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니라니까요… 독자님은 서울 여의도에서 열렸던 ' 솔로대첩'을 아시나요? 벌써 12년이 됐더군요. 이벤트 참가자 성비 불균형이 엄청나게 커서 화제가 됐어요. "여자보다 비둘기가 더 많은 것 같다"는 남성 참가자의 인터뷰가 잊히지 않습니다. 이런 만남 사업, 자칫하면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인데 지자체들은 각 지역별 솔로대첩에 열심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요모조모 짚어본 기사를 한 편 소개해요. 길이가 길어 조금 간추렸습니다. |
|
|
소개팅 주선 못 놓는 지자체 2024. 10. 30. 김원진·고희진·탁지영 기자 |
|
|
'너랑나랑 두근대구' '하늘이 무너져도 내 짝은 있다' '오늘은 썸데이'….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지역 내 '중매쟁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미국 코미디언 아지즈 안사리와 사회학자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책 <모던 로맨스>에서 "국가가 싱글들의 만남에 돈을 대주거나 젊은이들이 얼큰하게 취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나라는 일본 외에 어디에도 없다"고 했지만 바로 옆 한국에서도 연간 수천만~수억원의 예산을 들인 지자체 주도의 만남주선 행사가 열린다. 29일 전국 17개 광역·226개 기초자치단체에 정보공개청구로 입수한 사업계획서·결과보고서와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미혼남녀 결혼 행사 건수'를 보면 올해 만남 주선에 관여한 지자체는 최소 54곳이다. 지자체의 만남 주선은 유행처럼 번지며 2019년 48곳에서 행사가 열렸다가, 이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일부 지자체만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이후 회복세를 보여 현재까지 만남 주선 행사를 최소 1번 이상 개최했거나 개최를 시도한 지자체는 100곳에 가깝다. 행사는 용역업체가 맡는다. '건전한 만남 기회'(경북 울진군) '진정한 만남 기회 제공'(전남 영암군)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제고'(경남 진주시) '만남의 안전한 창구 마련'(경남 김해시)을 내걸며 '남녀의 만남→결혼→출생'을 목표로 한다. 주로 지자체 출산보육과, 여성가족과, 청년정책팀, 인구정책팀이나 보건소가 행사를 총괄한다. |
|
|
경상북도가 지난 7월 4박5일 일정으로 진행한 미혼남녀 만남주선 행사 참가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경상북도 제공 |
|
|
여성 참가자가 없다 행사가 끝나면 지자체들은 앞다퉈 '매칭률 40%' '커플 8쌍 탄생'처럼 성과가 담긴 보도자료를 내놓는다. 만남 주선 행사가 성황리에 끝나는 것 같지만 내막은 조금 다르다. 여성 참가자를 모으려 지자체는 개인정보 수집과 일대일 홍보, 공무원 강제 차출을 마다하지 않았다. 행사의 매칭률도 수시로 부풀렸다. 지자체의 만남 주선이 예능 프로그램과 달리 난항을 겪는 가장 큰 이유는 여성 참가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양군이 지난해 12월 경찰서·소방서·교육지원청에 수요조사를 해보니 예상 남성 지원자 18명, 여성 지원자는 2명이었다. 경북 김해시가 지난해 추진한 '나는 김해솔로' 2기 신청자도 남성(120명)이 여성(32명)보다 3.8배 많았다. 전남 화순군은 지난해 6월 '커플매칭 화순사랑 더하기' 공고를 냈다가 여성 참가자를 모집하지 못해 행사를 취소했다. 사업을 중단한 지자체들은 '성비불균형-여성 신청자 수가 적음'(충북 진천군), '상대적으로 여성의 참여율이 저조해 행사 진행을 못하게 됨'(제주 서귀포시), '미혼여성 참가인원 미달'(경남 함안군), '여성 참여자 신청인원 부족'(경기 가평군), '지역여건상 여성 참가자 모집이 어렵고 목적에 따른 효과가 매우 미흡'(경남 통영시) 등의 답변을 내놨다. 지자체는 여성 참가자 모집에 몰두한다. 올해 4월 전남 광양시는 '광양 솔로엔딩' 참가자를 재모집하며 '여성 20명'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경북 예천군은 올해 '1박2일 청춘공감 심쿵야행'을 추진하면서 운영계획서에 '여성참여자 위주 참여 유도'라고 적었다. 경남 김해시는 올해 내부계획에서 "여성 근무자 비율이 많은 어린이집, 호텔, 백화점 등에 '찾아가는 홍보 활동'을 하겠다"고 했다. 올해 만남 주선 행사에 1억5000만원을 편성한 경북은 여성 참가자격을 지난해 '경북 또는 대구'에서 올해 '전국'으로 확대했다. 그래도 여성 참가자가 모이지 않으면 관내 공무원 차출로 이어진다. 2022년 해남군 보건소가 작성한 '땅끝 솔로탈출 여행 행사 결과 보고' 문서를 보면 '여성 참가자 신청 저조(자발적 신청 1)'라고 쓰여 있다. 당시 여성 참가자는 15명이었는데 14명은 사실상 반강제로 참가한 것으로 보인다. 14명 중 8명은 행사 담당인 보건소 여성 직원이었다. 해남군은 2019년 행사 때에도 여성 참가자 16명 중 '자발적 신청자는 1명뿐'이라며 '행사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
