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례식은 어떤 모습일까 지난 주 할머니 장례를 치렀습니다. 자식은 다섯 명, 손주는 아홉 명이나 되는 할머니 장례식엔 손님이 많았습니다. 흔히 '결혼식 손님은 부모 손님, 장례식 손님은 자녀 손님'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어요. 한편으로는 여기 할머니를 진짜 아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겠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부모님 장례는, 내 장례는 어떤 모습일지까지 생각이 뻗쳤습니다. 오늘은 연고자 없이 홀로 떠난 이들을 다룬 기사를 가져왔습니다. 분량상 기사 일부를 생략했습니다. 전문은 여기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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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난 이를 배웅하는 사람들 2024. 11. 4. 송윤경·이혜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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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44세의 남성 이원호씨(가명)가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 고시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을 알린 건 '냄새'였다. 고시원을 관리하는 A씨가 이씨의 방에서 부패한 냄새가 나자 마스터키로 문을 열어 시신을 확인했다. "TV가 켜져 있고, 화장실 불도 켜져 있어서 들어가 보니 화장실에 쓰러져 있었어요. 지난달 말에 고시원비를 내지 않아서 전화해봤더니 '병원에 있다'고, 곧 내겠다고 했거든요. 그 후론 마주친 적이 없었죠. 죽은 지 며칠은 된 것 같았어요." 이원호씨가 이 고시원으로 들어온 것은 약 8개월 전. 고시원의 다른 입주자들과 교류도 많지 않아 그의 행방을 궁금해하는 이는 없었다. 시신 발견 8일 후 이원호씨에 관한 '마지막 기록'이 보건복지부의 장사정보서비스 포털 'e-하늘장사'에 올라왔다. 이씨가 공영장례로 화장된 뒤 광주광역시의 영락공원에 봉안됐다는 내용이었다. 결혼과 혈연 등으로 맺어진 법적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들이 장례를 포기한 '무연고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는 5415명. 3년 전(2020년 3136명)보다 72.7% 늘었다. '한 해 무연고 사망자 5000명'은 병든 한국사회를 드러내는 지표다. 경제 성장은 가팔랐으나 IMF 외환위기(1997년), 글로벌 금융위기(2007~2008년), 코로나19 등의 위기 때마다 누군가는 '패자'가 되어 '정상의 삶'으로부터 밀려나야 했다. 실업과 질병, 가족불화와 해체, 빈곤의 대물림이 반복된 결과가 '무연고사의 급증'이다. 늘어나는 무연고 사망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이 사회의 실패라면, 이들에게도 사회적 애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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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약 95%의 지자체가 공영장례 조례를 만들어 예산을 편성하고 무연고자 장례식을 치르고 있다. 한국사회의 모든 '산 자'들을 대신해 이들의 공영장례에 참여하고 무연고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공영장례 현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풍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당신을 무연고자 공영장례식으로 초대한다. "지금부터 고 박남주(가명)의 장례를 진행하겠습니다. 운명하기 전 미추홀구에 신고되어 있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주거지인 자택에서 홀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하였고,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발견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난 10월 26일 오전 10시 40분 인천시립 장사시설인 인천가족공원의 별빛당 1층 '인천시립 공영장례실'. 기자를 포함한 성인 5명이 고 박남주씨(가명)의 위패 앞에 섰다. 백합과 흰 장미로 꾸며진 제단 앞엔 고사리와 도라지나물, 북엇국 등의 음식과 배, 대추, 사과, 곶감, 약과가 놓였다. 장례지도사들의 모임 '부귀후원회'가 진행하는 인천시의 공영장례였다. 가기환 부귀후원회 대표가 고인의 사망진단서 등에 담긴 최소한의 정보를 토대로 고인을 소개한 데 이어 상주를 맡은 또 다른 봉사자가 술 한잔을 올리고 음식에 수저를 꽂았다. '마지막 식사'를 올린다는 의미였다. 기자도 술 한잔을 올렸다. 가 대표가 이어 조사를 읽어내려갔다. "외롭고 힘들었을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이제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이렇게 술 한잔 올려드렸습니다. (중략) 늦게나마 위로해드리려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였습니다. 배웅해드릴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부디 먼 길 편히 가십시오." 고인을 모신 관을 화장로로 옮기는 운구 절차가 이어졌다. 화장로마다 유족들이 빼곡하게 줄지어 선 모습이 들어왔다. "엄마, 엄마" 고인을 부르짖는 소리가 화장장에 울려퍼졌다. 