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버텼고 이제 겨울이 온다 선선한 가을날이 며칠 이어지니 숨막히게 더웠던 지난 여름의 불볕 더위를 금세 잊고 말았습니다. 에어컨 없이는 아주 잠깐도 버티기 힘들었는데 말이에요. 그 여름을 오롯이 공장 옥상에서 난 두 여성이 있습니다. 곧 겨울이 올 모양인데, 아직도 내려오지 않았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한진중공업 사태 때 타워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했던 여성노동자 김진숙씨가 보내온 기고문을 읽고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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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과 박정혜와 소현숙 2024. 10. 30.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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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묻고 싶다. 명태균을 아느냐고. 거의 안다고 대답하지 않을까. 길을 막고 묻고 싶다. 박정혜, 소현숙을 아느냐고. 아마 대부분 모른다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고 하지 않을까. 공천개입, 2000장이 넘는다는 김건희와의 카톡 등 수많은 화제를 뿌린 명태균은 몰라도 되는 사람이다. 존재해선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재미있다. 구중궁궐 심산유곡의 비사들이 매일 터져나오는 요즘 뭔가 쾌감마저 느껴지며 내일은 어떤 게 나오려나 궁금해서 잠도 안 올 지경이다. 반면 박정혜, 소현숙은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노동자들은 그렇게 쉽게 버려지는 존재가 아니라고 불탄 공장에서 300일을 버틴 사람들. 근데 이 스토리는 재미가 없다. 잘리고 싸우고 삭발하고 단식하고 고공에 올라가고 그러다 누군가는 죽고. 유사 이래 뻔한 스토리니까. "배 나오고" 지가 뭘 안다고 "철없이 떠드는 오빠"도 없고, "아휴 뭘 이런 걸" 하면서 받아 챙긴 "파우치, 외국 회사 그 쪼만한 백"도 없고, 주식으로 수십억원을 번 재테크 신화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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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6일 저녁,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10개월째 공장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오른쪽), 소현숙씨가 농성 중인 텐트에서 나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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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박정혜, 소현숙도 허공에 뜬 그 막막하고 아득한 시간들을 그런 뉴스들로 때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왜 우리 얘긴 아무도 안 할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아예 잊은 게 아닐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 당시 희망버스가 오던 날, 가족대책위 대표가 희망버스 승객들에게 아이를 업은 채 이런 말을 했다. "희망버스가 오기 전 너무 무서웠다. 세상 사람들이 우릴 다 잊은 게 아닐까. 김진숙 지도님은 저 위에서 말라죽는 게 아닐까." 희망버스가 오기 전 나는 하루에도 수십번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사람들 시선을 확 끌 만큼 인물이 잘났다면,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추거나 피리라도 불 줄 알았으면 사람들이 여길 와보지 않을까. 콘크리트가 달아올라 찜통 같던 여름을 지나 고공의 밤은 어느새 겨울일 것이다. 봄과 가을이 없던 기억. 뼈가 시린 게 어떤 추위를 말하는지 난 크레인에서 겪었다. 그러나 정작 뼈가 시린 건 외로움이고 고립감이었다. 재미있는 영화 기사를 보다가, 여기서 코 닿는 데 있다는 영도 유명 맛집을 보다가, 가을에 좋은 여행지를 보다가 문득 치받치던 서러움. 세상 사람들이 다 짠 듯이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허공에서 아무도 듣지 않는 얘기들을 혼자 절박하게 떠드는 내가 나도 믿어지지 않았다. 소현숙, 박정혜는 어떤 생존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 얼마 전 남화숙 교수가 쓴 <체공녀 연대기>라는 책을 읽었다. 일제강점기인 1931년 을밀대 지붕 위에서 농성을 했던 강주룡부터 2011년 한진중공업 85크레인 김진숙까지의 여성 고공농성 투쟁기다. 그 책은 김진숙까지다. 거기서 끝나야 했다. 그러나 그 역사는 유구히 이어져 2019년 도로공사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 2020년 영남대의료원 박문진, 2024년 구미 옵티칼 박정혜와 소현숙까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소현숙, 박정혜는 김진숙의 309일 기록마저 깰 참이다. 이어질 필요가 없는 역사가 이어지고 깨질수록 참담해지는 기록이 깨지고 있다. 노동자는 죽어야, 그것도 여럿이 한꺼번에 죽어야, 어이없이 죽어야 기사 한 줄 날 뿐이고 극단적이어야 잠시 관심을 끌 뿐이다. 허리도 다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뒤주만 한 공간에 사도세자처럼 갇힌 노동자로 인해 하청노동자의 현실이 저 정도였냐며 비로소 사람들은 놀랐고, 몇년 후 그 유최안은 다시 반짝 기사화됐다.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고. 김건희를 기소도 못한 그 검찰로부터. 더 늦기 전에 박정혜와 소현숙이 내려와야 한다. 동료들의 손을 잡고 공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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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성 노동자의 고공농성은 내일(11월 2일)로 300일이 됩니다. 이들이 농성 중인 곳은 경북 구미의 공단에 있는 LCD 편광필름 생산 공장입니다. 회사 이름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한국옵티칼), 모회사는 일본의 닛토덴코입니다. 2년 전 공장에 큰 불이 났습니다. 한 달 만에, 회사는 아예 공장 문을 닫고 법인을 청산하기로 결정합니다. 노동자 200여명은 단번에 잃자리를 잃게 됐어요. 공장에 불이 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일까요?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모회사인 닛토덴코는 생산을 포기한 게 아니었어요. 똑같은 편광필름을 생산해 여전히 LG디스플레이에 납품했습니다. 장소만 바뀌었어요. 구미가 아닌 평택에 있는 또다른 자회사, ‘한국니토옵티칼’ 공장으로요. 사람도 새로 뽑았습니다. 구미 공장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회사는 공장을 철거하겠다고 할 뿐, 고용 승계 요구는 거부합니다. 일부 노동자들은 '부당 해고'라며 공장을 점거합니다. 회사는 가압류를 걸고 수도와 전기를 끊으며 압박합니다. 노동자들은 '반인권적 탄압'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지만 아직 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올해 1월, '이대로는 모두 쫓겨나겠다' 생각한 두 명의 노동자가 옥상에 올라 농성을 시작합니다. 