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와 '판교 사투리'에 대한 고찰 서울 을지로에 가면 '빠우'란 도넛 가게가 있습니다. 간판을 처음 보고 발음이 참 재밌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Buff(광을 내다)'란 영단어를 일본식으로 읽은 거였어요. 작은 공장이 많은 을지로에선 '빠우'란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금속 표면을 기계로 다듬어 뭔가를 만드는 곳이죠. '빠우 도넛'은 이 동네의 본래 정체성을 반영한 이름입니다. 뜻을 알고 나니 비로소 공구를 닮은 도넛의 생김새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오늘은 '빠우'처럼 외래어라고 규정하기도 애매한 말에 대해 사유한 국어학자의 칼럼을 소개합니다. 7분 정도는 시간을 내주셔야 하는 다소 긴 글이지만, 나도 모르게 지녔던 어떤 편견을 깨주는 것 같아요. 끝까지 읽고 꼭 함께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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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다 용어'라며 시비 걸기보다 2024. 9. 11. 한성우 국어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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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파 알우? 기계 설계와 제작을 담당하는 현장에서 엉뚱하게도 대파를 아는지 묻는 듯한 말이 들린다. 이들의 표기와 발음대로 하면 '데파'와 '아루'이다. 오랜 세월 동안 기름밥을 먹어 온 이들끼리는 잘 통하는 말이지만 공학을 전공해 기계와 가공에 대해 전문적으로 배운 젊은이들도 모른다. 그들은 대학에서 '테이퍼(taper)'와 '래디우스(radius)'로 배웠으니. '데파'는 원통을 예로 들면 한 면에서 다른 면으로 갈수록 원의 지름이 점점 줄어드는 것, 즉 중심선을 기준으로 약간 기울어지는 것을 가리킨다. '아루'는 반지름을 뜻하는 'radius'의 머리글자 'R'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으로 날카로운 모서리를 일정한 반지름값으로 둥글게 가공하는 것을 뜻한다. 왜 이런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을까? '테이퍼'와 'R'이 일본에서는 '데파'와 '아루'로 발음되고 이것이 그대로 들어온 탓이니 일본어의 엉터리 발음과 그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이들에게 책임을 돌릴 만하다. 그러나 이는 근대 이후의 외래어를 바라보는 적절한 시각이 아니다. '데파'는 '빗각'이라 하고, '아루'는 '둥근 면치기'로 풀어서 설명하면 되지 않는가? 이렇게 하지 않은 것, 혹은 하지 못한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공장뿐만 아니라 '노가다판'과 산업 현장에 넘쳐나는 이런 외래어는 '일본어의 잔재'라고 치부해 '청산'이나 '순화'의 대상만으로 보기 이전에 더 중요한 본질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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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의 한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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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지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데모도와 시다가 일하다 함바에서 점심을 먹고 해 질 무렵에 시마이를 하는 노가다판의 일본어는 꽤나 잘 알려져 있다. '오야지'를 '우두머리'로 바꾸라고 해도 안 바꾸고 대안으로 제시되는 한자어 '십장(什長)'마저도 일본어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 숙련공을 돕는 '데모도'와 '시다'를 '조력공'과 '조수'로 바꾸라 해도 요지부동이다. '현장 밥집'으로 써도 될 듯한데 굳이 공사 현장에서 '밥 먹는 곳'을 뜻하는 '함바(はんば, 飯場)'가 여전히 쓰인다. 일을 '끝맺음'하면 될 것을 꼭 '시마이'라 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러니 공사 현장을 뜻하는 '노가다판'은 '개판' 혹은 '막장'과 비슷한 느낌을 주고 이곳에서 일하는 '노가다'는 무식쟁이 취급을 받는다. 부로꾸에 세멘을 발라 벽을 쌓거나 반네루로 거푸집을 만들어 공구리를 치는 것은 어떤가? 구라인다로 갈아내고 빠께쓰에 담긴 뺑끼를 로라로 칠하는 것은 또 어떤가? '블록(block)'이라 해도 되고 벽돌이라 해도 된다. '시멘트(cement)'와 '패널(panel)'이란 정확한 영어로 하지 못할 거면 '양회'와 '널빤지'로 바꾸어 쓰면 된다. '콘크리트(concrete)'의 대용어로 제시되는 한자어 '혼응토(混凝土)'가 영 어렵고 맘에 들지 않는다면 최대한 발음이라도 원어에 가깝게 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는가? '그라인더(grinder), 버킷(bucket), 페인트(paint)'는 못 들어봤는가? 