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한 지난 22일, 대통령실은 "아쉽다"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오로지 경제에 미칠 영향만을 고려하도록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해온 역사를 생각하면, 대통령실이 공개 평가를 한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었어요. 대통령실은 '내수 진작'을 들어 금리 인하에 대한 바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이에 앞서 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 등 대출금리를 줄줄이 높이고 있었어요. 다른 게 아니라, 당시 연일 '가계부채 집중 관리'를 강조한 정부를 의식한 행보였습니다. 대출 규모를 줄이자는 당국과 보조를 맞추려 했을 뿐인데, 금융감독원장이 대뜸 '누가 금리를 높이라고 했느냐'며 호통치다시피 나선 겁니다. 그 금감원장은 두 달 전만 해도 "성급한 금리 인하 기대로 가계부채 악화"를 말했던 사람이었죠. 대체 금리를 내리라는 건지 올리라는 건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금리를 올려 내수를 가라앉혔다는 비판도, 금리를 내려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듣고 싶지 않은 것처럼 보여요. 금리는 한번 오르거나 내리면, 향후 몇 년 동안 우리 삶에 지속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요즘 이 '불안한 정부'는 그런 중요한 문제를 정권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동원할 수 있는 도구로 취급하는 것만 같습니다. 이런 모습이 정권의 불안함을 시민의 불안함으로 이전시킨다는 생각이 들어요. 돌이켜보면, '카르텔'을 운운하며 과학 분야 R&D(연구·개발)의 기반을 흔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여론이 좋지 않자 뒤늦게 관련 예산을 복원한다고 했어요. 최근엔 공공이 도심 빌라를 매입해 저소득층·신혼부부에게 저렴하게 임대하는 매입임대주택 공급량을 한 해 5만~6만가구로 2배 가까이 늘렸습니다. 원래 공공이 빌라를 너무 비싸게 사들인다며 비리가 있는 것처럼 몰아세워 공급량을 반의반으로 줄였는데, 최근 집값 상승 때문에 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선회하면서 공급량을 갑자기 몇 배나 늘린 거예요. 이러는 사이 희생된 과학 인재 육성이나 저소득층 주거권에 대해 정부는 과연 생각해봤을까요? 아파트를 더 짓겠다며 서울 근교 그린벨트를 해제하겠다는데 나중에 기후위기와 균형발전 대응은 어떻게 할 것이며, 대통령 가족을 향한 법적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무너뜨린 공직자의 윤리 감각은 어떻게 복구할 것인지 궁금합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 기초 연구·개발 역량, 적절한 임대주택 보유량, 풍부한 녹지, 공직기강 등 이 모든 게 공동체의 자산인데, 아주 짧은 정권의 안위를 위해 죄다 탕진하는 것만 같이 느껴져요. 8월 29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브리핑을 열어 국민연금 등 연금개혁안을 발표한다고 합니다. 이 개혁안엔 20~30대보다 40~50대가 연금보험료를 좀 더 많이 부담하는 구상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어요. 연금개혁은 이미 현 정부 들어 국회를 중심으로 공론화를 거쳐 개혁안을 만들고도 여야와 정부가 서로 결정권을 떠넘기면서 무산된 바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어떤 사회적 논의도 거치지 않은 방안을 들고 나와서 다시 개혁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진심'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느닷없이 의과대학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인 '의료개혁'처럼 거대한 후유증만 남기는 건 아닐지 미리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지금, 연금개혁은 정말 중차대한 과제입니다. 이번만큼은 우리 마음 속의 '불안이'를 자극하지 않기를 바라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