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오찬호 박사는 '다양한 관점'을 들었습니다. <현대사회학>을 쓴 석학 앤서니 기든스 역시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회학은 우리가 왜 지금의 우리가 되었고 왜 지금과 같이 행동하게 되었는지를 훨씬 더 폭넓은 시각을 가지고 들여다봐야 한다고 역설한다."(<현대사회학> '사회학이란 무엇인가' 중) 다양한 관점과 폭넓은 시각, 기든스는 커피를 예로 듭니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이지만 생활 습관이자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사교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커피는 중독성이 있지만 담배·마리화나와 다르게 규제되고, 그 정도도 공동체마다 다 다릅니다. 커피는 식민지 착취와 아동 노동의 역사와 함께 했기에 불매운동과 공정무역의 대표 상품이 되기도 했어요. 우리는 커피 한 잔을 두고도 이렇게 이야기를 무궁무진하게 뻗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발견하고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복잡한 세계에 존재하는 차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게 되죠. 이것이 사회학의 임무이자 성취였습니다. 이런 관점과 시각을 대체 무엇에 쓰느냐고 냉소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쓸모'하다고 보는 관점,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과는 하등 관련이 없다는 시각이 지금 대학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의 배경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뜻밖의 맥락에서 '사회학'이란 단어를 듣고, 꽤 가까운 곳에서도 사회학적 접근법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전략책임자가 신문을 버리고 디지털로 옮겨가며 뉴스룸을 혁신한 과정을 설명하는데, 기사를 쓰는 '편집팀'과 신문을 파는 '영업팀'이 분리된 게 "사회학적(sociological)으로 흥미로웠다"고 표현하더군요. 독자가 알고 읽고 싶어하는 내용을 정확히 겨냥한 기사를 쓰고, 그 기사를 팔아야 하는 세상에 편집팀·영업팀이 철저히 나뉜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직장에서 이 부서와 저 부서가 구분되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일하게 된 이유, 또 그 부서들을 서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 역시 사회학적으로 접근할 문제란 인식을 드러낸 말이었어요. 사회학은 생각만큼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갈등이 심각한 회사라면, 그곳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사회학인지도 모릅니다. 사회학은 이 같은 접근법을 확대해 청년과 노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빈자와 부자, 남성·여성 등 젠더, 기독교와 이슬람, 인종과 민족이 얽히고설킨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려고 애써왔어요.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어떤가요? 정치적 양극화, 장애인 등 소수자 혐오, 젠더 갈등 등으로 점철돼 있습니다. 이런 갈등을 중재할만한 책임 있는 정치세력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갈등을 부추깁니다. 정말 '타성으로부터 벗어나서 모든 것을 새롭게 바라볼 것을 요구하는 사회학적 상상력'(기든스)이 절실히 필요한 때 같아요. 당장 사회학이 직면한 대학의 구조조정, 통폐합 역시 사회학적 접근법이 필요한 갈등의 현장입니다. 그것이 대구대의 20대 사회학도가 폐과 경험을 사회학적 연구 결과로 남기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어느 사회학과의 죽음을 추모하는 학술제를 열지만,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갈수록 사회학이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때 우리 사회는 대처하기에 충분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보유하고 있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