너무도 무식해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된다. 공사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이들과 이들의 말을 매도하는 이들은 집의 벽에 못 하나라도 제대로 박고 정확한 치수로 톱질을 할 수 있는가? 공사 현장은 다양한 자재를 전문적인 공구로 다루어 집을 비롯해 우리에게 필요한 구조물을 만드는 곳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이와 관련된 전문적 기능을 가진 이들이다. 이렇게 전문가들이 전문적인 공구와 자재를 다뤄 일을 수행하는 곳에서는 전문용어가 있기 마련이고 이들은 전문용어로 소통한다. 이들은 무식쟁이가 아니라 공사 현장의 전문가들이다. 전문적인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그 기술과 관련된 각종 개념과 용어를 익히고 그것으로써 다른 이들과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서구에서 발달한 기술이 들어올 무렵 우리 앞에 일본이 있었다. 우리는 먼저 기술을 배우고 식민통치를 하게 된 이들로부터 기술을 배웠다. 이들에게 배운 용어가 영어를 비롯한 서양어인가, 혹은 일본어나 일본식으로 변형된 서양어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언어를 다루는 이들이 아니라 전문적인 기술을 다루는 이들이니 일본에서 쓰는 용어를 그대로 수용했을 뿐이다. 이들이 사는 세계 밖 사람들의 귀에는 거슬리는 말이지만 이들에게는 '밥벌이'를 하는 데 꼭 필요한 소중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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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들이 재봉틀 작업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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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현장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면서 치열한 밥벌이를 하는 이들이 있다. 박노해가 시를 쓴 노래 '시다의 꿈'에서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끝도 없이 옷을 만드는 '시다'들이다. 이들의 세계에도 전문용어가 있는 법, '나나인치'와 '큐큐(QQ)'가 그것이다. 옷을 만들 때 꼭 필요한 것이 단춧구멍인데 이것에 특화된 재봉틀을 전문회사인 '싱어(singer)사'에서 만든다. 이 회사는 개발 순서에 따라 모델 이름을 붙이는데 71번과 99번이 이 용도의 재봉틀이다. 뭐든지 줄여 쓰기를 좋아하는 일본에서는 그들의 숫자 읽기 방식대로 71번을 '나나이치(ナナイチ)'라 하고 99번을 '큐큐(きゅうきゅう)'라 불렀다. 근대의 봉제기술을 일본을 통해 배우게 됐으니 봉제 기술자들은 이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런데 일본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 용어가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엉뚱하게 변하게 된다. 숫자 1이 일본어에서 '이치'로 읽히는 것을 모르는 이들은 '인치(inch)'로 착각해 '나나이치'를 '나나인치'로 바꾼다. '큐큐'가 숫자 99인 것을 모르고 발음만 보고 알파벳을 떠올려 'QQ'로 쓰기도 한다. 그나마 이런 표기와 용법은 재봉 관련 종사자들만 쓰고 재봉틀 판매점이나 봉제거리에서만 써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원과 변화 과정을 알고 나면 '무식에 무식'이 겹친 상황이다. '잉큿밥'을 먹는 인쇄업자들 사이에서도 정체 모를 용어가 쓰인다. 인쇄와 동시에 날이 있는 프레스로 눌러 종이를 오려내는 기술을 뜻하는 '도무송'이 그것이다. 이 기계를 생산하는 영국 회사의 이름이 '톰슨 프레스(Thomson Press)'다 보니 이 기계는 '톰슨기'로 불렸다. 일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토무손(トムソン)'이라 했는데 이들로부터 기술을 배운 이들의 귀에는 '도무송'이라 들렸다. 이렇게 변형된 도무송은 지금도 인쇄업에서 널리 사용되는 전문용어이다. 인쇄업은 공사판이나 봉제업보다 훨씬 좁은 영역이니 잘 알려지지 않은 사례일 뿐 알고 보면 이 역시 '무식 곱하기 무식'의 상황이다. 그러나 이 또한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집 안에 재봉틀이 있다고 하더라도 단춧구멍 가공 기능은 없으니 보통사람들은 71번과 99번 재봉틀을 접할 일이 없고 쓸 줄도 모른다. 거대하고 복잡한 인쇄기계는 더 말할 것도 없어 톰슨 프레스에는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한다. 전문적인 분야에서 전문적인 기능을 가진 이들이 그들끼리 소통하기 위해 쓰는 말이다. 이것을 굳이 '71번 재봉틀'과 '99번 재봉틀' 혹은 '압착 가공이 포함된 인쇄기계'라 쓸 필요는 없다. 빠르고 정확하게 통할 수 있는 말이면 되지 않는가? 재봉과 인쇄 분야에서도 '노가다판'과 비슷한 양상으로 정체 모를 외래어가 많이 쓰이지만 유독 비난의 화살은 공사 현장과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집중된다. 