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권리는 영원불변인 것이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있어요. 인권위가 10년간 학생의 휴대전화를 일괄 수거하는 것이 인권에 배치된다고 판단한 근거는 통신의 자유, 행동자유권이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에 관한 최고 권위의 해석을 내리는 기관이라면, 이 결정을 뒤집을 때 기본권 측면에서의 설명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과정이 없었고,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비공개로 의사를 결정했어요. 무엇보다 이번 결정에선 학생을 인권의 주체로 보는 시각이 퇴행한다는 징후가 읽힙니다. 이는 '학생인권조례'가 도전에 직면한 흐름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지난 점선면Deep <🏫 학생인권이 교실을 무너뜨릴까?>는 학생인권이 교사들을 스러지게 한 원흉으로 지목된 현실을 다뤘어요. 학생인권조례 이후 교육 현장에서 일부 학생들의 전횡이 생겼고, 이것이 교사들을 고통스럽게 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교권'을 학생인권의 대립항에 놓거나 학생인권을 부정 또는 축소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접근은 공허해요. 학교가 할 일은 학생들이 학생인권을 오해해서 방종하지 않도록 인권을 올바르게 교육하고, 다른 한편에선 교원 보호를 병행하는 것입니다. 학생은 자신이 권리주체라는 것을 인식해야 다른 권리주체도 존중할 수 있습니다. 학생인권과 교원의 권리는 상충관계여서는 안 되고, 함께 신장하는 상보관계여야 하며, 이는 실증적으로도 나타난 바 있습니다. 인권위의 이번 결정에서는 학생인권이 교실을 무너뜨린다는 인식이 엿보입니다. 교육부는 지난해 서울 서초구 교사 사망 이후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발표했는데요. 고시는 휴대전화와 같은 소지품을 필요에 따라 분리해 보관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안전을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소지품을 분리 보관할 수 있게 허용한 것과 배치됩니다.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학생은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모조리 걷어가서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쓰지 못하게 하는 데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지 않은지를 질문했습니다. 그 답이 '기각'이라는 것은 인권위의 판단이 학생인권조례보다 교육부 고시를 뒷받침한다는 뜻입니다. 학생을 인권의 주체가 아닌 관리의 대상이라고 인식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휴대전화가 교육현장에 미치는 부작용을 모른 체하고 방치하는 것이 옳은 결론일까요? 휴대전화를 수거하는 데 인권침해의 요소가 있다는 판단과, 학교가 학생의 휴대전화를 분리 보관하는 결정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것일까요? 인권위가 이런 답을 했다면 어떨까요. "휴대전화를 학생 개개인의 필요나 의지와 상관 없이 학교가 일괄적으로 걷어가는 것은 학생을 인권이 있는 주체가 아니라 지도·감독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학생의 행동자유권과 통신의 자유 등 기본권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휴대전화의 여러 특성상 수업환경이라는 공익이 저해되고 있다. 공익을 위해서 때로는 구성원의 기본권은 일시로 제한될 수 있다. 학교는 각 권리주체에게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이라는 기본권을 일시적으로 제한할 필요를 충분히 설명한 뒤 그렇게 할 수 있다." 똑같이 '휴대전화 수거' 결론을 내리더라도, 학생을 인권의 주체로 봤느냐 아니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인권은 정치의 영역이 아닐진대, 과거로 퇴행 중인 인권위가 인권에 관한 판단을 설명 없이 뒤집어서 스스로 권위를 잃고, 인권위마저 진영화된 기구로 전락시켰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인권위가 오로지 '인권'의 관점에 입각해서 설명했다면, 같은 결론이 나왔더라도 훨씬 받아들이기가 수월했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