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를 죽여서 주 5일 몸을 일으켜 출근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부족해!' 퇴근해서 요가하고 집에 오면 씻고 잘 시간이에요. 집안일은 주말에 맡긴다 쳐도 이제 막 시작한 풋살은 언제 연습해서 실력을 늘리고, 단풍산행은 언제 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 만나고, 보고 싶은 영화는 언제 보느냔 말이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주 40시간보다 노동시간은 더 줄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국회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서 개발 직종을 '주 52시간제 예외'로 두겠대요. 기사를 읽고 더 이야기 나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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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는 주 52시간제 예외로" 2024. 11. 14. 김윤나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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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이 연구개발(R&D) 종사자에게 주 52시간제 예외를 적용하는 반도체특별법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장에서 엔비디아 등에 밀린 이유는 연구개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깔린 것이다. 한국은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현행법으로도 탄력근무제 등으로 주 80시간 노동을 허용하고 있다. 장시간 노동이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특히 근본적으로 여당 법안은 삼성전자 경영진의 전략 실패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추진하는 '반도체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은 신상품 또는 신기술의 연구개발 노동자에게 당사자 간 합의를 거쳐 주 52시간을 초과하는 근무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의 엔비디아 노동자들은 주 7일, 심지어 새벽 2시까지 근무한다는 '비교' 논리도 나온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11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과 만나 "집중적인 R&D가 필요한 영역에서 근로시간을 통제해놓으니 효율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며 "그런 부분이 있다면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호응했다. 재계는 '한국형 화이트칼라 이그젬션(white collar exemption)'을 도입하자고 요구해왔다. 미국에서 시행 중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은 연봉 10만7432달러(약 1억5000만원)가 넘는 고소득 노동자에게 주 40시간 초과 노동에 대해 연장근로수당 1.5배를 적용하지 않는 제도다. 미국에서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지만 노동시간 상한 규제가 없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경총 입장에선 법정 노동시간 한도를 피하면서도 장시간 노동에 대해 가산임금 1.5배를 주지 않아도 되는 일타쌍피가 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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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와 학계는 연구개발 인력이 주 52시간제에 묶여서 반도체산업이 부진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한국은 지금도 장시간 노동 국가다. OECD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01시간으로 미국의 1804시간보다 많다. 현행법만으로도 선택근로시간제·탄력근무제·재량근로시간제 등을 활용하면 주 80시간, 혹은 무제한 노동이 가능하다. 선택근로시간제는 노동자대표와 서면 합의에 따라 연속 16주간 주 80시간 한도의 장시간 노동을 허용한다. 탄력근무제는 6개월 내 최대 64시간까지 연장근로를 허용한다. 재량근로시간제는 회사가 노동자에게 업무수행수단과 노동시간 배분에 대해 구체적인 지시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사실상 무제한 근무를 허용한다.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엔비디아의 경우, 보상 체계가 달라 노동시간만으로 따지기엔 무리다. 블룸버그는 지난 8월 엔비디아 노동자를 '황금 수갑(golden handcuffs)'을 찬 신세라며 장시간 노동을 견딜 수 있는 이유가 높은 보상 체계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4년에 걸쳐 회사 주식을 나눠주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주식을 다 받기까지 퇴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CNN은 이같은 노동자 쥐어짜기가 지속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장시간 노동이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연구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2017년 '근로시간 단축이 노동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OECD 회원국의 취업자 1인당 연간 평균 근로시간과 근로시간당 부가가치 산출(GDP) 관계는 뚜렷한 음의 상관관계가 있다. 노동시간이 짧은 국가일수록 노동생산성이 높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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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이 국민대만대학교 체육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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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기업의 노동시간과 영업이익률은 상관이 없다는 자료도 있다. 미국 정보기술(IT) 교육프로그렘 제공업체인 '풀스택아카데미'는 지난 7월 매출액 기준 미국 500대 기업(포춘 500)을 조사한 결과, 일과 삶의 균형과 영업이익률 간의 명확한 상관관계가 없다고 보고했다. 일례로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원들로부터 '일과 삶의 균형'이 좋다고 평가받고 영업이익률도 36.69%로 1위였지만, 영업이익률 2위인 미국의 무선통신 연구개발기업 퀄컴은 일과 삶의 균형이 나쁜 것으로 조사됐다. 오히려 반도체업계가 노동시간을 줄여야 우수기술인력을 붙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 경영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2022년 '반도체업체가 인재 영입전을 경쟁 우위로 전환하는 방법' 보고서에서 "미국에서는 2030년까지 반도체산업 전반에 걸쳐 30만명의 엔지니어와 9만명의 숙련된 기술자가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반도체업계 종사 선호도가 자동차나 빅테크 분야보다 낮다고 분석했다. 반도체산업 종사자들은 다른 테크기업이나 자동차 회사 종사자들보다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과 고위 경영진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는 것이다. 