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비판적 인문학이 필요하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사유와 성찰]‘데이트폭력’ 비판적 인문학이 필요하다

애인을 무자비하게 가격하는 청년의 모습이 뉴스에 방영된 뒤 사회는 또다시 데이트폭력에 꽂혔다. 살인으로 귀결된 데이트폭력 사건들이 거의 매년 보도되었고 그때마다 적지 않은 사회적 충격을 가져왔지만, 이번처럼 강한 반향을 일으킨 경우는 별로 없다. 그 동영상이 방송 프로그램들에서 수없이 리플레이 된 덕이겠다.

경찰청에 사고로 접수된 데이트폭력의 빈도를 살피면 이런 유형의 사건은 지난 몇 년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여성의전화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을 경험한 성인 여성 중 9% 미만의 사람들만이 경찰에 신고했다. 그렇다면 경찰청 데이터의 데이트폭력 빈도 추세보다 훨씬 많은 폭력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추산할 수 있다.

여기서 경찰청 자료에서 그닥 주목받지 않은 정보 하나가 눈에 뜨인다. 데이트폭력의 경우 전과자와 비전과자 사이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전과자가 더 폭력적이라는 점을 일반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폭력범죄의 비율로만 보면 전과자가 비전과자보다 훨씬 높은 게 상례다. 그만큼 전과자들은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 폭력, 즉 일탈적 폭력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데이트폭력의 경우는 그 편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그것은 데이트폭력이 ‘일탈적 폭력’보다 ‘일상적 폭력’으로 더 많이 해석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일상적 폭력이란, 가해자나 피해자가 느끼기에 범죄적 폭력으로 해석되지 않는, 곧 사회적으로 허용될 수 있는 폭력이라고 해석되는 폭력을 말한다. 가령 타인에게 몽둥이로 가해하는 것은 일탈적 폭력으로 이해되지만, 부모나 교사의 몽둥이질은 ‘사랑의 매’로 해석된다. 그 사회의 해석체계가 이런 이해를 부추기고 때로 정당화한다.

여성단체 조사에서 신고하지 않은 90% 이상의 여성들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신고할 만큼 폭력이 심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그 다음 순위의 답은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였다. 만약 어떤 여성이 지하철 안에서 모르는 남자에게 따귀를 맞았다면, 여성들은 즉각 신고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파트너가 뺨을 후려친 것에 대해 신고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거나 개인적으로 해결할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 여자대학의 진보적 기독교 동아리의 한 회원은 양다리 데이트를 하다 남자친구에게 발각되어 뺨을 맞았다고 말했다. 놀라운 것은 남자친구의 폭력에 대한 그의 해석이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면 걔가 그렇게 했겠어요.”

여러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바에 의하면 데이트폭력에 대해 수많은 여성들이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친밀성’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데이트폭력을 허용하게 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최근 데이트폭력의 빠른 증가 추세에 관한 것이다. 나는 신자유주의적 소비사회로의 급격한 변화가 그 주된 이유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소비사회 이전부터 남자는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몸으로 표상되어왔다. 한데 소비사회는 근육남을 표상하는 짐승남이 백옥 같은 피부에 가느다란 턱선을 한 ‘꽃미남’과 합성하는 이미지로 남자를 소비한다. 즉 ‘짐승남+꽃미남’의 이미지가 소비사회가 이상화하는 남자의 몸이다. 문제는 거의 모든 남자가 이런 규율체계에서 ‘루저’가 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야만적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자들도 루저의 체험 혹은 예감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그 체험 혹은 예감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적 배제의 폭력에 시달리게 한다. 극소수의 성공한 이들을 롤모델 삼아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매진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실패’라는 절망감으로 구현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낡은 남성성’에 대한 욕구가 메아리친다. 이 시대에 대한 종말론적 위기감이 분출하고, 지난 군사정권 시대가 호출되며 극우주의와 ‘강한 남성’의 이데올로기(과잉 마초주의)가 결합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일상적 폭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영역들에서 폭력 현상을 급증시켰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왕따에 대한 집단폭력이나, 연인 혹은 배우자에 대한 데이트폭력이 그런 예다.

나는 최근 데이트폭력의 급증 현상을, 소비사회적 신자유주의를 성찰하기보다는 휘말려버린 대중, 특히 위기의 남성을 연관시켜 본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의 폭력성을 완화하려는 사회제도적 노력과 아울러, 그 시대를 냉철하게 보고 성찰하는 비판적 인문학의 필요성에 직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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