄 격입니다. 기후 변화로 농산물 생산량은 더욱 들쭉날쭉해질 거예요. 가격도 이에 따라 오르내릴 겁니다. 이럴 때 '수입'이라는 대책을 얼마나, 어떻게 쓸 거냐는 질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점선면Deep 레터는 사괏값 고공 행진의 대책으로 정부가 공격적인 수입 정책을 펴는 것이 농민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은 근시안적 방법일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국산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을 때 값싼 수입품을 들여오는 것은 당장은 좋은 대체재가 됩니다. 그런데 값싼 수입산에 국산이 계속 외면받는다면 그 귀결은 국내 농가의 소멸이겠죠. 그러니까 그 수입을 얼마만큼 하면 좋을지, 국산 농산물의 가격을 중장기적으로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질문해야 하는 거죠.
이 질문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농촌 밖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지만, 극단적 기후 때문에 농작물 생산량이 급감하면 '가격'이라는 형태로 가시화될 뿐이죠.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지며 '아스팔트 농사'를 짓던 30대 농부 김재영씨가 있습니다. 아스팔트 농사는 도시의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농민이 자신의 권익과 생계를 위해 집회·시위를 벌이는 것을 또 다른 농사에 비유한 것이에요.
정부는 지난 7월 3일 먹거리 물가를 관리하기 위해 농산물 등 51개 품목 관세를 한시적으로 낮추는
할당관세를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 이튿날인 7월 4일 김재영씨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석했다가 구속됐어요. 농기계를 실은 트럭을 몰던 중 이를 저지하는 경찰력과 충돌하면서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받았습니다.
기사에서 언급됐듯 김재영씨가 구속된 이후 농민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습니다. '농산물이 비싸질 때마다 수입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정부가 할 일을 방치한 데다, 그 질문을 던진 청년 농부를 구속했기 때문에요.
이를 두고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는
칼럼에서 "청년농업인 3만명을 육성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허황된 목표 속에 김재영의 자리는 처음부터 없었다"며 "정부에 고분고분하지 않으며 순종적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김재영씨의 질문은 머잖아 상수가 될 질문입니다. 그 사이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 아래로
떨어져 주요국 중 최하위 수준이 됐습니다.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이 자국의 식량 안보를 위해 수출을
금지하기도 하는 것을 생각하면 걱정스럽습니다. 기후변화는 또 다른 상수죠. 그런데 집중호우·폭염 같은 기후변화 요인으로 생산 농작물에 피해를 본 경우 이를 보전해 주는 농작물재해보험은 신청 농가 5곳 중 1곳꼴로
지급 거부를 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뭄이 극심하던 2년 전 여름 한 청년 농부를 취재하던 중 들었던 말이 떠올라요. "밭에 그냥 심어놔도 아무 보살핌 없이 잘 크는 것들 중 박하나 민트가 있는데, 밭에서 박하가 마르고 있어요. 우리끼리는 박하가 죽었어! 민트가 죽었어! 하는 충격적인 사건인데 도시 사람들은 안 와닿겠죠?"
네. 잘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나오는 질문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분명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이기에, 독자님과 함께 고민하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