|
|
전남 해남군 소속 보건소에서 작성한 ‘제7회 땅끝 솔로마을 여행 행사 결과 보고’ 문서. 해남군 제공 |
|
|
여성 인구도 없다 억지로 여성 지원자 수를 맞추더라도 끝이 아니다. 좁은 지역에서 연애와 만남이 회자될 때 수군거림의 대상이 주로 여성이 되는 점이나 지역의 가부장적 문화를 고려하는 지자체 노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 '여성 참가자들은 나이가 어려 덜 적극적'(전남 고흥군)이라고 분석하거나 '접수 연령 조정 검토'나 '좁은 지역 내 보수적 성향으로 여성들이 참여를 꺼려 모집 범위를 거제·고성으로 넓혔다'(통영시)는 수준의 대안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 전남의 한 20대 여성 공무원은 "지자체에선 여성들이 왜 참여를 안 하는지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선 덜 고민한다"고 했다. 오히려 지역에선 비자발적으로 행사에 등록한 여성 참가자를 탓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2020년을 끝으로 사업을 종료한 충남 태안군은 내부 문서에 사업 중단 이유를 '여성 참가자의 소극적인 태도'로 들었다. "여성 참가자 대부분은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참여로 매년 참여 실적이 저조할 뿐 아니라, 행사 진행 시에도 소극적인 태도 및 형식적인 참가 등으로 남성 참가자들로부터 의욕 저하와 불만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6월 진행한 '2023 결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만남 주선 행사의 필요성을 묻는 말에 18~29세 여성은 18%만 '필요하다'고 답했다. 같은 나이대 남성의 2명 중 1명(51%)이 '필요하다'고 답한 것과 차이가 크다. 최근 10년 사이 20~30대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며 행사에 참여 가능한 여성은 더 줄어들었다. 2015~2016년을 기점으로 20~30대 여성은 남성보다 더 가파르게 감소했다. 동남권에서 수도권으로 이동한 20~34세 여성의 순이동자 수는 2015년 4819명에서 2020년 1만2816명까지 늘었다. 지난해 여성 1명당 남성 비율을 나타내는 성비를 20대 기준으로 보면 경북(1.33), 울산(1.31), 강원·경남(1.28) 순이었다.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 수도권으로 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기회 때문이다.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뜻하는 '산업 가부장제'(양승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20~30대 여성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대표적으로 설명해주는 용어다. 특히 제조업 중심지일수록 여성에겐 공무원, 은행 등을 제외하면 양질의 일자리가 없어 '경력 봉쇄' 도시가 된다. 여성이 일할 만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데, 지자체는 지역에 몇 안 되는 안정된 직장 근무자 위주로 행사를 운영하다 보니 청년층 여성을 찾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
|
|
경상북도가 지난 2월 20일 도청에서 ‘저출생과 전쟁 선포식’을 열고 있다. 경상북도 제공 |
|
|
