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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만에, 그녀가 말했다

2024.05.17

6분

성폭력 광주민주화운동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 입주자프로젝트

🍊오늘 또 한명이 죽었습니다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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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할 수 있었던 이야기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Season 4 🌊🏄‍♀️ Vol 9. 2024.05.17. ~ 2024.05.23.

'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44년 만의 목소리
유엔에서도 지적한 "한국 성평등 퇴행 우려"
'그녀가 죽였다'…그녀가 '죽었다'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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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했지만 듣지 않았다', 44년 만의 목소리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입주자 여러분께 5월 18일은 어떤 의미인가요? 사실 1990년대생인 저에게 1980년의 일은 너무나 먼 과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 한강의 책 '소년이 온다'를 읽은 뒤에 비로소 5·18이 흘러간 역사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어요.

그리고 지금 여기, 44년 만에 목소리를 낸 여성이 있습니다. 🙋‍♀️ 플랫팀의 단독 보도로 시작한 🙌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 시리즈의 두번째는 성폭력 피해자 이남순(아래 사진)·정현순씨의 이야기입니다.

이남순씨는 플랫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 "이제 말을 해도 되겠다. 아무렇지도 않다"면서요. 정현순씨는 "아직 의식까지 완전히 해방되진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나가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국가가 진상규명 결정을 내리는데까지 "너무 오래 걸렸다"고 했지만, 결정을 듣고 나자 비로소 "편해졌다"고 했어요.

이남순씨는 계엄군에게 붙잡힌 뒤 피해를 입었습니다. 건물 밖으로 끌려나와 지프차를 타려고 한 발을 들어 올렸는데, 엉덩이 뒤편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몸을 찔렀습니다. "병원에서 계속 하혈을 했고, 닦을 것 좀 달라고 하니 그런 건 없대요. 옆에 쓰레기통을 보니까 다른 환자들이 감고 버린 붕대가 쌓여 있길래 그걸 아래에 대서 쓰고 버리고 했어요. 그때 어떤 군의관이 '대검으로 찍었구먼' 하더라고요. 그제야 내가 뭐에 찔린 건 줄 알게 됐죠." 제때 치료받지 못한 이씨는 결국 자궁 적출 수술까지 했습니다. 이 경험은 '여자로서 끝났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죠.

정현순씨는 연행 도중 계엄군에게 가슴을 강제추행 당했습니다. 본능적으로 손으로 가슴을 가리자 손등에 곤봉 세례가 이어졌습니다. 그는 2021년까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말한 적이 없습니다. "없었던 것처럼" 살아왔지만 "없었던 것은" 될 수 없었던 사실이 이제서야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겁니다. 그는 연행 당시 성폭력과 연행 이후 상황들은 그를 "평생 강력하게 끌어 나쁜 선택을 하게 했던, 고통 속에 살게 했던 원흉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오래 걸린 걸까요. 저는 인터뷰하면서 들은 정현순씨의 얘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전북 완주에 있는 정씨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강간도 아닌데, 내가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연행과 강제추행의 기억은 평생 스스로를 괴롭혔고, 5월만 되면 몸에 두드러기가 솟을 정도로 큰 트라우마를 남겼지만 "그래도 강간에 비하면 가벼운" 피해라고 생각했다는 거죠. 특히 과거 한국 사회는 '여성의 정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통념이 훨씬 심했습니다. 피해를 입었더라도 제대로 말할 수 없었고, 오히려 '피해자가 잘못해서 그런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 쉬웠습니다.

이남순씨는 "울면 지는 거라고 생각해 평생 안 울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난달 28일 5·18 성폭력 피해자 간담회가 열린 날, 이씨는 스스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는 "아마 다른 피해자들 얘기를 들으니까 그랬겠죠"라고 했습니다.

"다 사는 게 너무 힘들었겠다, 나도 그렇게 살아봤잖아요. 그러면서 여태껏 누구한테도 얘기를 못 했던 내 상황이 슬펐던 것 같아요. '여자가 아니다'라는 인식에서 조금만 깨어났으면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더 재미있게 살았을 텐데 말이예요."

