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한 것도 좋잖아? 독자님은 농산물을 어디에서 사시나요? '못난이 농산물'에는 익숙하신가요? 이미 알고 계신 독자님도 있을 테지만 아직은 대형마트에 진열된, 매끈한 '무결점 농산물'이 친근한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못난이 농산물에 친숙해져야 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입니다. 전지현 기자가 뉴질랜드와 호주의 농업을 취재했어요. 읽고 대화 나눠요. 기사가 길어서 생략한 부분도 있는데요. 전문은 여기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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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라도 괜찮은 이유 2024. 11. 20. 전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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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오클랜드 그레이린(Grey Lynn) 지역 커뮤니티 센터 공원과 주차장, 강당은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장터로 탈바꿈한다. 인근 농부들이 직접 농산·축산물 및 가공품을 가져와 파는 파머스마켓(농부시장)이 열린다. 노엘 버크가프니(64)는 지역에서 생산된 채소와 육류를 사려고 매주 이곳을 들른다. 그의 단골인 농부 어기 매카스(34)는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기른다. "이 울퉁불퉁한 마늘을 보세요. 완벽한 모양이 아니지만 신선하고, 환경에도 좋죠. 대형 슈퍼마켓엔 없어요." 마늘을 골라 담던 버크가프니가 말했다. 그는 매카스와 농산물을 신뢰했다. 근처에서 갓 수확한 채소를 직접 보고 고를 수 있으며, 그 작물을 키운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있어 매주 파머스마켓을 찾는다고 했다. 값이 조금 더 나가더라도 말이다. 한국에선 버크가프니처럼 믿고 찾는 '아는 농부'를 만나기 힘들다. 농장 대형화와 로켓 배송 시대에 소비 농산물 뒤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커녕 떠올리기도 쉽지 않다. 땅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길러내는 일의 수고로움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도 어렵다. '유기농이 비싸다'고 생각하면서도, 화학 제초제나 비료를 쓰지 않으려고 농부들이 1년 내내 들인 부단한 노력에는 생각이 잘 닿지 못한다. 전 세계 유기농 농지의 절반 이상(2022년 기준 5300만㏊)이 자리한 오세아니아 대륙에서는 호주를 중심으로 친환경 농업을 시도하는 농가가 늘어난다. 한국에선 농사 과정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친환경(유기농+무농약) 농가 수가 수년째 감소세에 있다. 2020년 기준 5만9249 가구에서 2023년 4만9520 가구로 줄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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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0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그레이린 지역 커뮤니티 센터에서 열린 파머스마켓. 지역 농수산물을 구매하기 위해 찾은 주민들로 북적였다. 전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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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에서 서북부로 1시간 반쯤 지나자 드넓은 초지가 펼쳐졌다. 빅토리아주 에간스타운에 위치한 약 27만9233㎡(8만4000평)짜리 '유기 양돈 목장'인 조나이 농장에 뿔 짧은 소와 검은 돼지 여럿이 보였다. 돼지들은 자유롭게 초지를 뛰어다녔다. 한 배에서 난 새끼들끼리 지내도록 느슨한 전깃줄로 구역을 나누었을 뿐이다. 농장주인 태미 조나스(54)와 스튜어트 조나스(53) 부부는 버릴 것 없는 순환농업을 추구한다. 인근 양조장과 마트에서 얻어온 곡물 찌꺼기와 초콜릿을 혼합 발효해 먹이로 준다. 도축업자이기도 한 아내 조마스가 정형하고 남은 부산물을 부부가 직접 만든 기계에서 분해해 퇴비로 만든다. 조나스는 "분업화가 된 공장 농업에선 생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면서 "우린 이 농장에서 가축을 키우고 팔기까지 전 과정을 우리 손으로 해내면서 그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을 낭비 없이 다시 활용한다"고 설명했다. 부부는 이 방식으로 기른 돼지를 그냥 팔지 않는다. '구독료(subscription fee)'를 낸 이들을 상대로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정해진 수량을 '돼지 꾸러미(pig share)' 형식으로 제공한다. 이같은 지역 내 꾸러미 구독 형식의 유통을 '공동체 지원 농업(CSA: 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이라 부른다. 선택한 고기 무게에 따라 구독료를 정한다. 연간 한화로 90만원~300만원 사이인데, 조나스 부부가 돼지를 기르는 방식을 존중하는 고객들은 이 선급금을 기꺼이 지급한다. 태미는 "80가구, 총 250명쯤이 우리 CSA 회원인데, 11년째 구독하는 이도 있다"고 했다. CSA는 농부와 소비자 간 신뢰로 굴러간다. 믿고 구독한 소비자들은 농사가 잘 되었을 때는 잘 된 대로, 아닐 땐 아닌 대로 꾸러미를 받는다. 조나스는 "사정이 생겨 두 달 어치를 몰아서 제공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농사의 성패를 소비자가 함께하는 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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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에간스타운의 '유기 양돈 목장'인 조나이 농장. 전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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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는 새로운 유통법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2009년부터 여성농민들로 구성된 '언니네텃밭' 등이 여러 지역에서 CSA 꾸러미 사업을 이어왔다. 한국에선 농촌 고령화로 꾸러미 공동체가 줄어드는 추세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농장을 홍보하는 일이 익숙한 청년 소농들 사이에서 CSA가 괜찮은 유통 모델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주로 전국으로 배송되는 한국의 꾸러미와 달리 이들은 차로 닿을 수 있는 주변 지역을 기반으로 CSA를 운영한다. 