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시스템이 부른 ‘살충제 달걀’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세상읽기]병든 시스템이 부른 ‘살충제 달걀’

기차를 타고 가다 문득 달걀에 얽힌 추억을 떠올린다. 중학 시절 처음 서울행 기차를 탔는데, 내 가방엔 어머니가 챙겨 주신 삶은 달걀이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스무 평 남짓 했지만 헛간에 작은 닭장이 있었다. 닭은 열 마리 안쪽이었다. 닭 모이는 쌀겨나 청치였다. 가끔 아버지는 몸보신 하자며 키우던 닭을 잡기도 했다. 그런 닭이 낳은 달걀을 기차간에서 먹는 재미는 쏠쏠했다. 당시 기차 안에서 삶은 달걀 까먹는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이제는 모두들 달걀 대신 휴대폰을 즐긴다.

그런 달걀을 전문가들은 완전식품이라 했다. 단백질이 풍부하고 비타민과 무기질 등 신체에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뜻. 당연히 건강에 좋다. 적어도 그 당시는 그랬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무려 1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에 이어 살충제 달걀이 문제다.

닭에 붙은 이나 진드기를 죽이려 마구 뿌린 살충제가 달걀에서도 나온다. 이걸 늘 먹는다면 당연히 사람 건강도 손상될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많은 사람이 꾸준히 먹었다. 어디 달걀 그 자체뿐인가? 달걀은 토스트나 빵에 필수로 들어가고, 냉면, 비빔밥, 순두부찌개, 부침개, 만두 등 식당 메뉴에 대부분 들어간다. 충격과 파문이 클 수밖에.

더 놀라운 건 이른바 ‘친환경’ 표시가 있는 달걀조차 살충제 달걀이었다는 점이다. 알고 보니, 문제가 된 친환경 농가 37곳 중 25곳(68%)이 속칭 ‘농피아’ 업체에서 인증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부패한 공무원들이 문제다. 세월호 뒤에 양우공제회라는 국정원 퇴직자들의 사업체가 있었듯이, 살충제 달걀 뒤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퇴직자들의 민간 인증기관이 숨어 있었다. 적폐는 무수하고 청산은 힘겹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살충제 농가나 부패 공무원만의 문제로 국한해선 안된다. 그렇게 되면 또 다음엔 간염 소시지, 항생제 물고기, 성장촉진제 과일, 농약 배추 등이 줄줄이 기다릴 것이다. 물론 사태 때마다 진상규명과 실효성 있는 대책이 절실하나, 더 중요한 건 그 근원을 살피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사태의 근원은 (돈벌이를 위한) ‘대량생산-대량소비 시스템’이다. 그리고 이 병든 시스템을 지탱하는 건 바로 우리 자신이다.

박병상 박사의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엔 미국 식민지 푸에르토리코에서 불과 세 살배기 여아가 생리를 한 일이 나온다. 성조숙증이다. 부모가 아이를 위해 몸에 좋다는 달걀을 매일 먹인 탓이다. 담당 의사는 그 달걀에 여성호르몬이 과하게 들어 있다고 했다. 미국의 공장식 양계장에서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려고 닭 모이에다 여성호르몬을 넣은 결과다.

그렇다. 자본은 더 빨리 더 많이 돈 벌려 한다. 생산성이 경쟁력의 핵심이다. 공장식 축산에서는 수백, 수천마리의 닭, 오리, 소, 돼지 등이 사육된다.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이 갇혀 있으니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병에 취약하니 사육사가 항생제를 주고, 몸집을 빨리 키우려 성장촉진제도 준다. 파리나 벌레 때문에 살충제도 뿌린다. 사료도 싸구려다. 그 덕에 자본주의는 부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도 고기나 달걀을 실컷 먹게 하는 성과를 낸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잘 맞물리는 지점이다. 그러나 과연 양이 질까지 보장할까?

육류나 달걀을 대량 소비하면서 우리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다. <동물 홀로코스트>를 쓴 찰스 패터슨은 오늘날 인간이 소나 돼지, 닭이나 오리 등을 대량 사육하고 대량 도살하는 건 마치 나치 시절의 대량 학살과 다름없다 했다. 그 옛날 서양인들의 ‘지리상의 발견’이나 선진국 자본의 식민지 개척 때, 세계 곳곳 원주민들을 한갓 가축이나 야생동물로 여기며 노예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즉 우리가 육류나 달걀을 대량 생산, 대량 소비하는 이면엔 동물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태도가 깃들어 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마저 함부로 대하는, 중독 행위다. 살충제 달걀은 그 한 결과일 뿐. 결국 대량생산-대량소비는 ‘대량살생-대량중독’이다. <조화로운 삶>의 니어링 부부처럼 ‘달걀은 닭을 착취한 것’이라 보는 수준은 아니라도, 달걀과 함께 인간도 건강성을 회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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