이는 이 분야에 특별히 문제가 심각해서일 수도 있지만 이 현장이 우리와 매우 가깝게 있고 많은 이들이 이 현장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의식주는 필수인데 이 중에 집짓기는 꼭 필요하면서도 기술이 많이 필요한 대상이다. 일손이 많이 필요하니 많은 사람이 '데모도'나 '시다'로 참여해서 현장의 말을 듣는다. 주변에서 공사 현장은 늘 볼 수 있으니 이곳에서 쓰이는 말들을 많은 사람이 듣는다. 많이 들으니, 못 들어본 말이니, 그것도 일본어와 일본에서 변형된 외래어이니 시비를 많이 삼을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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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3>의 한 장면. SBS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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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즘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외래어인지 외국어인지가 차고 넘치는 것은 의학 드라마이다. 이 드라마의 오알에서는 서전이 너스의 어시스트를 받으며 메스로 수술을 한다. 수시로 바이탈을 체크해야 하고 카디악 어레스트가 오면 씨피알을 해야 한다. 한마디도 못 알아듣겠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자막에서는 'OR·operating room 수술실', '바이탈? vital 환자의 활력 징후', '카디악 어레스트? cardiac arrest 심정지', 'CPR -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폐소생술'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이런 장면이 하도 흔해지다 보니 '서전(외과의사), 너스(간호사), 어시스트(보조), 체크(확인)' 등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이 되었다. 왜 이들에게는 분노하거나 비난하지 않는가?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거의 '이두(吏讀)'에 가깝다. 우리말을 적어야 하는데 한글은 싫고 한문은 어려우니 변형된 엉터리 한문 표기가 곧 이두이다. 전문용어를 번역하자니 어렵고, 영어로 온전한 문장을 구성할 능력은 없거나 완벽하게 소통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핵심적인 단어는 모두 영어식 전문용어를 쓰되 조사와 어미만 우리말을 쓰니 현대판 이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는 수술현장에서 쓰는 이런 말에 대해 아무도 비난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비로움이 노가다판을 비롯한 전문 분야의 영역에서는 왜 발휘되지 않는가? 수술실이나 의사만큼 덜 전문적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노가다판, 그리고 다른 현장의 외래어에 대한 비난 심리에는 '무식유죄(無識有罪)'의 심리가 깔려 있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쓰는 말은 그들의 전문용어로 인정하면서 상대적으로 덜 배웠거나 아예 못 배웠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말에 대해서는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이다. 수술실의 의사, 공사판의 노가다, 청계천의 시다, 을지로의 인쇄공 모두 해당 분야의 전문가인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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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서울 을지로의 한 인쇄소 직원들이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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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에서 '공구리'가 사라졌다. '공구리'가 차지하던 자리를 '콘크리트'가 대신하고 있다는 말이다. '공구리'는 '공구리치다' 정도에만 남아 있고 '콘크리트 건물'과 '콘크리트 지지층'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식 외래어가 아니라 원어에 가까운 발음으로 대체되고 있다. 봉제업계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나나인치'나 '큐큐'를 대신할 말을 찾고 있고 인쇄골목에서는 '도무송' 대신 '톰슨 가공' 혹은 '프레스 가공'이란 말을 쓰고 있다.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사라지고 우리말로 바뀌거나 원어에 가까운 발음으로 대체되고 있다.