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정의 불법성, 결과의 합법성, 그 이후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세상읽기]과정의 불법성, 결과의 합법성, 그 이후

사례 1. 2015년이었다. 자산 규모 8조원대의 제일모직이 26조원대의 삼성물산을 3:1로 흡수한 뒤 다시 삼성물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사람들이 ‘코미디 아닌 코미디’라 불렀던 바로 그 합병이다. 핵심은 (4조원의 비자금을 지녔던) 이건희 체제로부터 이재용으로의 지배구조 이동(경영권 승계)이었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제일모직(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물산→삼성전자 등 ‘순환출자’로 이어져 있었다. 그 뒤 2년도 못 된 2017년 2월 중순, 특검에 의해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수감되었다. 삼성 총수의 첫 구속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박근혜 대통령 독대 시 합병 관련 도움을 받기 위해 부정 청탁을 했고 그 대가로 대통령의 최측근 최순실 모녀에게 승마 지원을 했다고 봤다. 당시 국민연금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대주주로, ‘외압’ 탓에 불공정 조건으로 인한 수천억원 손실을 무릅쓰면서 합병에 동의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10월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재판은 위 합병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합병이 포괄적 승계 작업의 일환이었다 하더라도 경영상 합목적성이 있기에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할 수 없다.” 이미 세상에 알려진바, 지배구조의 부당한 승계 과정에도 불구하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정당했다는 것이다.

사례 2. 2012년이었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많은 일이 벌어졌다. 국정원은 ‘셀프 감금’ 논란을 빚은 김하영 등 댓글 요원들을 통해 당시 야당 문재인 후보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을 일삼았다. 윤정훈 목사 등 민간의 ‘십알단’ 역시 국정원과의 공조 아래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며 불법 운동을 했다. 또 새누리당은 극비 문건인 남북정상회담록을 공개,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했다. 무단 공개도 문제지만 내용 또한 거짓이었다. 나아가 국군 사이버사령부는 2012년 총선 및 대선 때 심리전단을 꾸리고 많은 병사들을 컴퓨터 및 SNS 댓글 공작에 동원했다. 선거일인 12월19일에도 개표 조작 논란이 있었지만, 결과는 “51.6%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이었다. 과정은 불법투성이, 결과는 합법이었다. ‘국정농단’으로 탄핵되어 구속 중인 지금까지 ‘대통령 당선 무효소송’은 대법원 계류 중이다.

사례 3. 2005년이었다.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 논밭, 과수원을 허물고 약 1000가구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하여 발 벗고 나섰다. 당시 이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서 갑자기 아파트가 오게 되었냐고. 몇몇 주민이 민원을 제기해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토지용도 변경이 됐다고 했다. 그 민원서를 보자고 했다. 이리 피하고 저리 피했다. 담당 공무원을 찾았다. 그 민원서에 나온 8명의 이름을 적어 마을로 돌아와 일일이 물었다. 이장을 제외한 7명 모두 “전혀 모르는 일”이라 했다. ‘허위 민원서’였다. 당시 건설사 관계자들과 이장이 공모, 주민들 몰래 불법 아파트 사업을 진행한 것이다. 나는 마을총회를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마을 어른들께 가짜 민원서를 공개, 아파트 사업이 되면 마을 공동체가 어떻게 파괴될지 심히 우려했다. 어른들은 경악·분노했고 나를 새 이장으로 추대했다. 나는 전 이장을 문서위조죄로 고발하고 토지용도 변경의 부당성을 행정 당국과 사법 당국에 알렸다. 토지용도 변경의 토대가 된 문서는 가짜임이 밝혀졌고, 그는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나 행정 및 사법 당국은 아파트 사업 자체는 합법이라 했다. 과정은 불법이되 결과는 합법인 기이한 나라!

이 땅이 기이하지 않고 정의로운 나라가 되려면 입법, 사법, 행정, 언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과정과 결과가 ‘모두’ 사람 사는 이치에 맞아야 한다. 그러나 앞서 보듯 재벌이 부패하고 선거가 부정이어도, 서류가 조작돼도, 돈과 권력에의 질주는 계속된다.

이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과업은 이 부당한 과정과 결과를 ‘모두’ 바로잡는 일로, 촛불혁명의 뜻이다. 여기서 적폐 세력들의 근거 없는 저항은 적폐 그 자체를 잘 드러내고 공론화함으로써 촛불시민의 힘으로 넘어야 한다.

물론, 적폐는 자본이나 국가 외에 마을과 일터에도 존재한다. 돈이나 고용 등 코앞의 이해관계 때문에 ‘신고리 5·6호 핵발전소를 계속 건설하자’는 60%의 우리 일부 역시 (숙의민주주의라는 합법성에도 불구) 생명과 평화의 긴 시각에서는 지양 대상이다. 다수가 이미 인간적 필요보다 물질적 이해관계를 내면화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공멸’ 전에 과연 대다수가 (이해관계를 넘어) 삶의 지혜를 깨치느냐다. 마음의 촛불을 결코 끌 수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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