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현장을 담은 기사를 더 열심히 찾아보게 됩니다.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비상진료 체제가 그래도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현장을 한번 가 보시는 게 제일 좋을 것 같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의 말 때문에 그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들여다본 현장이 이렇습니다. 레터를 쓰는 동안에도 공사장에서 추락했지만 응급실 여력이 없어서 수십㎞를 전전하다가 결국 숨을 거둔 70대 노동자,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100m 거리 응급실로 실려갔지만 수용되지 못하고 의식불명에 빠진 대학생 소식이 새 기사로 올라왔어요. 윤 대통령은 이미 예전부터 응급실 의사가 부족했다고 항변합니다. 응급실 문제가 '의정갈등' 이후 새로 생긴 문제가 아닌 건 맞습니다. 의료인력이 특정 인기과와 수도권에 몰리는 문제는 오래된 이야기이고, 응급실은 몇 년 전부터 아슬아슬했습니다. 그런데 의정갈등 때문에 문제가 더 심해진 것 역시 사실입니다.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한 지난 2월부터 8월 말까지 119구급상황관리센터에 구급대원들이 병원을 찾아달라고 요청한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었어요. 같은 기간 응급실에서 진료를 볼 수 없는 경우 의료기관이 띄우는 '응급실 진료 제한 메시지' 건수는 작년 동기 대비 22.7% 증가했습니다. 응급실 운영을 부분적으로 중단했거나 중단할 예정인 병원이 전국에서 5곳이고, 25개 주요 병원 응급실은 당직의사 1명이 버티고 있어요. 그러는 사이 28개월 아이는 응급실 11곳에서 퇴짜를 맞고 한 달째 의식이 없고요. 기사에서 보듯 정부가 구하겠다던 지역 응급의료체계는 상황이 오히려 악화됐습니다. 정부는 '그러니까 의사를 늘려야 하지 않겠냐'며 할 말이 많은 모양입니다만 '2000명 증원'이라는 목표의 과격성 때문에 아프기도 두려워질 정도로 상황이 망가진 데 대해서는 어떻게 책임을 질까요? '우당탕 개혁'이 아니라, 부작용 없는 '똑똑한 개혁'을 해야 하는 것이 정부의 소임 아니던가요? 상황이 이런데도 "현장의 의사 간호사 또 간호조무사를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들께서 정말 헌신적으로 뛰고 계시기 때문에 저는 해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는 대통령의 불굴의 의지가 두렵습니다. '현장을 한번 가 보라'며 자신만만하던 윤 대통령은 6일 만인 지난 4일 밤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찾았습니다. '비상의료 체계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던 대통령의 생각이 달라질까요? 사태에 책임을 지는 차원으로 제기된 경질론에 "더 열심히, 더 힘을 내라는 말씀으로 듣고요"라는 보건복지부 장관, 응급실 '뺑뺑이'로 인한 사망이 늘었다는 말에 "전혀 확인되지 않는 주장"이라고 반박한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로 미루어 보아 쉽게 바뀌지는 않겠다는 암울한 생각이 듭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 대안적 사실'이란 우스운 말을 유행시킨 적이 있죠. 이 말이 오랜만에 생각납니다. 윤석열 정부가 '응급실에는 문제가 없다'는 대안적 세계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좀더 걱정스러운 세상에서 살게 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