그러나 박남주씨의 관이 옮겨진 화장로만은 텅 비어 있었다. "그 사람들, 가족이 버린 거 아닌가요?" 문득 공영장례 빈소로 오는 동안 택시 기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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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부귀후원회 관계자들이 무연고자 공영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이혜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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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무연고 사망자에게 가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의 무연고 사망자(2만609명) 10명 중 7명(73.1%·1만5069명)은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피해 무연고자로 분류됐다. 시신 인수 거부·기피는 장례를 포기했다는 의미다. 이유를 들여다보면 죽음까지 파고든 빈곤 현실을 만나게 된다. 무연고자 유족들의 시신위임 사유를 분석해온 나눔과나눔 박진옥 이사는 말한다. "위임서상의 사유를 보면 대개 가족관계 단절과 경제적 사정 두 가지로 나뉘어요. 그런데 유족을 만나 사연을 들어보면 단절보다는 경제적 문제가 큽니다. 많은 사람이 장례엔 돈이 안 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2015년 한국소비자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장례비용은 약 1300만원이다. 빈소를 차리지 않고 시신 안치·입관·염습·운구·화장만 한다 해도 대략 300만원은 필요하다. 고인이 오래 투병해 밀린 병원비까지 있다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처지에선 엄두 내기가 쉽지 않다. 활동가들이 접하는 무연고 사망자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다. 유족들 사연의 공통점을 묻자, 나눔과나눔의 김민석 사무국장이 답했다. "한국사회가 IMF를 잘 겪어냈다고 자부하잖아요. 저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이런 이야기를 많이 접해요. IMF 때 실직해 무너졌다가 재기해보려 했지만 잘 안돼서 술에 의존하고, 가족과 멀어지게 되고, 고시원이나 쪽방, 여관에서 홀로 생활하다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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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희귀병 투병과 생활고에도 불구하고 복지 서비스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장례는 수원시 공영장례로 치러졌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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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와 무연고 사망 간 관계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2015년에는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 가운데 50대(386명·29.6%)가 가장 많았는데 지난해에는 60대(431명·35%)가 가장 많았다(나눔과나눔 '나이로 본 무연고 사망자 통계'). 무연고 사망이 가장 많은 연령대가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박진옥 이사는 "IMF 때 30~40대였던 이들이 가장 많이 무연고 사망을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무연고 사망자는 장례를 치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인가. 2010년대에 나눔과나눔이 공영장례 운동을 하며 사회에 던진 질문이었다. 이들의 질문에 많은 지자체가 '응답'했다. 2018년 서울시가 광역지자체 최초로 공영장례 조례를 만든 후 지금은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공영장례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인식 변화가 느리면 제도는 겉돌기도 한다. 지자체 지원금이 나오는 무연고 장례를 돈벌이로 활용하는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무연고 사망자를 '돈'으로 보는 업자들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를 리 없었다. 모형음식을 올려 상을 차리거나, 장례가 끝난 빈소에 들어가 위패만 갈아 끼워 구청 제출용 사진을 찍는 일도 있었다. 공영장례를 장례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산반빈곤센터는 시민들의 '사회적 애도'에서 그 답을 찾았다. 지난해 5월부터 부산시민 공영장례 조문단을 꾸려 공영장례 조문 운동을 벌이는 이유다. 임기헌 활동가는 "올해의 경우 신청자 대다수가 기존 회원이나 인권 활동가들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었다. '우리만 관심 있는 게 아니구나' 싶어 놀랐다"고 했다. 아이 둘을 키우며 대학에 다니고 있는 이민영씨는 "인간이 태어나면 환대를 위한 각종 복지제도가 있는데, 반대로 죽음과 관련해선 왜 아무도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있던 차에 공영장례를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얼마 전 큰아들의 생일에 무연고자 빈소를 함께 찾기도 했다. "아들에게 이렇게 말 해줬어요. '(고인은) 우리가 원래 알던 분은 아니지만 우리랑 상관없는 분이 아니야. 