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바이 코리아(Bye, Korea)다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세상읽기]이젠, 바이 코리아(Bye, Korea)다

한때 내 마음이 불편했던 ‘바이 코리아(Buy Korea)!’ 캠페인이 있었다. 1997년 말 이후 이른바 ‘IMF 외환위기’ 극복의 맥락에서 비교적 값싼 한국 주식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많이 사라고 권하는 자본 운동이었다. 지금은 KB증권 아래로 통합된 현대증권이 1999년경 ‘바이 코리아 펀드’를 팔면서 유행한 운동이다. 역설적이게도,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때였다. 그 덕에 현대증권은 당시 10위권에서 금세 1위로 떠올랐다. 이 캠페인이 내게 불편했던 까닭은, ‘제2의 국치일’인 IMF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나라를 세계 자본에 팔자는 이완용식 모순 논리, 그리고 그 기저에 깔린 애국심 프레임 때문이었다. 애국심과 자본이 결합하면, 일견 자본은 위기를 쉽게 극복하지만, 그 뒷감당은 반드시 민초들이 해야 한다. 해고와 자살이 그 증거다.

그러나 경제거품은 기필코 터지는 법. 2000년 들어 ‘바이 코리아’ 열풍 속에 증시거품이 터지면서 당시 1000조원 규모의 주가 총액이 그 절반으로 떨어졌다. 당연히 많은 기업과 투자자가 파산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렇다고 한국 경제를 근원적으로 성찰하자는 일각의 제안이 진지하게 토론된 것도 아니다.

연이은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 모두,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구호를 당연시했다. ‘사람’ 살기 좋은 나라가 아니라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니, 기업이 잘되면 민초들 삶도 따라 좋아진다는 신화를 맹신한 셈이다.

특히 2007년 12월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제가 제대로만 된다면 내년에 주가 3000을 돌파할 수 있고 임기 내에 제대로 하면 5000까지 올라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2017년 4월 현재 주가지수는 2100대다.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도, 박근혜 정부의 ‘4·7·4 공약’도 공허한 무지갯빛 약속이었다. 그 옛날 국정교과서에 나온, 산 넘고 강 건너 무지개를 잡겠다며 하염없이 달려가던 어느 꼬마 이야기가 생각난다.

결국 경제란 늘 말로만 서민경제(살림살이)였지 실제로는 기업의 돈벌이에 불과했다. 현재 우리 코앞엔 미세먼지 외에도 고용불안과 청년실업, 노동소외, 핵위기, 전쟁위기, 기후위기, 난개발과 투기, 가계·국가 부채와 사회경제 양극화 등이 쌓여 있다.

그사이 한국의 기업들은 무수한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팔려 나갔다.

대표적으로 삼성전자, 포스코, 한국통신(KT), 담배인삼공사(KT&G), 국민은행, 네이버, 하나-외환은행, 신한지주, 대구은행, 부산은행 등은 이름만 한국 기업일 뿐, 주식 구성상 ‘외국’ 기업이다. 더 중요한 건 내·외국인 기업 가리지 않고, 모든 경제 운용 및 국가 경영 패러다임이 수익성 향상에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은 뒷전이다. 속물주의 천국이다. 그 틈에 최순실·박근혜가 재벌과의 거래로 사적 이익을 챙기다 들통난 게 현 시국이다.

그 와중에 청년들은 ‘헬조선’ 아래 꿈도, 희망도 자유롭게 품지 못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에 맞춰 ‘스펙’ 경쟁만 하다가 지치고 실망한 나머지, 어떻게 하면 ‘헬조선’을 탈출할지 이민까지 고민하던 게 엊그제다.

다행히 2016년 10월 이후 6개월간 전국의 광장에서 비폭력 평화의 민주 촛불이 활활 타올랐다. 이제 더 이상 개인적 출세 욕망을 좇는 게 아니라 나라를 통째로 바꿔야 희망이라는 것, 사회경제 구조를 새로 디자인해야 청춘 남녀가 아무 두려움 없이 꿈꿀 수 있음을 깨달았다. 다행이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나서서 “바이, 코리아(Bye, Korea)!”를 외칠 때다. 이때의 코리아는 ‘헬조선’이다. 엄마 아빠 손을 붙잡고 나가 공원이나 동산에서 즐겁게 뛰놀아야 할 꼬맹이들이 숙제와 학원에 시달리는 게 헬조선이요, 청춘 남녀들이 낭만과 지성의 기쁨을 즐기기는커녕 높은 학비와 취업 준비에 겉늙어가는 게 헬조선이며, 직장인들이 자아실현은커녕 고용불안과 만성 피로에 시달려야 하는 현실이 헬조선이자, 노인들이 사회적 존경을 받으며 노후를 즐기기보다는 용돈 몇 푼 벌려고 알바 자리를 찾아 나서야 하는 게 헬조선이다. 바로 이런 헬조선과 기꺼이 안녕을 고할 때다.

더 이상 애국심과 자본이 결합하는 프레임이 아니라 애민심과 생명이 결합하는 프레임으로, 정치경제, 사회문화 등을 근본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박근혜 구속과 더불어 박정희 체제, 즉 ‘재벌·국가 복합체’도 끝이다. 그래서 외친다. 바이, 코리아(By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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