조나이 농장과 타파네리그로워스가 인근 지역에 마련한 거점에 꾸러미를 각각 모아 두면 근거리 고객들이 알아서 가져간다. 농장에 방문하기 쉬운 거리 덕에 농민과 소비자는 직접 대면한다. 이는 신뢰로 이어진다. 렉스는 "우리 농장은 유기농 공식 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우리 고객들은 우리가 유기농법으로 농사짓는다는 걸 알고 있다"며 "언제든지 농장에 와서 우리를 보러 올 수 있기에, 지역사회에서 인정을 받은 셈"이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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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4일 멜버른 도시형 유기농업 농장인 세레스(CERES)의 육묘장에서 종자들이 자라는 모습. 전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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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기반의 CSA가 가능한 건 지역 사회의 유기농산물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땅에서 건강한 먹거리를 길러내는 일에 관한 이해와 환경을 덜 해치는 유기농법이 전 지구적으로 필요한 일이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농장이 몰린 지역뿐 아니라, 도심 곳곳에서도 도시 농장과 친환경 파머스 마켓 안내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호주 세레스(CERES) 환경공원은 '유기농 농사'를 멜버른 시내에서 지을 수 있는 공공텃밭이자 교육 장소다. 지역 주민들이 공업단지였다가 버려진 땅을 텃밭으로 바꾸었다. 1982년부터 공원 운영을 시작했다. 연중무휴 무료로 개방한다. 세레스는 멜버른 유일의 유기농 육묘장과 유기농산물 유통사업 등 수익사업도 한다. '무료' 영업이 가능한 것은 4만2795㎡(1만3000평) 부지를 시의회가 연간 '1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사실상 무상으로 빌려주기 때문이다. 그 기반으로 가꿔진 유기농장과 생태 정원은 연간 10만명의 학생이 농업·환경 공부를 위해 찾는 교육의 장이 되었다. 세레스 매니저 메린 레이든(42)은 "작물이 어떻게 자라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가치를 담은 작물을 먹고 있는지를 알리고 다시 사람들이 지구와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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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멜버른 도시형 유기농업 농장인 세레스(CERES) 마켓에서 판매되는 과일들은 흠집이 나거나 울퉁불퉁했다. 한국에서는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 때문에 흠집 없는 과일들이 주로 팔린다. 전지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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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레이든은 "도시 농업의 수익 구조는 취약하다. 많은 이들이 농사일 이외에 부업을 병행한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생활 물가가 오르면서 일반 농산물보다 높은 가격인 유기농산물 소비를 부담스러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도 했다. 직간접적으로 농사를 체험하고 배우는 공간은 그 자체로 농업에 관한 이해를 높인다. 연수에 동행한 한국 농업인들은 세레스에서 생산된 농산물 매대에 얼룩덜룩하거나 모양이 균일하지 않은 과일과 채소가 진열된 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B품을 죄다 진열해 놨다" "예쁜 것 말고도 안 좋은 것, (벌레가) 파먹은 것을 상관 않고 담는다"는 말이 나왔다. 세레스를 찾은 고객들은 "원래 유기농산물은 완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전에 세레스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 모니크 퍼튼(43)은 "작물을 길러보니, 내 마음처럼 되는 게 없더라"며 "환경친화적인 농산물을 지지하는 게 그 모양을 따지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도 화학약품 없이 자라 '못난이'가 될 수밖에 없는 유기농산물에 대한 인식은 좋아지는 편이지만 매끈하고 예쁜 농수산물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압도적인 게 현실이라고 한다. 한 농업 관계자는 "한국에선 친환경 농가 중 B품 판로가 없어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다. 여기선 B품이 그 자체로 판매가 될 수 있구나 싶어 부러웠다"고 말했다. 세레스에서 한국 농업인들은 '사고 파는 물품'을 넘어 '지구를 살리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유기농을 체화한 시민들을 미리 만난 듯했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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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거인은 과일을 깎아 놓으면 멍이 들었거나 흠집이 있는 부분을 다 골라내고 먹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먹어도 돼" 핀잔을 주기도 하는데요. 일상에서 보는 농산물이 죄다 매끈매끈한 모습인 것을 생각하면 이해도 갑니다. 시장이나 마트엔 '무결점' 과일과 채소들이 진열돼 있습니다. 이 상품들에선 자연의 흔적을 찾아내기 어려워요. 모양이 균일하고 색이 고울 뿐 아니라, 때로는 껍질과 뿌리가 다 손질되어 있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에 익숙해지면 작은 흠집도 커 보일 수밖에 없겠죠. 지난해 이상기후로 사괏값이 엄청나게 비싸지면서 '까치 먹은 사과' '못난이 사과'가 시장에 등장했어요. '파치'라고 하더군요. 온전하지 않은 것이라도, 사과란 것을 먹으려면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이전엔 상품 가치가 없던 것들이 소비자들을 만났단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선뜻 손길이 가지는 않는 '정상품'의 대체재에 그칩니다. 무결점 농산물을 얻으려면 농약과 비료는 필수입니다. 그리고 자원을 들여 재배한 멀쩡한 농산물을 대량으로 폐기해야 합니다. 유럽에선 농장에서 생산된 과일·채소의 3분의 1이 '외모' 때문에 버려진다는 통계도 있더군요. 한국도 비슷하고요. 이 과정에도 돈이 듭니다. 