우리와 함께 살다간 분이야. 앞으로 이렇게 홀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더 많아질 텐데, 우리가 이런 분들을 잘 보내드릴 수 있도록,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몫이야'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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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홈리스추모제' 기획단이 홈리스·무연고 사망자의 이름이 적힌 종이와 장미꽃을 서울역 계단에 놓아 뒀다. 강윤중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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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빈곤센터는 고인을 제대로 추모하기 위해 가까웠던 지인을 수소문해 공영장례에 초대하기도 했다. "매달 찾아뵈면서 신뢰감이 쌓여서일까. 고인은 조금씩 자신의 얘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초 사회운동하는 학생을 숨겨주었다가 고문당한 이야기, 그러면서 이혼을 하게 됐고 2명의 자녀와 연락이 끊긴 이야기…. 저에게 항상 좋은 말씀을 해주셨고, 본인 상황은 우울하지만 남 탓을 하지 않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호스피스 센터 간호사가 자신이 돌보던 노인의 공영장례에 참석해 발표했던 글 일부다. 서울의 나눔과나눔 역시 사망자가 오래 머물던 고시원, 요양병원에 전화하거나, 직접 방문해 친밀한 지인들이 공영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공영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장례 치를 돈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공영장례는 '누구나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권리' 측면에서 보자면 고인을 위한 것이지만 활동가들은 그것만큼이나 고인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의 '애도할 권리'를 강조한다. 내 가족이, 혹은 가깝게 지낸 지인이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돼 증발하듯 사라져버린다면 느끼게 될 심리적 충격을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빈소 없이 화장되던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공영장례가 애도의 공간으로 자리 잡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공영장례식이 치러져도 시신을 포기한 가족들은 죄책감과 낙인 때문에 나오지 못하고, 친밀했던 지인들은 '법적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 일정조차 알기 어렵다. 박진옥 이사는 "한 해 5000명의 무연고 사망자에게 가족이 4명씩만 있다고 쳐도 2만명이고, 거기에 친밀했던 지인들까지 합하면 매해 수만명이 충분히 애도하지 못한 채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박탈된 애도'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애도의 박탈을 막기 위해서는 모두에게 최소한의 장례 절차를 보장하는 보편적인 장례복지 제도의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는 공영장례 조문을 다녀오면 사회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그리고 앞으로 더 좋아질 거라 믿고요. 장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걸로도 의미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공영장례 조문 운동에 참여하는 시민 이민영씨의 말이다.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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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무연고 사망을 두 차례 취재했습니다. 여름엔 서울 성북구 정릉동 한 초등학교 뒤편 등산로에서 발견된 0세 남아의 공영 장례에 참여했습니다. 가을엔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청소부를 통해 서울의 고시원에서 사망한 중년 남성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가족도 이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휭 떠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연고 사망자들의 죽음을 지켜본 이들은 고인의 가족이 '비정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이를 두고 간 부모, 남편을 찾지 않는 아내, 부모와 연락을 끊은 자식에게 사정이 없을 리 없습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유족들을 만나 온 박진옥 나눔과나눔 이사는 고인의 유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경우가 많다고 말합니다.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치를 수가 없는 상황인 거죠. 애초 고인과 생전 관계가 단절된 계기도 경제적 문제에서 비롯했을 수 있고요.