이렇게 평생 숨어지내야 피해자들의 마음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국가의책임을 늦게나마 일부 인정하긴 했지만, 이 오랜 고통을 속죄할 길이 있을까요?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이, 그리고 플랫의 인터뷰가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아직 크나큰 아픔 속에 살고 있는 다른 피해자들도 더 나서고, 비로소 위로받기를 바라면서요.

한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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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 유엔에서도 지적한 "한국 성평등 퇴행 우려"

🌏 지난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의 '제9차 한국국가보고서 심의'가 열렸습니다. 이 위원회는 '국제여성헌법'으로 불리는 여성차별철폐협약이 원활하게 이행되는지 감독하는 기구인데요. 한국은 1984년 이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해 4년마다 정책 성과를 유엔에 제출합니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보건복지부 등 여성 관련 정책을 다루는 국내 부처 관계자들이 이번에도 대표단을 꾸려 심의 현장을 찾았죠.

🌏 한국의 성평등 정책 후퇴는 이번 위원회에서 큰 질타를 받았습니다. 위원들은 지난 2년간 성평등 정책이 줄어들고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서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어요. 여가부를 폐지하면 여성인권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의견도 나왔죠.

🌏 하지만 한국 대표단은 이런 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정부는 "여가부 폐지는 성평등 기능을 축소하지 않는다", 성소수자 권리 보장에 대해서도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답변만 반복했죠. 유엔 위원회는 곧 최종 권고사항을 발표한 에정인데요,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소금이 보호자 제공

🗞️ 진도믹스, 충분히 예쁘고 소중해

🐕 플랫의 두번째 입주자 프로젝트 '진도믹스견과 산책하는 여자들'의 마지막 회차는 제주구좌읍에서 비건 식당 '칠분의 오'를 운영하며 진도믹스 소금이를 키우는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소금이 보호자는 1인가구이자 청각장애인이자 비건입니다. 칠분의 오는 "일주일 중에 며칠이라도 채식을 해보자"는 제안이에요. 🥦🍄🥕🍆🍅 장애인, 어린이, 노인, 동물까지 '모두를 환영하는 공간'에 대해 매일 고민하는 곳이기도 하죠.

🐕 소금이는 주차장에서 구조했습니다. 이전에 키우던 대형견 토로가 세상을 떠난 뒤 만났어요. 토로와 소금이를 반려하는 동안 반려견 문화가 바뀐 것도,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해요. 길에서 과거 흔히 보이던 '개장수 트럭'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짧은 줄에 묶여 생활하는 개는 많으니까요. 그래서 소금이 보호자의 목표는 "진도믹스견을 깔끔하게 한 뒤 매일 산책시키고, 잘 키우는 걸 보여주는 것"입니다. 🐶 말티즈처럼 소중하게 키우는 걸 보여줘야 사람들이 알게 된다고요.

🐕 반려견과 함께 지낼 때 듣게 되는 '산책 시비', 입주자님도 경험한 적 있으신가요? 👉여기에서 알려주세요. 플랫팀이 기록하겠습니다.

'그녀가 죽였다'…그녀가 '죽었다' 아니고? 😕

💬 SBS의 대표적인 시사교양 프로그램 🔍 '그것이 알고싶다', 즐겨보는 분 계세요? 제 주위에도 '그알 마니아'들이 정말 많은데요. 진행자 김상중씨 특유의 말투와 손짓, 제작진과 취재원의 긴박한 달리기 같은 건 밈으로도 유명해졌죠.

💬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사실 '그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 삐딱하게 보는 게 습관이 된 기자라 그런지, '그알'의 문제제기 방식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고 느끼거든요. 논란이 된 사건들을 한참 추적하다가, 분노만 일으키고 끝나는 것 같아서 방송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불편합니다.

