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라는 날벼락을 맞은 지 2년 후인 1999년,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 개봉되었다. 젊은 사내 네명이 주유소를 습격해서 그 주위의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고 행패 부리다가 유유하게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습격했는지, 왜 하필 주유소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냥”이다. “그냥”은 무상과 관조를 표현하는 언어일 수도 있지만, 젊은 사총사가 내뱉은 “그냥”에는 좌절한 꿈에 대한 회한이 깔려 있다. 그 꿈이 어른 때문에 깨진 것이니 그들에게 시시콜콜하게 설명할 것도 없고 사실 그들과 말을 섞는 게 싫을 뿐이다. 그래서 “그냥”이다.
하여,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웠는데, 주먹 앞에 선 세상은 놀랄 만큼 부실하다. “젊은 놈들이 열심히 일해서 먹고살 생각은 안 한다”고 개탄하는 주유소 사장은 하루 종일 돈 떼먹을 궁리만 하고, 정직한 주먹이라고 유세 당당한 깡패 두목은 싸움에 젬병이다. 습격자들이 이런 걸 낱낱이 까발리니, “그냥”이라고 하는 일들이 “그냥” 같지가 않다.
경제가 옴팡지게 망해버린 세계 불황이 시작된 지 2년 후인 2010년, 주유소는 다시 습격당했다. <주유소 습격사건> 2편이 개봉된 것이다. 10년 만에 돌아온 주유소의 풍경은 낯설다. ‘일일신우일신’하고 ‘절치부심’했던 주유소 사장 덕분이다. 그는 간간이 이어지는 습격을 제압하기 위해 ‘이이제이’의 전법을 구사한다. 힘 좋은 젊은이들을 직원으로 고용해서 습격행위를 막겠다는 것. 그런데 이게 흥행대박이다. 딴에는 한주먹 하고 습격을 진두지휘할 젊은이들이 줄 서서 면접까지 보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습격’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취업’의 시대가 온 것이다.
새로운 세상에 흥취한 주유소 사장은 임금체불과 인격모독을 일삼는다. 그러자 일부는 그만두겠다고 나서는데, 의리의 젊은이들은 ‘치사해서 그만두기’보다는 ‘같이 싸우기’를 선택한다. 외부인의 습격이 아닌 내부 점거 사태다. 결국 사총사는 주유소 사장에게 체불임금을 다 받아내고 떠나는데, 10년 전처럼 ‘좌절된 꿈’을 찾아 나서지 못한다. 단결투쟁에서 승리했지만 그들은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 맴돈다. 그들의 행동은 더 이상 “그냥”이 아니고, 이유가 넘치고 넘친다. 그런데도 그들은 “재미있잖아”라고 할 뿐이다. 명색이 코미디 영화인데 매우 재미없다. 영화가 현실에 바짝 붙어 앉은 탓이다.
<주유소 습격사건> 3편은 아직 나오질 않았다. 10년 주기를 맞춰 2020년에 나올지, 아니면 또 다른 경제위기가 오면 2년 후에나 나올지 모르겠다. 영화는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요즘 3편의 밑그림을 알 듯하다.
주유소에서 청년이 사라졌다. 노인과 주부가 대신해서 주유소를 지킨다. 시끌벅적하던 주유소가 적막해진 연유를 사람들이 묻자, 사장은 “젊은것들이 땀 흘리고 일하는 걸 싫어해서”라고 대꾸한다. 20년 묵은 레퍼토리에 식상해서 사람들이 그때는 젊은이를 고용하고 지금은 고용하지 않는 이유를 되물으니,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따로 따지면 “노인네들이 젊은이들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고 하고,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는 ‘정규직’ 직원 때문이라 한다. 사장의 아내와 딸 말고는 정규직 직원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의아해한다.
젊은이들은 여전히 주유소를 바라본다. 사장의 못된 행실을 보아서는 근처에 얼씬하고 싶지 않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햇수가 쌓일수록 그런 처지의 청년은 늘어가고 경쟁도 치열해진다. 영어 학원도 다닌다. 일년에 한두번씩 외국인이 찾는다는 소문도 있으니, 그때를 대비하는 것이다. 컴퓨터 학원도 다닌다. 주유하는데 그다지 소용없는 기술이지만, 신통하게도 나라에서 학원비도 지원해 준다.
이렇게 정성은 다했으나 좋은 소식이 없다. 젊은이들이 아우성치고, 부모의 원성도 자자하다. 이제 동네 전체가 들썩인다. 마침 선거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때 동네 일을 살펴보는 단체에서 아이디어를 낸다. 젊은이들의 일자리와 미래를 주유소에만 맡길 것인가. 이제 젊은이들에게는 버틸 힘도 없고 주유소 옆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 먹을 돈도 없다. 그러니 주유소에서 벗어나 청년이 하려는 것을 하게 하자. 그런 활동을 돕도록 격려금을 보태주자. 이런 논리에 힘입어 이 단체는 ‘청년수당’을 도입한다고 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게 청년 노릇 하는 것인데, 이 정도는 줄 수 있지 않나. 실험이라도 한번 해 보자.
난리가 났다. 기자회견이 매일 주유소 앞에서 열려서 장사를 못할 지경이다. 동네 대표는 젊은이들에게 현금을 쥐여주면 흥청망청할 것이라며 비분강개하며, 이를 ‘도덕적 해이’라고 한다고 한수 가르쳤다. 도덕과는 전혀 관계없는 말인데, 도덕적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신통방통한 말이다. 사장은 다시 한번 “젊은것들이…” 운운하고, 동네 대표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청년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물고기를 줘서 신세를 망치게 한다며 아예 울 지경이다. 사람들은 이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인가 싶었다. 물고기가 없는데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어느 동네 논리냐고 따지기도 한다. 주민들은 주유소 앞으로 몰려가 “조용히 삽시다”라고 하고 청년들은 “우리가 괜찮다는데 왜 당신이 난리야?”하고 하소연한다.
사정이 여의치 않자, 동네 대표는 전격적인 발표를 한다. 주유소 구직을 위해 학원 다니고 입사원서 낸 젊은이에게 현금 지원을 한단다. 이름하여 구직수당. 동네주민들이 청년수당과 무엇이 다르냐고 힐난하자, 구직수당은 주유소 중심의 일자리 질서에 충실한 제도이고 젊은이를 건전하게 계도하는 제도라는 답이 돌아왔다. 청년수당은 젊은이를 망치는 제도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우기면 난감한데, 참으로 친숙한 장면이기도 하다. 주유소 습격사건 1편에는 로커를 꿈꾸는 ‘딴따라’가 나온다. 그는 펩시를 보고 국산이라고 우긴다. “아저씨, 이거 국산이에요! 태극마크 안 보여요? 태극마크?” 그의 우격다짐은 짠한데, 동네대표의 우격다짐은 찌질하다.
아직 진행 중인 이 영화의 결론은 나도 모른다. 다만 재미가 없다. 주유소에 이젠 젊은이들이 없다. 습격도 점거도 못하고, 언저리 바깥으로 밀려나 있다.
그래서 김상진 감독에게 부탁한다. 3편은 만들지 마시라. 너무 재미없어서 쪽박 차기 딱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