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싶은 그 집을 찾아서 "내 안에 있는 그 노랠 찾아서/내가 살고 싶은 그 집을 찾아서/내가 사랑할 그 사람을 찾아서/내가 되고 싶은 가족을 찾아서" 이렇게 시작하는 가수 이랑의 '가족을 찾아서'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엄마, 아빠를 포함한 원가정과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찾는 여정에 오릅니다. 이 노래에는 새 가족을 향한 갈망이 담겨 있습니다. 새 가족의 역할을 연인으로 특정하지 않는 열린 시선도 마음을 당깁니다.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는 채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 각자의 이유로 집과 멀어져야 했던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기숙사에 모인 친구들은 서로에게 자리를 내어줘요. 웹툰의 완결을 맞아 위근우 칼럼니스트가 작별 인사를 합니다. *칼럼은 웹툰의 결말을 언급합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다만 전 글을 읽고 나서 웹툰을 읽었지만 감상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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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집이 되어준 아이들 2024. 8. 8. 위근우 칼럼니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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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집이여. 이번 주 완결된(유료 회차 기준)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의 마지막 에피소드의 제목이다. 이 문구는 해당 에피소드 내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드러난다. 첫째, 주인공 고해준이 돌아가신 어머니와 살던 집과 추억에 대한 작별인사다. 고등학교 졸업과 대학 진학을 앞둔 그는 한때 자기의 전부였던 그 세계를 눈물과 함께 떠나보내며 성인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다. 둘째, 역시 고해준이 작중 내내 지내던 구 기숙사 건물과의 작별인사다. 마지막 화에서 그가 또 다른 주인공이자 악연으로 시작했던 1년 후배 백은영과 함께 수많은 경험을 나눈 공간을 떠나며 고등학교 시절이라는 한 챕터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의 완결과 함께 그는 자신에게 큰 의미였던 두 공간과 헤어진다. 여기서 '안녕'은 'Good Bye'다. 하지만 그것뿐일까. 한 챕터의 마무리는 또 다른 챕터의 시작이다. 작품이 완결된 이후에도 고해준의 삶에, 백은영의 삶에, 그리고 그들과 지지고 볶으며 서로를 보듬었던 박주완, 김마리, 강하라, 공민주의 삶에 열린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당연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분명 그들은 각각 흩어져 새로운 세계를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며 자신만의 또 다른 집을 찾거나 만나거나 만들 수도 있겠지만 그걸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진정 집이라면 헤어지는 것으로 끝날 수 없다. 집이란 그저 사는 곳이 아닌, 돌아오는 곳, 좀 더 정확히는 돌아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작품 제목이기도 한 '집이 없어'의 의미는 단순히 장소로서의 집이 아닌 언제든 돌아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자리로서의 집이 없다는 의미다. 해준은 어머니의 죽음과 그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은영은 부모의 정서적 물리적 폭력 때문에, 집의 부재를 경험한다. 둘에게 기숙사는 과거를 대신할 수 없거나 과거로부터 도망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안식 없는 장소다. 하여 그들에겐 출발점이 없다. 과거에 얽매인 해준은 어머니 없이 혼자 미래로 나아가길 거부하고, 과거의 망령이 현재를 집어삼킬까봐 전전긍긍하느라 바쁜 은영은 미래를 아예 꿈꾸지 않는다. 안식처로서의 집이 없다는 건, 내일을 기대하며 잠들 권리를 빼앗긴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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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난 작가의 웹툰 <집이 없어>의 두 주인공 백은영(왼쪽)과 고해준. 네이버 웹툰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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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은영은 기숙사를 떠나는 해준에게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로 해준이 본인 집에서 어머니와 나누던 인사를 지금 이곳에서 재현하고, 해준 역시 어머니에게 그러했듯 "너도"라 답해준다. 마치 매일 반복돼왔고 내일도 반복될 아침 배웅인사처럼. 졸업하는 해준은 오늘밤 기숙사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1년 뒤 기숙사는 여자 기숙사가 되어 더는 출입할 수 없으며, 또 당장 1년 뒤엔 백은영도 졸업하며 기숙사를 떠나야 하고, 무엇보다 은영의 말대로 다들 바쁘게 사느라 "몇 년 후에나" 만날 확률이 높겠지만, 상관없다. 여전히 내가 알던 나를 기억해주고 반겨줄 가족에게 마음만 먹으면 잠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만으로도 우리는 세상 앞에서 덜 위축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야기의 완결은 그 모든 시간에 대한 'Good Bye'인 것만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비로소 서로 만들어낸 집에 대한 반가운 '안녕' 즉 'Hi'이기도 하다. 