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통일, 안 될 것 같은데… "너 같으면 하겠냐?" '너'란 호칭이 불경스럽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 담긴 남북 통일 논의용 '대화협의체' 제안을 듣고 이 말부터 나왔습니다. 과연 이 기념사 이후로 '북한은 안 할 걸'이란 분석이 쏟아집니다. 독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셨을지 궁금해요. '8·15 통일 독트린'이라 쓰고 '흡수통일론'으로 읽어야 할 것 같은 이 구상. 곽희양 기자가 분석했습니다. 기사 읽고 대화하기에서 다시 만나요. |
|
|
공허한 '8·15 독트린' 2024. 8. 16. 곽희양 기자 |
|
|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6일 윤석열 대통령의 '남북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에 대해 "북한이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과 대화를 위한 사전 교감이 없었고,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 카드도 제시하지 못했다. 김 장관은 윤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이란 통일 비전이 역대 정부가 계승해온 '민족공동체 통일방안'(공식명칭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을 계승한다고 강조했지만, 논리적인 모순 지점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내놓지 못했다. 윤 대통령이 제시한 통일 비전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사장될 가능성이 벌써 제기된다. 김 장관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전날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윤 대통령이 발표한 독트린의 후속 조치를 소개하기 위한 브리핑을 열었다. 전날 제시한 통일 비전은 '북한 주민에게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촉진한다'는 등 3대 전략 하에 대화협의체 설치, 인도적 지원, 북한 주민 정보접근권 확대, 북한 인권개선 등 7개 방안을 담고 있다. |
|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79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
|
|
김 장관은 브리핑에서 "(대화협의체 설치)제안을 두고 일부에서 '북한이 반발하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북한이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 "윤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시했고, 모든 의제에 열려있다는 점도 분명히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당국도 나름대로 미국 대선이라든지 여러 가지 상황을 판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김 장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실제 '신중한 검토'를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 장관은 통일 비전을 "정부가 독자적으로 마련했다"며 북한과 사전 교감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긴장 완화를 위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일시 중단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에 대한 대응"이라며 그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북한을 대화로 유인할 방안도 내놓지 못했다. 김 장관은 북한의 호응을 이끌 방안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북한은 군사적인 도발을 멈추고 대화의 길로 나오는 것이 북한 주민의 민생을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 정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부의 입장만 반복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 당국의 태도 변화를 위해 인내심을 갖고 계속해서 노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와 동·서해지구 군 통신선이 재가동되어야 할 것"이라며 당위론만 내세웠다. 그는 또 "실무급으로부터 시작되는 상향식 접근을 통해 하나하나 성과를 내고 앞으로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별다른 기대 없이 형식적인 '대화 제의'를 한 것이란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
|
|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8.15 통일 독트린’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
|
|
김 장관은 전날 발표한 비전이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큰 틀을 계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김영삼 대통령이 1994년 선언한 것으로, '자주·평화·민주'를 기본원칙으로 두고 '남북 화해·협력 → 남북연합 → 통일국가 완성'이라는 단계적 통일을 추구한다. 양측의 '체제 인정'을 전제로 두고 있다. 하지만 '북한 주민에게 자유 통일에 대한 열망을 촉진한다'는 원칙 등은 정부가 사실상 북한 체제 붕괴를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장관은 정부 방안이 '북한 체제 인정'이라는 전제를 유지하느냐는 질문에 즉답을 피했다. 북한 정권을 압박해 태도 변화를 견인하겠다는 의미냐는 질문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북한 주민에게 정보접근권을 확대하는 것이 북한의 내부 혁명의 가능성을 내다본 것이냐는 질문에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흡수통일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
|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침수지역 주민 구출에 투입됐던 헬기 부대를 축하 방문해 훈장을 수여하고 격려 연설을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
|
|
결국 정부가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보완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이를 폐지할 경우 야당과 시민사회의 거센 반발을 불러올 것을 고려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제정 당시 초당적인 지지를 받았고, 한때 북한과도 공유했던 내용이다. 현재까지 북한은 대화협의체 설치 제안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1일 압록강 유역 수해에 물자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북한은 이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며 남한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 바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판문점) 연락 채널은 지난해 4월부터 끊겨 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
