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꽃. '폭력 대신 평화'를 뜻하는 클리셰로 느껴지기도 해요. 1960년대 미국에서 베트남 반전시위에 참여한 시민이 시위대에 총을 겨눈 군 앞에서 꽃을 든 사진이 잘 알려져 있죠. 뱅크시의 그래피티 중 화염병 대신 꽃을 던지는 시위대를 표현한 작업이 유명하고요. 이런 이미지들이 익숙해서 그런지, 비폭력의 상징으로서의 꽃은 다소 뻔한 느낌입니다. 포르투갈 혁명군 총구에 꽂힌 꽃은 좀 다르게 다가와요. 셀레스트 카에이루가 들고 있던 빨간 카네이션은 보통의 존재, 보통의 일상에서 나온 것이라 더 특별합니다. '나는 총에 꽃으로 대항하겠다'는 메시지를 표현하려고 일부러 준비한 게 아니라서요. 때로는 만인이 아무리 머리를 모아도 어려운 것이 평화 아니던가요? 어떤 평범한 가게의 1주년을 축하하려던 꽃이 평화 혁명을 상징하게 됐다는 것이 경이롭기까지 해요. 폭력은 후유증을 부르죠. 포르투갈 민주화 혁명이 유혈 혁명이었다면 어땠을까요? 국민 다수가 혁명군을 지지했던 만큼 독재 정권은 결국 끝났겠지만, 폭력의 희생자도 나왔을 겁니다. 누군가는 그 상처의 기억 안에서 오래도록 살아갔겠죠. 우리의 5·18 민주화운동이 그렇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폭력이 남긴 상처에 집요하게 소금을 뿌려대는 이들이 있어요. 국가폭력으로 다치고 아팠다는 것을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 여지껏 싸우는 이들도 있습니다. 폭력이 만든 상처는 사회 전체에도 남아 있습니다. 주말 서울 도심은 언제부턴가 흡사 내전의 현장입니다. 한쪽에선 국가폭력이 시민들을 죽이던 과거 독재의 시절을 당당히 미화하고, 폭력을 휘두르던 이들의 이름을 드높이고, 그들을 추앙하자고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혐오와 증오의 악다구니에 질린 다른 한쪽에서도 목소리가 날카로워지고, 표현이 뾰족해집니다. 귀를 찌르는 소음과 무시무시한 언어들 사이에서 주말의 도시를 거니노라면 이 상처는 언제쯤 아무는 것일까, 나을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서글픕니다. 카네이션 혁명, 장미 혁명, 오렌지 혁명…. 평화 혁명의 이름들입니다. 우리도 이런 이름을 가질 수 있을까요? 도저히 평화가 불가능해 보이는 우리의 광장에도 꽃 한 송이의 기적 같은 것이 일어나고, 평화가 어느 날 도둑처럼 찾아올 수 있을까요? 정말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