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10 . 2022.10.14~10.20 |
|
|
피묻은 빵은 이제 그만 먹고 싶다 18일 오후 2시. 경기 평택 SPC 계열사 제빵공장 앞은 오가는 사람 없이 조용했습니다. 공장 입구 외부인 출입을 막는 스피드게이트(출입통제시스템) 너머로 작은 분향소가 마련됐습니다. 앳된 얼굴을 한 고인의 영정 사진, 국화꽃 더미, 포스트잇… 이곳에서 근무하다 소스 교반기(배합기)에 끼여 사망한 여성 노동자 A씨(23)에게 동료들이 전하는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
|
|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공장 풍경과 대조적으로, 온·오프라인에서는 이번 사고에 책임이 있는 SPC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뜨겁습니다. A씨는 빵집 창업을 꿈꾸던 청년이었습니다. 처음엔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로 SPC에 입사해, 3년 전부터는 SPC 계열사에 빵 재료를 납품하는 공장 생산직으로 자리를 옮겼죠. A씨는 평소 과중한 업무에 스트레스가 컸다고 합니다. 사고 당일에도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조 근무를 하고 있었어요. "졸려 죽오" "데리야끼 치킨 500봉을 깔 예정" "내일 300봉을 더 까야 한다니 서럽다" 퇴근 2시간 전 A씨가 남자친구에게 보낸 카톡은 고인이 얼마나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회사에게 노동자는 '비용'일 뿐이었어요. 끼임 사고 발생 시 기계를 자동으로 멈추는 센서(인터록)는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2인1조' 근무라도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동료가 비상 중지 버튼을 눌러 기계를 멈출 수 있었겠죠. 하지만 A씨와 같은 조였던 동료는 사고 당시 외부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일주일 전에도 같은 공장에서 손가락 끼임 사고가 발생했지만, 변화는 없었어요. 오히려 관리자는 다친 직원을 포함한 작업자들을 나무랐고, 다친 직원이 3개월 기간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데려갈 의무가 없다"고 방치했다는 증언이 나옵니다. A씨 죽음 이후 회사의 대처는 더욱 할말을 잃게 합니다. 현장 동료들은 A씨 시신을 직접 수습했습니다. 교반기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소스를 퍼내고, 기계에 끼어 있던 시신을 건져 올렸어요. 극심한 트라우마가 남을 수 밖에 없는 상황. 그런데도 회사는 이들에게 다음날 곧바로 정상출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A씨가 사고를 당한 교반기만 흰 천으로 가려두고, 인터록이 설치되지 않은 기계 2대만 운영 중단한채, 또다시 빵 만드는 기계를 돌리려 했던거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검식이 끝나지 않아 기계에 묻은 혈흔이 채 지워지지도 않았는데도요. 이런 사실이 알려지며 비판 목소리가 커지자, SPC는 사고 이틀 뒤 허영인 대표이사 명의로 공식 사과문을 내놨습니다. "관계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임하며 사고 원인 파악과 후속 조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요. 하지만 뒤에서는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들에 'SPC를 제목에서 빼달라'는 요청을 하고 ‘파리바게뜨 런던 매장 오픈'을 홍보하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직원의 죽음을 애도하고 대책을 마련하긴 커녕, 기사를 막기에만 급급했던거죠. 이에 시민들은 "멀쩡한 정신으로는 SPC빵 못먹겠다"며 불매운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
|
|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모든 청년들의 소식이 가슴 아프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은 유독 마음이 쓰였어요. 또래 여성 노동자들의 죽음이라 그런 것 같아요. 파리바게뜨는 제빵기사 80%가 2030 여성입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SPC를 상대로 '사람답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며 긴 싸움을 벌여왔고요. 2017년 불법파견과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된 이들의 파업은 노동부 시정명령과 노사정 사회적 합의라는 성과를 이끌어냈지만, 노동자들은 이후로도 상황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지난 5월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이 사회적 합의 이행과 휴식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53일간 단식에 나섰지만 회사는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피묻은 빵'이라는 구호는 비유가 아닌, 문자 그대로의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서울 시내 파리바게뜨 매장에서 만난 20대 직원 A씨는 경향신문에 "SPC 불매에 동참하고 있다"고 털어놓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월급을 받는 것과 소비자의 입장은 다르니까요. 연이은 사고로 제빵사분들도 힘들어 하고 계시지만, 이번 일을 기회로 회사가 변하지 않으면 앞으로가 더 힘들지 않을까요.” 우리는 '소비자'이면서 '노동자'인 동시에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는 것. 이 당연한 사실을 회사에 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플랫도 함께 고민해보겠습니다. ps. 오늘 레터는 파리바게뜨 투쟁을 다룬 플랫팀 기사 두 편을 소개하며 마무리하려 해요. (1)파리바게뜨 불법파견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한 임종린 지회장의 인터뷰 (2)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의 노동실태를 여성 건강권의 관점에서 조사한 권수현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 인터뷰입니다. 5년간 이어지고 있는 긴 싸움의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거에요! |