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국어 순화'를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한몫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말을 쓰던 이들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 '공구리, 나나인치, 도무송'이란 말을 쓰던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뜻이다. 그 자리를 새로운 세대가 대신하고 있다. 이들은 세상을 뜬 선배들에게 전문적인 기술과 용어를 배우기도 했지만 학교와 각종 매체를 통해 용어의 정확한 뜻과 본래의 말을 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배들의 말을 자신들의 말로 대체한다. 이들은 이전부터 소통해 오던 말도 쓰지만 자연스럽고도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그들의 말로 바꾸어가고 있다. 노가다판을 아는가? 봉제골목과 인쇄골목에서 일하는 이들의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하는가? 수술실의 의사만큼이나 이들도 중요한 일을 하는 전문가임을 인정한다면 이들이 쓰는 말을 이들의 손에 맡기는 것도 방법이다. 이들은 '일제의 잔재'라고 일컬어지는 정체불명의 외래어에 대한 '공구리 지지층'이 아니다. 때가 되면 일본어를 쓰던 세대, 일본어를 알던 세대가 가고 새로운 세대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데파'와 '아루'의 역사가 100년을 넘어가고 있다. 머지않아 '테이퍼'와 '래디우스'의 시대가 열린다. 혹은 '빗각'과 '반지름'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다. 결정은 그들이 한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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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야지, 시다, 시마이, 공구리, 로라…. 우리말로 글을 써서 먹고사는 기자들과 언론사라면 어쩌면 이런 '노가다의 말'을 정화하자고 강력하게 주장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한데, 언론과 기자의 말 역시 건설 현장 못지않게 '일제 잔재'에 물들어 있습니다. "네가 쓴 이 기사, 야마가 대체 뭐야?" "얼른 이 기사 우라까이하고, 나가서 반까이 해와." "나와바리에서 마와리 안 돌고 종일 뭐 했어?" 이런 말 대신에 "이 기사, 핵심이 대체 뭐야?"라거나 "얼른 이 기사 베껴쓰고, 나가서 다른 기삿감 찾아와" 혹은 "출입처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만나서 취재했어야지"라고 말할 수도 있긴 하죠. 이런 말을 아무런 저항감 없이 받아들이고, 아직 입에 제대로 익지도 않아 어색했지만 굳이 '베껴쓰기'가 아닌 '우라까이'라고 말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렇게 말해야만 언론계에서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진짜 기자'로 거듭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둘러보면 어느 업계에나 그런 말들이 조금씩 있을 겁니다. 요즘 종종 패러디되곤 하는 '판교 사투리*'도 그렇잖아요. "가능한 리소스(인적 자원) 얼른 파악해서 팔로업(후속 작업) 해주시고요, 듀데잇(마감 기한)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같은 말들이요. *경기도 판교에 많은 IT 업종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말을 우스꽝스럽게 이르는 용어 비록 판교 사투리가 살짝 웃음거리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언어를 쓰는 걸 특별히 부끄러워해야 한다거나 어떤 잔재라고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가끔 지인들에게 언론계의 말에 관해 얘기한 적 있지만, "왜 그런 말을 쓰느냐"며 정색하는 반응은 겪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나는 이제 이 업계의 당당한 일원'이라는 걸 은근히 드러내는 징표라고 여겼을 뿐이죠. 실질적으로 소통을 원활하게 만들어 주는 면도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기삿감을 찾는 일'을 '마와리'라고 말하면 얼마나 단순, 명쾌한가요. 이렇게 업계의 용어는 일종의 '소속감'과 더불어 그 사람의 직업적 숙련도를 나타내면서 '자부심'을 불어넣는 역할까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말을 '은어' 혹은 '잔재'라고 납작하게 규정하며 누군가에게 소중한 직업의식, 동료의식을 나도 모르게 폄훼했던 건 아닐까요. 어떤 업계의 말은 드라마에서 자막을 붙여가며 해설하는 걸 당연시하면서도요. 내 안의 이중잣대를 걷고 나면 말과 글의 풍경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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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야지'의 지휘 감독을 받으며 '데모도'와 '시다'가 일하다 '함바'에서 점심을 먹고 해 질 무렵에 '시마이'를 하는 '노가다'판의 일본어는 꽤나 잘 알려져 있다. ✦ 2. 