에너지 낭비, 노동력 낭비, 자원 낭비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못난이 농산물을 사는 것이 정의다. 못생긴 것들을 사라!' 윽박지를 수는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계기와 방법이 있어야겠죠? 호주에서 힌트를 본 듯해요. 농부와 소비자 간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것. 소비자가 농사의 현장에 가까이 있으니, 매끈하지 않은 농산물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기 쉽습니다. 공공텃밭이 교육 장소로 쓰인단 점도 인상적이에요. "다시 사람들이 지구와 사랑에 빠지게 하는 게 목적"이라는 텃밭 매니저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런 하품을 팔다니!' 하고 깜짝 놀란 한국의 농업인들 앞에서 "원래 유기농산물은 완벽할 수 없다"는 말을, 농부가 아니라 소비자가 하는 장면도 재밌고요. 못난 작물 사 먹기. 아직은 소수의 좁은 관심사이고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문화지만 좀더 보편적인 것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맘에 꼭 드는 장을 보고 싶어서 고민한 사람들의 이야기, 못난이 농산물을 산 소비자들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는 소식을 보면 가능성이 충분해 보여요. 울퉁불퉁한 녀석들도 더 많이 사랑하기로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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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주와 뉴질랜드에선 농부에게 직접 농산물을 '구독'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작황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농산물 꾸러미를 받는다. ✦ 2. 이들은 벌레 먹고 흠집 난 농산물에도 익숙하다. 농사 현장과 가까우니, 매끈하지 않은 농산물이 당연한 것임을 안다. ✦ 3. 우리에게 못난이 농산물은 아직 '정상품'의 대체재이고 소수의 취향이다. 울퉁불퉁한 농산물을 더 많이 선택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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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뭘 사과하는 거냐'고 했던 그 질문. 사이다 질문이었는데 대통령실은 "무례"랍니다. 뭘 물어보라는 걸까요? '회칼 테러' 발언이 떠오릅니다. |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엑스(X). '머스크가 싫어서' 떠나는 이들이 '이곳'에 새로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벌써 2000만명이 넘게 가입했다네요. 엑스는 머스크의 확성기 신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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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장거리 미사일을 지원한 후 러시아가 '3차 세계대전' '핵무기' 같은 말들을 입에 담고 있는데요. 핵폭발 대비용 방공호까지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
'바람의나라' '메이플스토리' '오버워치'. 2030이 이런 옛날 게임들에 빠졌습니다. 오늘에 치이고 내일에 쫓기는 2030이 옛날 게임에서 위로를 받고 있다네요. 추억여행은 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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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도둑처럼 찾아올 수 있을까요? 제3자의 눈으로는 갑작스레 평화가 온 것 같아 보여도 사실 평화는 여태껏 치열하게 평화를 위해 싸워 온, 준비된 곳에만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그걸 염두에 두고 사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익명의 독자님) 📬 평화라는 개념은 참 복잡한 것 같습니다. 힘이 강한 쪽이 비교적 약한 쪽을 밟았음에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하고 오랜시간 그런 구도가 유지된다면, 그리고 아무도 여기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누군가에겐 평화겠지요. '평화적 시위'라는 게 성립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뜻을 같이 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모두가 모든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으니 결국에는 상대적으로 힘을 가진 쪽의 태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평화로운' 곳이 되려면 사회의 기득권층이 더 엄격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민해야 합니다. 그들은(혹은 우리들은) 평소에 약자들이 내는 목소리를 무시해도 일상을 사는 데 지장이 없고, 그렇기에 약자들의 입장을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힘의 우위를 점한 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모두가 함께할 방안을 모색하거나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그들이 가진 힘을 써서 상대방을 묵살하려는 장면들을 요즘에는 많이 보게 되네요. (익명의 독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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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꽃을 꽂은 총>을 읽고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이야기입니다. 평화가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보여도, 알고 보면 그곳은 평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곳이었을 거란 독자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평화를 맞을 준비는 힘 있는 이들이 앞장서야 한다는 데도 마음 깊이 공감합니다. 의견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의 이야기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통찰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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