박정혜·소현숙씨가 공장 옥상에 올라 아직 내려오지 못하는 배경입니다. "화재 당일까지 신규 채용을 하고 수백 억을 벌던 회사가 하루 아침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전형적인 '먹튀'다." (최현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지회장의 말) 공단에 공장이 입주할 때 한국옵티칼은 구미시로부터 토지를 무상으로 임대하고 세제 지원도 받았습니다. 18년간 이 회사를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돈이 6조3354억원에 달한다고 금속노조 법률원은 분석합니다. 법인세 비용은 410억원이었고요. '먹튀' 지적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지난 7월 일본 도쿄 중의원에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두 노동자는 겨울이 오기 전에 내려올 수 있을까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정지윤 기자의 포토다큐를 통해 이들의 '옥상 생활'을 한 번 살펴보실 것을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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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본 기업 닛토덴코의 자회사인 한국옵티칼은 2년 전 공장에 불이 나자 법인을 청산하고 노동자 200여 명을 해고했다. ✦ 2. 닛토덴코는 평택의 또 다른 자회사 공장으로 구미 공장 생산 물량을 이전했다. 그러면서도 구미 공장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 3. '부당 해고'에 저항한 노동자들은 공장을 점거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해 왔다.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박정혜, 소현숙씨가 공장 옥상에서 농성을 벌인 지 11월 2일로 300일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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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공천 개입이 의심되는 통화녹음이 공개돼 파장이 커지고 있습니다. 의혹이 윤 대통령을 직접 겨누게 되면서 정권 차원의 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
박정희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파병 결정 유사점을 손제민 논설위원이 짚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김일성과 비슷한 노선을 택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왜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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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과목에서 선행 학습을 용인하는 국가에서 유일하게 뒤로 미뤄두는 교육이 성교육이다.' '외설스럽다'는 민원에 성교육을 포기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갑니다. |
지난 주말 차별금지법 반대 집회에 경찰 추산 23만명이 모였습니다. 이 법이 생기면 '말 한 마디만 잘못 해도 처벌받는다'는 주최측 주장을 이예슬 기자가 따져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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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약은 사회악이지만 마약중독자는 피해자라는 생각이 드는 레터였어요. 중독자들과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다는 주민들을 보며, 사진 너머로만 접한 그분들을 내심 한심하게 바라보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집니다. (윰님) 📬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생각났어요. 펜타닐과 나르칸도 그 영화를 통해서 처음 들어보았는데요. 관심 있는 분들께 꼭 추천 드려요. 희망을 구태여 그리는 영화가 아님에도, 희망을 떠올리게 되는 힘이 나는 작품이었거든요. (익명의독자님) 📬 이번 레터에서 다룬 텐더로인 거리 사례는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봐야 할 것 같네요. 우리나라도 캠페인이나 정책 등 여러 방면으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LAOUM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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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좀비도시를 구하라>를 읽고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이야기입니다. 독자님께서 추천하신 영화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분들을 위해, 손희정 문화평론가가 쓴 칼럼 '용기에 대하여'도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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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국감이 큰 성과는 없었지만 적어도 '노동자'로서의 아이돌에 대해 모두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K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착취당하는 아이돌과 이용당하는 팬들 사이에서 기획사만 돈을 버는 행태는 더이상 보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마고님) 📬 뉴진스 사태로 불리는 것들로부터 많은 논의가 시작됐습니다만, 대중문화예술산업 종사자의 노동자성에 대한 논의가 백지부터 시작하는 것 처럼 언급하면 안됩니다. 1990년대 유인촌 현 문체부 장관이 노조 위원장을 역임했던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의 이야기나, 현재 서울지방노동청이 인가를 내주고 있지 않는 영화배우노동조합, 그리고 가수협회와 가수노동조합의 관계 등 대중문화예술인들의 노동조합 운동은 꾸준히 있어 왔고, 세부적으로 들여다볼 문제가 현재도 많습니다. 이 문제들의 맥락을 알고 그 연장선상에서 질문을 던져야 제대로 된 논의가 가능합니다. (익명의독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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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자님께서 뉴진스 사태 훨씬 이전부터 연기자와 배우, 가수 등이 노동자로 인정 받고 권리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해왔음을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예술 산업 전반의 노동 문제를 더욱 폭넓게 조명해야 하겠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의 이야기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통찰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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