이들이 사는 세계 밖 사람들의 귀에는 거슬리는 말이지만 이들에게는 '밥벌이'를 하는 데 꼭 필요한 소중한 말이다. ✦ 3. 어느 업계든 고유의 언어는 소속감과 직업적 자부심에 영향을 미치는데, 우리 안에 '의사의 말'과 '노가다의 말'을 다르게 대하는 이중잣대가 있는 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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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소청도에서 태어나 대를 이어 이 섬에서 발전기를 돌리고 있는 노동자 아버지와 아들. 그런데 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한전은 이들의 일에 대해 '모른다'고 합니다. |
국가정보원 직원과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평소 함께 알고 지내던 여성 기자들에 대해 성적 발언을 일삼은 조선일보 논설위원. 이제 업계를 떠날 시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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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는 최근 대선 TV토론에서 "이민자들이 개를 잡아먹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말을 한 날, 이민자의 차량에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호소에 나섰습니다. |
비행기 삯엔 '항공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인천국제공항은 국제선 기준 '공항사용료'로 1만7000원을 받습니다. 예약 취소 못 했을 때 항공사가 가져가던 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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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야구의 오랜 팬이었다가 그 어렵다는 탈덕을 한 사람입니다. 이번에 기아의 정규리그 우승 소식에 놀라 기사를 좀 찾아보다가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보게 되었어요. 제가 야구를 좋아하던 시절에 기아 선수로 뛰었던 이범호 감독의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2인자였지만 안정감 있는 선수였다고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어느새 이렇게 멋진 리더십을 발휘하는 감독이 되었군요. 사과의 리더십이라니…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낯선 단어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유독 사과하는 것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워낙 경쟁사회여서 그런가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이기고 지는 것을 계산하는 느낌이랄까요.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사과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깎아내리는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마고님) 📬 정치가 야구보다 못하다고 쓰셨지만 대통령 언급만 하는 게 좀 아쉽네요. 저는 대통령의 리더십도 당연히 아쉽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책임 지는 정치인과 리더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훨씬 더 걱정됩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 말고, 좀 더 깊이 있는 문제의식과 통찰을 제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익명의 독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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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부러운 우승 이야기>를 읽고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이야기입니다. '사과하면 지는 것'이란 생각이 한 마디 말로 마무리할 수 있는 일을 돌이킬 수 없을 지경까지 키워가는 안타까운 광경을 요즘 더 자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더 포괄적인 정치권 비판을 주문한 독자님 의견도 있었습니다. 귀 기울이겠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의 이야기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통찰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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