가장 손쉬운 사업 사업을 중지한 지자체는 만남→결혼→출생으로 이어지는 정책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고 판단한다. 강원 홍천군·동해시, 경남 함양군, 전북 정읍시, 충북 옥천군 등은 "사업 실효성, 효과성 부족"을 이유로 사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근본적인 저출생 대책이 아니다'라는 여론에도 만남 주선 행사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자체 공무원들은 '옆 지자체가 하기 때문에' '지자체장이 원해서' 등으로 답했는데, 결국 만남 주선 행사가 '손쉬운 사업'이라는 결론으로 모아진다. 지자체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의 손을 거치면 행사는 '매칭률 40%'의 성공적 사업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일부 용역업체는 높은 매칭률로 광역 단위 만남 주선 사업을 독식한다. 공무원과 용역업체 모두 이득을 본다. 높은 매칭률은 허수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사회자는 남녀에게 각각 1~3순위를 써내게 한다. 서로를 3순위로 써낸 이들도 '커플'이 된다. 행사 참여 경험이 있는 유성준씨(32·가명)는 "서로 원치 않는 매칭이 될 수 있어 3순위까지 쓰기 싫었지만 사회자가 반강제로 쓰도록 했다"고 했다. 유씨는 "행사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저출생 극복을 위한 정책으로 만남 주선 사업을 1순위로 꼽는 참가자가 많은 이유도 사회자의 부탁 때문"이라고 했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긍정적인 인식 변화도 확인된다. 만남을 내세우기보다 지역 청년들의 소통을 촉진하는 데 힘쓰는 지자체들이 늘고 있다. 한때 만남 주선 행사를 운영했던 지자체가 '저출생 현상의 근본 원인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저출생은 만남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직업, 주거 등 복합적인 문제'(경남도), '만남 주선보다 경제적 부담 경감과 보육 인프라 지원으로 저출생 시책 주력'(부산 금정구) 등의 의견을 밝혔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
|
지자체가 여는 만남 주선 행사들이 모두 '저출생'과 관련 있다는 건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를 않습니다. 미혼 성인을 재생산 행위자로 보는 시선은 별로 유쾌하지 않고, 저출생의 진짜 원인은 사람 만날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란 것을 얼마나 더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을 땐 답답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자체는 소개팅 사업 구상이 저출생 해법 차원에서 나왔다는 걸 그다지 숨길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출산보육과, 여성가족과, 인구정책팀 같은 이름을 가진 부서가 관여하는 것을 보면요. 서울시는 지난해 저출생 대책으로 추진하던 '서울팅' 사업을 철회하고도, 올해 비슷한 사업을 '여성가족실' 산하 '저출생담당관' 소속 팀에서 진행합니다.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하는 사업이니 '가성비'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금 쓴 보람은 있어야겠죠. 작년 서울시가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해서 진행하려던 '서울팅'은 8000만원짜리 사업이었습니다. 경북도는 올해 만남 주선 행사에 1억5000만원을 배정했다고 해요. 각 지자체가 집계한 결혼 성사율은 경남 진주시 2.8%, 경북 구미시 5.7%, 경남도 3.4%, 전남 광양시 2.1%, 전남 장흥군 0.7% 등입니다. 전북 군산시는 결혼 성사율이 0%라 사업을 접었고요. 성과가 나오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이 사업의 바탕에 깔린 관료적·가부장적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소개팅 사업이 성공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성 참가자가 오지 않으면 원인을 찾아야 할 텐데, 여성 공무원을 의사와 관계 없이 강제 차출하거나 '여성 참가자가 소극적' '남성 참가자들에게 불만을 야기한다'며 여성을 탓합니다. 이유를 엉뚱한 데서 찾는단 점에서 이 사업들의 태생과 닮았네요.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자체가 매개하는 만남이 범죄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는데, 스토킹·교제폭력 같은 범죄 성향이 재직증명서나 소득·재산으로 거를 수 있는 것이던가요? 