고시원에서 세상을 떠난 중년 남성 A씨를 상상해 봅니다. 가족들과 연락은 끊겼지만 그렇다고 아주 혼자 살아간 건 아닙니다. 일터에서 마주치다 술잔을 기울인 동료, 소음 때문에 종종 실랑이하지만 인사를 나누던 이웃, 일당을 받은 날이면 찾던 단골 식당의 주인, 집 근처 편의점 직원과 마주하며 살아갔습니다. 그의 죽음이 그저 '처리'되기만 한다면 이들은 A씨를 애도할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그 사람 요새 왜 안 보여?" 물었다가 "얼마 전에 죽었대"와 같은 답을 듣고 허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겠죠. 나눔과나눔 등 단체가 가까웠던 지인들을 수소문해 공영장례에 초대하고, 나아가 '사회적 애도'를 말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평등하단 말, 들어본 적 있으시지요. 그런데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만 제외하면 전 뭐가 평등하단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몇 살에 죽는지, 어디에서 어떻게 죽는지, 죽고 나서 어떻게 대우받는지는 너무나 제각각이니까요. 장례식장이나 고인이 안치된 곳의 풍경을 보면, 삶의 격차가 고스란히 죽음의 격차가 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공영장례는 죽음의 하한선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자기는 고독사가 꿈이라며 뉴스가 고독사를 다루는 방식이 싫다고 말했습니다. 말인즉슨, 자기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낳지 않고 혼자 살아갈 건데 그렇다고 자기 죽음이 '고독사'로 분류돼 불행한 죽음처럼 취급되는 게 싫다는 거였어요.
제 상상 속 A씨의 고독사와 제 친구가 맞을 고독사는 맥락이 다르지만, 친구 말을 곱씹다 보면 A씨의 죽음이 더욱 '남의 일'이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친구들과 신나게 놀았다 하더라도, 결혼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남아있지 않으면 제 죽음도 고독사 통계에 포함될 거니까요.
송윤경·이혜리 기자는 가족이 아닌, 생전 고인과 가깝게 지내던 이가 장례를 치르는 ' 가족 대신 장례'에 대해서도 다뤘습니다. 혼인과 출산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법적 가족은 점차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관계가 아니게 될 겁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위해서든 옷깃만 스친 어떤 먼 이웃을 위해서든, 장례를 향한 다른 상상이 필요한 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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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적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장례를 포기한 '무연고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실업과 질병, 가족불화와 해체, 빈곤의 대물림이 반복된 결과다.
✦ 2. 장례지도사와 활동가들은 공영장례를 활성화하고 고인의 지인을 수소문해 장례에 초대하는 등 애도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 3. 혼인과 출산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무연고 사망은 점차 늘어날 것이다. 혈연 가족 중심이 아닌 또 다른 장례를 상상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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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가 남녀공학 논의를 잠정 중단하기로 했지만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총학생회장을 만났습니다. 여대 존폐를 둘러싼 더 깊은 이야기는 이 영상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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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점선면Lite <🍆 언제까지 매끈할래?>를 읽고 보내주신 독자님들의 이야기입니다. 사과를 한 알씩 플라스틱 포장해 놓고 '저탄소사과'라는 라벨을 붙인 상품을 본 적이 있어요. 작물이 공산품처럼 느껴진다는 독자님 의견을 보고 떠오른 장면입니다. 소비자로서 이런 상품이 매대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행동이 참 중요하겠지요. 소비자들이 매끈하지 않은 농산물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리더십도 보고 싶네요. 못난이가 아닌 '맛난이'! 기억해 보아요😋 뉴스레터 점선면은 독자님의 이야기로 더 풍성해집니다. 레터를 읽고 떠오른 생각이나 통찰이 있다면 언제든 아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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