떠나지만 언젠가 돌아올 수 있는 집과 가족에 대한 양가적인 '안녕.' 집이 없던 두 주인공이 최종적으로 서로의 집이 되어주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이 훌륭한 마무리가, 어려움을 이겨낸 고난 극복의 서사로 환원되어선 안 되는 건 그래서다. 그들에게 많은 고난과 시련이 있던 것도 사실이고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들 버둥대며 노력했음에도 그러하다. 사람들의 오해로 학교폭력 가해자이자 절도범 누명을 썼던 해준은 오해가 풀린 뒤 독백한다. '하나도 기쁘지 않아. 이건 넘을 수 있는 고비였다. 그렇지. 넘을 수 없는 고비가 이렇게 시작부터 닥칠 리가 없다.'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막막함 앞에서 아직 미성년인 소년이 이겨낼 수 있는 고비란 별로 없다. 해준이 자의로든 타의로든 누구보다 철든 아이라는 것이, 그가 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될 수는 없다. 친오빠의 폭력에 노출되면서도 아버지 앞에선 열심히 철든 딸 노릇을 하던 마리의 어려움에 대해 그의 고모는 말한다. "애한테 다 컸다고 하지 마. 그게 좋은 말인 줄 알아? 어른들 마음 편하자고 하는 소리지. 무책임하게." 이것이 본질이다. 고난을 극복한 장한 아이들의 서사란, 어른들의 무책임한 소리일 뿐이다. 철든 아이의 삶이 강요된다는 건, 역설적으로 성장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충분한 보호와 배려 속에서 수많은 오답을 써내고 고쳐 쓰며 조금씩 깨닫고 성장할 기회를. 당장의 생존이 중요한 거리의 거친 삶에 익숙한 은영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극복을 위한 힘이 아니라, 극복하지 않고 실수하고 도망가고 헤매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다음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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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집이 없어>를 한 줄로 요약한다면, 그것은 극복이나 극기의 서사보다는 해준과 은영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이 서로를 향해 더 나아질 수 있으리란 믿음과 용기를 나누는 과정에 가까울 것이다. "난 어차피 평생 인생을 낭비"했다던 은영에게 행복한 미래를 꿈꿔볼 수 있다고, 성급한 교지 보도로 해준에 대한 오해를 만든 마리에게 본인의 잘못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을 알게 된 후 자기 안의 폭력적 성향을 의심하고 자책하는 해준에게 너는 어머니처럼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고 진심으로 믿어주는 것. 등장인물 중 가장 몸과 마음이 건강할 유도 유망주 하라조차 자신의 진로에 대한 어머니의 부정적 반응을 접하면 '나에 대한 확신이 전부 의심으로 바뀐다'며 그럼에도 친구인 주완의 응원과 믿음 덕에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고백한다. '나는 개인의 끈기도 열정도 믿지 않아. 그런 것에 기대어 모든 고통을 혼자 감내하는 건 결국 사람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스스로의 힘으로 잘 이겨내라는 각자도생의 서사는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것이 집이 없는 세계다. <집이 없어>는 몰아치는 비바람을 홀로 뚫고 당당히 맞서는 용기를 찬양하기보다는, 비에 홀딱 젖고 지쳐도 몸을 누이고 말릴 수 있는 도피처가 우리를 견디게 해준다고 말해준다. 물론 쉽게 얻을 수는 없다. 주완의 말대로 "모든 관계는 노력"이므로. 모든 고난을 이겨내는 것이 불가능한 만큼, 어떤 고난도 넘어설 노력이란 것도 불가능하다. 해준의 어머니가 말했듯 "슬픔은 이겨낼 수 없는 거"다. 단지 가능한 건, 넘어졌을 때 잠시 돌아가 쉬거나 후련해질 때까지 울거나 비바람을 피할 자리를 서로를 위해 마련해주려 노력하는 것이다. 결코 쉽진 않지만 적어도 불가능하진 않은 길. 좋은 작품은 가능한 삶의 경로에 대한 잘 짜인 각본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 독자들이 그 각본의 전망을 믿고 싶게끔 만들어준다. <집이 없어>는 어려운 환경에 처했던 해준과 은영이 그럼에도 부단한 노력과 재능으로 자기 자리에서 크게 성공해 잘 먹고 잘산다는 각본과 전망을 남기진 않는다. 하다못해 그들이 멋진 어른이 되어 재회할 후일담이 있을지도 알 수 없다. 대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백은영은 말한다. "이제 조금만 힘들면 거기(기숙사) 돌아갈 생각 밖에 안 들어. (중략) 이젠 네(고해준)가 졸업해도 난 그 기숙사에 편한 마음으로 돌아가겠지. 돌아가서 또 밥을 해먹고 씻고 침대에 눕겠지. (중략) 날 두고 더 좋은 곳으로 잘 돼서 떠나더라도 이젠 기쁜 마음으로 인사해줄 거야." 배웅을 위해서도 집이 필요하지만, 떠나는 이 역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염두에 둬야 미래를 위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해준과 은영, 주완과 마리와 하라와 민주에게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이 서로의 집이자 가족이 되어준 2년의 기억은 언제나 같은 곳에서 그들을 기다려주고 잠시 쉴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그 어떤 극복과 성공의 각본보다 삶의 두려움으로부터 안심시켜주고 용기를 주는 이 이야기를 나는 믿고 싶다. 그러니까 해준과 은영 모두 이젠 정말 안녕, 그리고 다시 안녕.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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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에 엄청난 힘이 숨어있다고 생각해 왔어요. 