|
|
‘몰래 탄 마약’의 ‘표적’이 된 여성들, 자신도 모르게 마약이 시작됐다 '퐁당'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다른 사람이 마시는 음료수잔이나 술잔에 몰래 마약을 타는 행위를 일컫는 은어입니다. 최근 마약 관련 범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경향신문 사건팀은 누군가 몰래 탄 마약에 비자발적으로, 서서히 중독되는 사람들에 주목했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이었습니다. 유흥업소 여성들이 가장 취약하지만, 클럽이나 채팅으로 만난 사람이나 연인에게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범죄의 죗값은 징역 1년~2년형이 고작입니다. 과거 직접 '퐁당'을 했었다는 남성부터 마약 관련 시설 종사자 인터뷰, 관련 통계와 판결문까지 알차게 담은 기사를 소개합니다. |
|
|
169명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후 깨어나지 못했다 169명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든 후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운이 좋으면 몇 달만에 깨어났지만 보통은 1년, 길게는 수년간 잠들기도 했죠. 주목할 점은 이들이 모두 스웨덴에서 수년째 망명 절차를 밟고 있는 난민 가정의 아이들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여성이었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신경학과 전문의인 수잰 오설리번은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에서 이들의 잠이 '히스테리'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심인성 장애', 즉 정신적·심리적 원인에 의한 증상이라고 규정합니다. 니카과라 공화국 미스키토 부족의 10대 여자아이들, 뉴욕주 르로이의 여자 고등학생들까지. 저자는 심인성 장애를 경험한 공동체를 조사하면서, 이들의 고통이 '불가사의한 현상'으로 오독되어 온 배경에 성별화된 낙인이 있었다고 결론내립니다. 선명수 기자의 서평입니다. |
|
|
“성희롱 교사, 징계 대신 승진이 말이 되나” 스쿨미투 학부모의 편지 지지난주 레터에서 <‘스쿨미투’ 손놓은 교육당국…가해교사 137명 버젓이 교단에>기사를 소개해드린 것, 기억하시나요? 한 독자분은 "이후 교육부나 교육청이 후속조치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피드백을 보내주셨는데요. 최근 국감에서 관련 질의가 나와 소개해드리려 해요. 4년 전 '스쿨미투' 고발이 나왔던 A고 이야기입니다. 학교는 익명 전수조사를 벌여 가해교사 12명을 추려냈어요. 하지만 징계에 해당하지 않아 기록이 남지 않는 '주의·경고' 조치만 내렸을 뿐이었습니다. 피해 학생들이 졸업하자 가해자들은 정년퇴임으로 교단을 떠났고, 이중 일부는 교장으로 승진하기까지 했죠. 비단 A고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교육 당국은 대처에 소극적입니다. 민형배 의원실은 국감에서 학교명이 포함된 학교 성폭력 발생처리 현황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낙인 우려'가 있다며 학교명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
|
|
놓치기 쉬운 젠더 뉴스를 '세줄 요약' 해드립니다. |
|
|
- 😥 90년대생 여성 노동자 100명 중 28명이 우울 증상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90~99년생 여성 4632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진행한 한국여성노동자회는 성차별적이고 불안정한 노동환경을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 😤 국민의힘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김기현 의원이 연일 '여성의 군사기본교육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성도 화생방 등 예비군 훈련을 받게 하자는 것인데, 잇따른 여군 성폭력 사건을 비롯해 군대 내 여성들의 위치에 대한 언급은 전무했습니다.
|
|
|
벌써 10번째 플랫 레터입니다. 레터를 처음 시작할 때 '딱 10회차만 해보자'고 마음먹었는데 세상에 벌써 그 날이 왔어요.👏👏 이 레터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 사실이에요! 페미니스트의 결혼식 기사도 그랬지만 뉴스레터를 통해 여러분들께 의견을 구하고, 그 의견을 받아 또 기사로 만드는 과정은 기자로서 쉽게 하기 어려운, 너무나 소중한 경험이에요. 처음으로 보내드린 레터에서 말씀드린 적 있었지만, 제가 이 레터를 시작한건 독자분들께 ‘말을 걸고 싶어서'였어요. 젠더 이슈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과 고민들을 나누고 싶은데, 매번 딱딱한 기사만 전해드리는 것 같아 늘 아쉽게 느껴졌거든요. 레터를 쓰는 것이 힘에 부칠 때도 있고, 잘 하고 있는건지 헷갈릴 때도 많아요. 그래도 '플랫이 있어 힘을 얻는다'는 독자님들의 피드백을 볼 때마다 정말 없던 힘도 나는 것 같습니다. 플랫은 뉴스레터 시즌1을 마무리하고, 일부 개편을 거쳐 시즌2를 준비해보려고 합니다. 더 좋은 레터를 만들려면 독자 여러분들의 솔직한 의견이 필요해요.👂 분량은 적절한지, 내용은 흥미로운지 등을 묻는 간단한 설문조사(약 5분 소요)를 준비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 중 3분을 선정해 1만원 상당의 폴바셋 기프티콘 1만원권을 드립니다! |
|
|
이번 레터 어떠셨나요? 플랫이 다뤄줬으면 하는 콘텐츠나 주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아래 '뉴스레터로 의견 남기기'로 의견을 남겨주세요.🧡 여러분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플랫을 지속해나가는데 큰 힘이 됩니다! |
|
|
여성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모이는 곳. 플랫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평평해질 때까지 여성들의 목소리를 주변이 아닌 중심에 둔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