일부 지자체들은 만남 주선 행사가 무용하다는 것을 깨닫고 저출생의 진짜 원인을 고민하기 시작했거나, 억지 만남 대신 소통의 기회를 마련하려고 한다니 다행입니다. 자매품으로 지역의 저출생·고령화 문제를 해결해겠다며 만들어진 ' 농촌총각 국제결혼 지원 조례'라는 것이 있는데요. 말 그대로 '농촌총각'들이 이주여성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지원금을 주는 조례입니다. 성차별적인 것은 물론이고, 매매혼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다행히 자취를 감추는 중입니다. 12년 전 '솔로대첩'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행사들은 이제 그만 봤으면 좋겠네요. 중매에 열심인 지자체들의 다른 소식을 담은 기사들도 소개합니다. 만남 주선 사업을 지자체 평가 항목으로 지정한 광역자치단체의 이야기, 지역 새마을지도자 자녀들만 대상으로 만남 주선 사업을 추진하다가 특혜 시비에 휘말린 지자체 이야기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
|
|
✦ 1. 지자체들이 만남 주선 사업에 열심이다. 대부분 '저출생' 문제와 관련해 진행하는 사업들이다.
✦ 2. 이런 사업들엔 여성 참가자가 잘 모이지 않는다. 지자체는 여성을 강제 차출하거나, 여성이 비협조적이라며 탓한다. ✦ 3. 다행히 억지 만남 사업을 접고, 저출생의 진짜 원인을 고민하기 시작한 지자체들이 나오고 있다. |
|
|
윤석열 대통령이 '명태균 의혹' 등을 해소하겠다며 연 끝장 기자회견. 해소된 의혹이 있는지 짚어봤습니다. 정치권 평가는 어떨까요? 시민들의 목소리도 들어봤습니다. |
"전화 한 통이면 세계평화를 되찾을 것"이라 장담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동시에 '힘을 통한 평화' '강한 미국'도 주창합니다. 전쟁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
|
|
아파트 청소노동자 휴게실, 어딨는지 아시나요? 경기도 아파트 10곳 중 6곳에선 청소노동자 휴게실이 지하에 있습니다. 진짜 휴게권을 위해서는 지상에 있어야 합니다. |
전국 법원 홈페이지가 해킹됐습니다. 디도스 공격이 의심됩니다. 5월에도 북한 해킹조직으로 추정되는 집단이 법원 전산망을 공격해 개인정보 1014GB가 유출됐습니다. |
|
|
📬 이런 분들이 계시는 대한민국이 고맙습니다. 이런 분들이 고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동참하고자 합니다. (밝은이님) 📬 참사를 기억하고 애도하지 않는 것을 넘어 희생자와 유가족, 구조자를 모욕하고 보호하지 않는 모습에서 시민들은 어떻게 국가의 존재 의의를 떠올릴 수 있을까요. (반바지님) 📬 국가가 나서야 할 일에 개인이 나서도 이후의 책임은 모두 개인이 져야 한다는 것이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너무 무섭고 안타깝습니다. (마고님)
📬 매번 감사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는데, 오늘은 정말 미루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의견을 남겨요. 며칠 전 여성 노동자분들의 이야기도 그렇고 오늘 잠수사님의 이야기, 고립 은둔 청년과 동두천 성병 관리소 등 제가 노력해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그렇지만 무심코 넘기면 안 될 사람과 사건을 꺼내 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비밀입니당ㅎ_ㅎ님) |
|
|
📝 지난 점선면Lite <⭐️ 그가 떠났다 별들 곁으로>를 읽고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이야기입니다. 많은 독자님께서 고 한재명 잠수사님을 비롯한 의인들께 감사와 존경의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점선면팀은 계속해서 관련 보도를 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의 이야기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통찰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
|
|
경향신문 뉴스레터팀 광고, 기타 문의: letter@khan.kr 서울시 중구 정동길3 경향신문사 l 02-3701-1114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