💬 지난 12일 OTT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튜디오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이 프로그램은 고유정, 이은해, 엄인숙 등 여성들이 저지른 유명 강력범죄 사건 다섯 가지를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1회에선 고유정 사건을 다루면서 살인 이후에 그가 펜션 주인에게 ‘감사합니당’, 아들에게 ‘엄마 청소하고 올게용’이라 “애교 섞인 말투”를 썼다는 내용을 담았죠.

💬 이런 프로그램이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그녀가 죽였다'보다 '그녀가 죽었다'가 더 어울리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레터에서 소개해드렸듯,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건물 옥상에서 20대 남성이 여자친구를 흉기로 살해하는 일이 벌어졌죠. 이미 수많은 여성이 살해당하는 이 현실에서, 일부 여성 가해자들의 사건을 가져와 '그녀'라고 특정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 이는 단순히 "여자보다 남자 가해자가 더 많은데 왜 그러냐"는 비난이 아닙니다. 아직도 남성 범죄자는 성별과 무관하지만, 🕵️‍♀️ 유독 여성 범죄자에 대해서는 '여성'이라는 특성이 부각되는 현실에 대한 비판입니다.

💬 프로그램 제작진은 이런 우려를 예상한듯, 방영을 앞두고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성별에 주목하지 말고 봐달라"고 했습니다. "성별을 떠나 어떤 피해자라도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혹은 그 범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앞으로 좀 더 디테일한 연구가 필요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그 필요성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싶었다"고요.

💬 이에 대해 칼럼니스트 위근우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미 엽기적 과정과 범죄자 신상이 다 공개된 사건을 5년이 지난 현재 다시 소환해 그저 이러저런 사소한 디테일을 덧붙여 소름끼치는 사이코패스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것이 대체 이 사건을 새로이 이해하고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드는 데 어떤 기여를 할지 조금도 알 수 없을 뿐이다."

MBC 제공

📝 To. Flat 🦆

👤"오늘 또 한명이 죽었습니다." 끔찍한 데이트 폭력 사건을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연결했다는 점. 데이트 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여성 혐오 폭력을 법으로 제대로 처벌 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한 점 등이 좋았습니다.

👤교제 살인에 대한 기사가 좋았습니다. 작년에 이탈리아에서 전남친에게 살해당한 여대생 장례식에 1만명의 추모객이 몰렸었다죠. 그 기사를 보고 들었던 생각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매일같이 보는 기사인데... 심지어 한국이었다면 그 여대생에 대한 2차 가해 또한 심각했겠죠. 같은 일이 벌어져도 그 일에 대한 대응이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었나 참담했어요. 아주 조금씩이나마 여성들이 같이 전진하길 바랍니다. 오늘도 내일도요!

👤여성, 이주민, 간병노동자로써 겪는 어려움을 알 수 있었고, 이주 여성의 '돌봄 돌려막기'가 한국의 절반을 지탱하고 있다 기사도 링크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본국에 있는 가정이 해체되고, 돌봄 부재가 발생할 수 있단걸 생각지 못했어요. 동시에 본국에 있는 남성들도 돌봄 노동에 제대로 동참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네요.

📬 From. Flat 🍑

지난 레터에 대한 피드백을 보면, 입주자님들은 역시 젠더 폭력 문제에 많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레터를 쓸 때 한껏 분노에 차있었는데 🤯 여기에 반응해주셔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 한편으론 이게 현재 여성들이 가장 피부에 와 닿게 느끼는 문제여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하니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에 조금은 속상하기도 했고요. 😰

여성 이주민, 이주 노동자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봤던 김서영 특파원의 기획 역시 많이 좋아해주셨어요. 피드백 주신 것처럼, 한국에 있는 남성들의 돌봄노동이나 양육비 지급 문제도 계속해서 챙겨봐야겠습니다.

플랫 레터는 기획 취재 때문에 2주간 쉬어갈 예정입니다. 🤧💦

좋은 기사 많이 준비해서 올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6월에 다시 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