이때문에 노동계는 주 52시간제 근무 예외 법안이 반도체업계의 경영실패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SK하이닉스 기술·사무직 노동자들이 가입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는 지난 12일 "현재 삼성전자가 겪는 반도체 사업의 부진은 경영 실패에 기인한 것"이라며 "SK하이닉스가 현 근로시간제도 하에서 순항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그 반증"이라고 했다. 삼성전자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는 SK하이닉스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에 뒤늦게 뛰어들기로 한 경영진의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삼성전자 직원들은 이미 주말 특근과 연장 근무를 강요받고 있다"며 "경영진의 전략 부재와 무능을 성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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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4일, 삼성전자 주가가 ' 4만원대'로 추락했습니다. 4년 5개월만의 최저가예요. '삼성전자 위기론'이 커지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에서 고전하고, 범용 메모리 분야선 중국 기업들에 바짝 추격당하고 있습니다. 파운드리에서는 1위인 대만 TSMC와 격차가 벌어졌고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불확실성도 높아졌습니다. 앞서 조 바이든 정부는 미국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건설·확장하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칩스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도 미국에 공장을 짓는 등 투자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트럼프는 칩스법을 두고 " 나쁜 거래"라면서 보조금 축소, 관세 부과를 만지작거립니다. 삼성을 나라의 대들보로 여기는 이들의 불안을 자극할 만합니다. 정부가 먼저 발 벗고 나섰습니다. 지난 5월엔 반도체 산업 지원 방안을 발표해 26조원 규모의 지원을 하기로 했어요. 윤석열 대통령은 "반도체가 민생이고,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일 모두가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발언도 했네요. 여야도 앞다퉈 반도체 지원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주로 감세와 보조금 지원을 골자로 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삼성 살리기'에 돌입한 와중, 급기야 노동자를 죄이는 안까지 등장했습니다.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볼모 삼아 '원가 절감'을 하겠다는 시도가 새롭지는 않습니다. 엔비디아를 들먹이면서 '삼성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데선 향수까지 느껴집니다. 1970~80년대엔 하루 네 시간 자면서 공부하면 대학에 붙고 다섯 시간 이상 자면 떨어진다는 ' 사당오락'이라는 말이 유행했거든요. 옛말이 됐죠. 이젠 '잠 잘 자야 공부도 잘된다'고 합니다. 공부랑 노동이 크게 다를 리 없는데, 왜 '잠 잘 자야 일도 잘된다'는 아직 통용되지 않는 걸까요. 정부는 노동자에게 뇌혈관이나 심장계 질병이 생겼을 때 발병 전 석 달 동안 주 평균 52시간 넘게 일했다면 '업무와 질병의 관련성이 30% 증가한다'고 봅니다. 주 60시간 넘게 일했다면 '관련성이 강하다'고 보고요. 과로는 노동자를 아프게 한다는 건 상식입니다. 국회는 삼성이 잘 되기 위해서라면 노동자는 좀 아파도 된다고 여기는 걸까요? 요동치는 반도체 시장에도 SK하이닉스는 순항합니다. SK하이닉스 노동자가 더 오래 일해서는 아닙니다. 삼성이 재기하기 위해선 노동자를 착취하는 시대착오적 방안이 아니라 다른 쇄신안이 필요합니다. 재벌 중심, 대기업·중소기업의 수직화된 조직 구조를 탈피해 '책임지는 리더십'을 세워야 한다는 제언도 나옵니다. 정부든 국회든 정말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면 더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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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산업이 위기를 겪자 국민의힘이 반도체특별법을 내놨다. 연구개발(R&D) 종사자에 주 52시간제 예외를 적용하는 내용을 담았다. ✦ 2. 한국은 이미 장시간 노동 국가인 데다 현행법만으로도 이미 주 80시간 노동이 가능하다. 노동계와 학계는 경영진의 전략 실패로 인한 부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법안이라고 비판한다. ✦ 3. 장시간 노동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우수 인재 유출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삼성의 재기를 바란다면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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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학생들의 저항이 다른 여대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남녀공학 전환 추진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학생들의 주장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부터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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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착용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전담하는 정신병원을 세우겠다고 이란 정부가 밝혔습니다. 여성들의 저항을 '정신질환'으로 낙인찍을까 우려됩니다. |
흔히 비만을 만병의 근원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비만 기준은 '체질량지수(BMI) 25'. 그런데 BMI 25 부근에서 사망위험이 가장 낮다는 분석이 나왔어요. 비만 기준을 바꿔야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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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이 듭니다. 이번 레터의 제목과 같이, "큰 꿈을 펼쳐라" 라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정말 수능이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의 수능과 입시는 꿈을 찾는다는 원래 목적에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습니다. 앞으로 수능을 볼 사람으로서 더 좋은 대학을 위한 경쟁이 아닌, 자신의 꿈을 위한 노력이 더 가치있게 평가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이상한까마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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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큰 꿈을 펼쳐라>를 읽고 한 독자님이 남겨주신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수능과 입시는 꿈을 찾는다는 원래 목적에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는 독자님의 생각에 서글프게 공감합니다. 앞으로 수능을 볼 예정이시라고요. 수능을 잘 보시면 좀더 많은 기회를 얻으실 수 있겠지요. 하지만 혹시 아니더라도, 사회가 규정한 틀이 아닌, 독자님만의 큰 세상 안에서 자유로운 꿈을 꾸시길, 그 꿈으로 멋진 미래를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의 이야기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통찰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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