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이후 근조화환과 응원 화환이 늘어섰던 배재고 앞. 지난 3일 현장을 찾아보니 화환들은 모두 치워져 있었습니다. 취재진이 학생들에게 말을 걸어봐도 대부분 "모른다" "학교에서 인터뷰하지 말라고 했다"며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배재고 앞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사건이 안타깝다면서도 '낙인 효과'를 걱정했습니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박시은양(16)은 "학원에서 배재고 학생을 놀리거나 따돌리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묵묵히 참는 모습이 속상해 보였다"고 했어요. 강모군(14)은 "야구부원들이 징계를 받는 건 맞는 것 같지만, 굳이 화환까지 보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고 했고요.
청소년들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어요. A양(13)은 "구호에 조롱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선수들도 어느 정도 인지했을 것"이라면서도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제대로 알았다면 그것이 웃음거리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동갑내기인 B양(13)은 "유가족이나 당사자의 아픔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어요.
다만 단순한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황재민군(16)은 "스타벅스 논란 전부터 이런 표현이 학생들 사이에서 무분별하게 쓰였고 선생님들도 거의 포기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며 "역사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잘못된 인식을 접하기도 한다. 10대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역사의식을 익힐 수 있는 환경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어요.
교사들도 심각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 초·중·고 교사 17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0.2%가 '학교나 교실에서 학생들의 혐오 표현을 목격했다'고 답했습니다. '학교 내 혐오 표현 문제가 심각하다'는 응답도 89.8%에 달했고요.
문제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혐오 표현에 잘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대응 방법을 잘 모르거나 학부모 민원·소송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교사들을 향한 과도한 '정치적 중립' 요구는 이런 문제를 더 키웁니다. 정치적 이슈를 다루기만 해도 공격이 들어오고, 교육당국은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교사들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합니다. 교사들은 자기검열과 침묵을 선택합니다. 건강한 토론이 실종된 교실에서 극우 세계관은 스멀스멀 퍼져나갑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을 징계·처벌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고, 보다 근본적이고 교육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교육부는 올해 초 발표한 '2026년 민주시민교육 추진계획'에서 디지털 미디어 문해 교육을 강화하고, 혐오 발언 대응을 주제로 한 수업자료를 개발하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역사교육 시간을 늘리거나 수업자료를 보급하는 '쉬운 해결책'은 땜질에만 그칠 뿐입니다. 박대훈 역사교사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혐오표현 교육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교사가 위축되지 않고 토론 수업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유재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정치·역사·젠더 등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는 교육 자체가 어려워진 만큼, 이런 주제를 학교에서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길고 복잡한 그 과정을 앞장서 주도하고 책임져야 하는 게 정치이고요. 지금의 한국 정치는 그럴 준비가 돼 있을까요? 독자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