|
이 통일론은 새롭지조차 않습니다. 올해 3·1절 윤 대통령이 밝힌 통일 구상을 3월 19일자 점선면Deep < 🌅 우리의 소원은 통일?>에서 다뤘는데요. 이를 구체화한 정도입니다.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8·15 통일 독트린'은 3대 통일 비전, 3대 통일 추진 전략, 7대 통일 추진방안으로 구성됩니다. 3대 전략은 북한에 자유·인권의 가치가 스며들게 해서 북한 주민이 '자유 통일'을 열망하게 만든다는 것이 중심 내용입니다. 이걸 실행하기 위한 7개 방안으로는 북한 주민의 정보접근권 확대, 북한 주민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 남북 당국 간 대화협의체 설치 등이 포함됐습니다. 당장은 대북 전단, USB, 확성기 방송 등을 활용하는 방안이 가시적입니다. 이렇게 북한 주민에게 자유·인권의 가치를 설파해서 계몽하고 통일을 도모한다는 것인데, 결국 '아래로부터의 붕괴'를 염두에 둔 구상이죠. 북한 정권에는 '체제 흔들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협의체를 만들어 소통하자'는 제안에 북한이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을까요? 대한민국만이 제시할 수 있는 '당근'이 있다면 협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자원은 전혀 없다고 보는 게 현실적입니다. 그렇다고 남북 간 신뢰가 쌓여 있지도 않아요. 서로 적대행위를 일절 중단하고 평화·신뢰를 구축하자는 뜻으로 만든 9·19 남북군사합의는 지난해 11월 파기됐습니다. 대신 북한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9일 북한과 러시아는 평양에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을 체결했어요. 한반도 문제를 당사자끼리 자주적으로 풀어가려는 대북 정책 '한반도 운전자론'이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소통하고, 남한은 배제한다), 남한 '패싱' 기조에 힘을 쓰지 못한 것과 겹쳐 보입니다. 남북 간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윤 대통령은 자주 언급하는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로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합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단언컨대 불가능하다"고 조목조목 지적합니다. 국방부 대변인을 지낸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러시아와도 북한 문제를 논의할 수 있게 외교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이 정부에서는 시도조치 하지 않는다며 "굉장히 우려스럽다"고 했어요. 게다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습니다. 통일을 지향점으로 삼는 관계를 청산하고 '따로 살자'고 선언한 것이죠. 통일을 해야 한다는 국민 인식이 점차 흐려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니 보수 언론에서도 윤 대통령의 통일 구상을 "현실성이 없다"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진단합니다. 결국 오래된 이념 논쟁에 기반한 낡은 아이디어이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진자처럼 오락가락하는 상반된 대북 정책의 한쪽 끝일 뿐입니다. 통일 이야기를 할 때 독일이 자주 거론됩니다. 협치를 기반으로 통일 정책을 수립해서 일관성 있게 추진했기에 분단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모범적인 이야기예요. 남북 간이든 여야 간이든 봉합할 것은 많은데, 윤석열 정부의 통일 구상은 오히려 거리를 벌릴 대로 벌린 '반쪽짜리' 광복절 기념식에서 나왔습니다. 역사는 진전으로부터 또 한 발짝 후퇴했고, 봉합과 대화는 이전보다 조금 더 어려워졌습니다. 도무지 가까워지는 것은 없고 멀어지는 것만 가득해 보입니다. 이런 우려를 말하는 것도 우리 대통령 말마따나 "검은 선동세력"일까요? |
|
|
✦ 1.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서 '8·15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북한 주민을 계몽해 '아래로부터의 통일'을 도모하는 구상으로 읽힌다.
✦ 2. 이와 동시에 북한에 '남북 대화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북한이 호응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 3. 결국 낡은 이념에 기반한, 현실성 없는 아이디어다. '반쪽짜리' 광복절 기념식에서 나온 구상이기에 더욱 공허하다.
|
|
|
광복절을 앞두고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 있던 독도 모형들이 사라졌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승객 안전'을 이유로 들었는데, 비판이 확산하자 다시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
이탈리아 고급 휴양지에서 에어컨 때문에 주민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서로 감시하고 신고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데, 무슨 이유일까요?
|
|
|
과거 국정농단에 연루된 주요 공직자 10명 중 7명이 특별사면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면권 남발의 결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자기부정'이기도 합니다. |
중국집 메뉴판에서 'ㅉㅉㅁ'이 속속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기자가 광화문 일대 중국집들을 돌아보며 사정을 들어봤습니다. 왜 없어지는 걸까요? |
|
|
📬 "5억원을 연봉으로 받는 근로소득자도 세금으로 1억7000만원 넘게 내야 하는데, 그냥 물려받은 사람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도록 하는 정책이 지향하는 사회상은 무엇일까"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달달커피님) 📬 일하는 사람이 손해보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득 불평등이 점점 더 심해지면 가난한 부모 밑에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것이 더 심해지겠지요. 모두 다 만족할 수는 없지만 불평등이 줄어드는 한국이 되었으면 해요 (익명의 독자님) |
|
|
📝 지난 점선면Lite <🥣 상속자들의 사회>를 읽고 독자님들께서 남겨주신 이야기입니다.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더 거대해지고, 그것이 사람들을 슬프고 무력하게 만들까 봐 걱정하는 마음을 우리 모두가 간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 의견으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통찰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의견을 남겨주세요. |
|
|
경향신문 뉴스레터팀 광고, 기타 문의: letter@khan.kr 서울시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l 02-3701-1114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