이곳을 '잠시' 떠나지만 이내 '돌아올 것'이라는 말이니까요. 단 몇 시간이든, 몇 달 혹은 몇 년이든요. 단순한 인사지만 언제든 돌아올 곳이 있는 사람, 자신을 기다리는 이가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와난 작가의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는 이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빼앗긴 청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에겐 집이 누군가 따뜻하게 반겨주는 곳,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자책에 휩싸인 고해준, 부모의 폭력을 견딜 수 없는 백은영은 집을 나와 다 스러져가는 '구기숙사'에서 서로를 마주합니다. 귀신의 집 같은 기숙사가 이들에게는 최후의 거처입니다. 둘은 원수 사이지만 서로를 감내합니다. 혼자 살기엔 위험한 곳이라 적어도 둘이 사는 조건으로 학교가 거주를 허락했거든요. 웹툰은 너무나 모난 둘과 또 다른 친구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룹니다. 이 웹툰에 처음부터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없습니다. 모두가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고, 돌이킬 수 없는 재난을 자초합니다. 엄청난 비호감을 주면서 등장하죠. 이 캐릭터를 과연 좋아할 수 있을까 싶지만, 작가는 결국 캐릭터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합니다. 일례로 주인공 백은영은 '적반하장도 유분수'인 '경우 없는 양아치'로 등장합니다. 연재 초반 백은영에 대한 댓글 반응은 이렇습니다. "인성의 요단강을 건너버렸다" "갱생 불가능" "주연인데 이미지 세탁 어떻게 하려고 이러세요" "역대급 쓰레기 캐릭터"…. 하지만 곧 백은영의 사연이 드러납니다. 고해준과의 유대도 진해지고요. 이후 독자 반응은 변합니다. 고해준이 벽에 부딪힐 때마다 어서 백은영이 나타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를 구해주기를 한마음으로 바라요. 백은영이 극적으로 변화해서가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천방지축이고, 변한 것은 오히려 독자 쪽입니다. 처음엔 그저 그를 평가했다면, 점점 그를 알아가며 응원하게 될 뿐이죠. 칼럼 중 "이 훌륭한 마무리가, 어려움을 이겨낸 고난 극복의 서사로 환원되어선 안 된다"는 말에 특히 동의했습니다. 웹툰의 주인공들은 분명히 성장 듯 보이지만, 언제든 또 자신을 괴롭히는 과거에 휘말릴 수 있습니다.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드디어 극복해냈다'는 허황된 수사가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가 다시 무너졌을 때 오히려 절망에 빠지게 할지도 모릅니다. '극복해 낸 줄 알았는데, 역시나였다'면서요.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건 또 다른 기회가 올 것이라는 희망, "그것이 끝이 아니며 다음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혼자서만은 가질 수 없다는 걸 실감합니다. 모두가 외면할 때 혼자 털고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만화에나 나오는 일입니다. "넘어졌을 때 잠시 돌아가 쉬거나 후련해질 때까지 울거나 비바람을 피할 자리"가 서로에게 되어주는 관계 안에서 비로소 회복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자연재해 같이 찾아오는 고비들을 넘기 위해 우리는 서로의 곁을 필요로 합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하루 동안 겪은 고난이 그저 '모험의 일부'가 되는 그런 집, 진정한 가족을 꿈꿔요. 저도 독자님도 언젠가 그런 안식처에 다다를 수 있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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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이버 웹툰 <집이 없어>엔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없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이들이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며 웹툰은 끝난다.
✦ 2.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이 마무리가 '어려움을 이겨낸 고난 극복의 서사'로 해석돼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건 실수하고 헤매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다음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라고 한다.
✦ 3.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라는 각자도생의 서사 속에서 '나아질 수 있음'을 희망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것은 '집이 없는 세계'다. 서로에게 집이 되어주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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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슥삭, 역사를 위생처리>에 독자님들이 남겨주신 의견입니다. 정부의 실익 없고 명분 없는 외교적 선택에 많은 분들이 공분하셨습니다. 관련 소식 계속해서 전해드릴게요.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들의 이야기로 더욱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꾹 눌러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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