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에서는 강남과 종로에서 잇따라 싱크홀이 발생했어요. 서울시는 연희동 싱크홀을 두고 "원인 미상"이라며 "지난 5월 탐사했을 때는 공동(땅속 빈 구멍)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듯한 당국의 모습에 사람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진 것 같아요. 싱크홀이 발생하는 원리는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하수의 이동이 싱크홀을 만듭니다. 지하수와 흙이 뒤섞인 땅에서 지하수가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면 원래 있던 자리엔 공동이 생기죠. 어느 날 이 공간이 무너지면서 지표면에 싱크홀이 나타납니다. 비가 오거나 가뭄이 들어 전체적인 지하수 분포 상태가 달라지면 지하수가 활발하게 이동할 수 있어요. 공사 때문에 일부러 땅을 파헤치거나 지하수를 마시기 위해 길어 올려도 마찬가지죠. 이유가 참 다양하지만, 땅 밑에 공동이 생겼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위험한 공동을 경계하면 싱크홀 사고를 어느 정도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도시에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지하에서 상하수도 등 각종 설비와 지하철, 건물의 지하층이 서로 얽히면서 지하수의 흐름은 그만큼 더 복잡해졌습니다. 2014~2015년 9호선 지하철 공사와 롯데타워 등 대형 건축물 공사가 동시에 진행됐던 서울 잠실 일대에서 싱크홀 발생이 부쩍 잦았던 배경이기도 해요. GTX 등 지하에서 계속되는 건설 사업 또한 그 복잡성을 키우고요. 요즘 지도는 건물의 높낮이까지 표현하는데, 지하 세계에 대해서는 무엇이 어떻게 꼬여있는지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전체 생김새를 잘 모른다는 점에서 도시의 지하는 '난개발' 상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도시에 쌓인 세월 또한 변수입니다. 낡은 상하수도관이 파열돼 새어 나온 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지하수의 흐름을 한층 더 어지럽게 만듭니다. 폭우로 단시간에 많은 물이 지하로 흘러들어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데, 기후변화로 폭우는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이 커요. 이렇게 변수가 쌓이고 쌓인 상황에선 '지난 5월 탐사했을 땐 괜찮았다'는 식의 설명은 무의미합니다. 단 몇 개월, 단 몇 주 만에도 지하 공간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언제 나타날지 모를 싱크홀을 걱정하며 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까요? "인프라는 지루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인프라의 특성상 일단 자리를 잡으면 오랜 기간 동안 큰 변화 없이 그 자리를 지키게 되기 때문이다. (…) 이렇듯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인프라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이다." 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인 최형섭 박사는 인프라 노후화 문제를 경고하는 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발아래 인프라를 항상 깔고 살면서도 관심을 항상 기울이지는 않는 아이러니를 지적하고 있어요. 여전히 인프라를 '개발'하는 문제와 달리 '관리'하는 일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합니다. 지난 선거만 봐도 각종 철도·도로를 지하화하겠다는 공약들이 주목받았지만, 그 인프라가 묻힐 지하의 복잡성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보이지 않았어요. 싱크홀은 또 언젠가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그 불확실성만 탓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미 지하 공간의 상세한 지도를 그리는 일이나 노후 상하수도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등 꼭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는데, 이런 과제들은 '우리 동네 새 지하철 개통'만큼 매력적이지 않아서 선거 공약이나 행정 절차에서 뒤로 밀려나기 일쑤니까요. 다시 나타난 싱크홀, 다시 커지는 불안감을 항상 곁에 존재하는 인프라에 관한 관심으로 잇는 일이 필요합니다. 공약과 행정을 이끄는 건 결국 다수의 관심사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