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1년 진단 - 무엇이 바뀌었나

(6)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김제완 |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세월호가 교통사고와 다른 점은
구조적 결함이 빚은 참사라는 것
덜 경제적이지만 더 안전한 정책
탐욕으로부터 국민을 지켜달라

[세월호 1년 진단 - 무엇이 바뀌었나](6)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면 사랑이 아닐 것이다. 치매가 가슴 아픈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했던 추억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데 있다고 한다. 김지하 시인은 독재정권 시절,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라는 안타까운 시어로 표현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총체적 부실과 무능, 적폐를 목도하면서 느꼈던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과 정신적 충격, 그리고 피워 보지도 못한 어린 희생자들에 대한 가슴 먹먹한 미안함과 다짐은 이제 기억 속에서도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세월호 참사가 남긴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는, 안전을 도외시한 기업의 무리한 영리추구와 탐욕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비용이다. 재해발생률은 후진국에서 중진국 수준으로 줄이는 데 비해, 중진국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줄이는 데 훨씬 많은 비용이 든다고 한다. 사회의 안전수준이 높아질수록 재해방지의 비용 대비 효율이 체감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중진국이나 선진국에서는 재해발생률을 극소화하기 위해 기업이 지출할 비용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당장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기도 한다.

이에 기업으로서는 안전을 위해 지출하는 ‘경제적 비용’과 사고 발생 시 부담하게 되는 ‘법적 부담’을 서로 비교하고, 그에 따라 최적의 효율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현재 법제 상황에서는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작아, 기업으로서는 ‘덜 안전하지만 더 경제적인’ 방안을 선택하는 것이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따라서 전자보다 후자가 커지도록 법제를 정비해 균형을 다시 맞추어야 하는 단계이다. 개별 기업이나 기업가 개인의 철학과 양심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제화해 모든 기업이 다함께 지켜야 비로소 높은 수준의 안전이 실현된다. 이는 주요 선진국들도 지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뼈아프게 겪어온 바이다.

어느 사회든 인간이라면 저지를 수밖에 없는 확률상의 실수, 이른바 인적 오류(human error)로 인한 사고는 불가피하다. 아무리 선진국이라 해도 일정 비율의 교통사고가 늘 일어나는 이유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원인을 가진 사고는 다르다. 기업의 고위직 의사결정자가 이익추구를 위해 ‘덜 안전하지만 더 경제적인’ 정책을 채택하는 경우, 비록 하위직 근로자의 개인적 실수나 자연재해가 경합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잘못된 의사결정에 있다. 이러한 성격의 사고는 관련 법제를 선진화함으로써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에서 2007년 제정된 ‘기업 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은 기업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주요 고위직 책임자의 중대한 주의 의무 위반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일반 과실치사 사안보다 법적 책임을 가중하는 내용이다. 이 법의 정신은 구조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사고는 일반적인 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는 데 있다. 기업의 법적 책임을 가중함으로써, ‘덜 경제적이지만 더 안전한’ 정책을 선택하는 편이 오히려 기업으로서 효율적일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가 교통사고와 다르다고 하는 근거는 단지 피해자의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참사라는 데 있다. “세월호 사고는 교통사고와 다를 바가 없다”는 말은 법적으로 볼 때 반은 맞고 반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 현행 법제하에서는 세월호 사고와 교통사고를 본질적으로 달리 취급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우리 현행 법제의 상황이 선진적인 것이 아니고, 나아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에서 이 말은 잘못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기업살인법 도입 방안을 여야에서 공히 제안했다. 이와 함께 기업이 비난받을 만한 사고에 대해 징벌적 배상제도와 과징금제도를 도입하고, 기업의 실질적 지배자의 책임도 좀 더 강화하자는 방향으로 법제 개선이 제안되었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법안은 ‘명칭이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일각의 지적을 이유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명칭이 자극적이라는 점은 필자도 공감하지만, 그 부분은 수정하면 될 일이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을 ‘피해자’라고 하지 않고 ‘희생자’라고 부른다. 이는 그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위하여’ 생명을 잃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무엇을 이루지 못하는 한 우리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보내드릴 수가 없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문제’라는 식의 원론에 머물지 말고, 애통함에서 벗어나 눈물을 닦으며, 고쳐야 할 제도를 하나라도 고쳐야 한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법제 개선에 관한 정보를 업데이트하려다가 인터넷에서 “세월호 가족들 보니 대한민국 장래가 걱정이다”라는 제목하에 ‘교통사고’ ‘시체장사’ 운운하며 유족들을 모욕하는 글을 접했다. 작성자도, 근거도 알 수 없는 이 글은 김지하 시인의 이름을 사칭해 문제가 된 바 있는데, 아직도 버젓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포되고 있는 것이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난 우리의 현실이다.

<경향신문·참여연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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