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개인의 자유로운 영리 추구는 나라의 부를 극대화한다.’ 영국의 애덤 스미스가 1776년에 낸 <국부론>의 기본 명제다. 봉건 잔재가 강했던 18세기의 사상으로는 가히 혁명적이었다. 가격 경쟁, 즉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모든 걸 맡기면 봉건 귀족이나 군주국가, 종교 권력의 비합리적 힘을 제어할 수 있다는 원리. 그러나 생각지 못한 게 있었다. 독과점이 대표적이다. 19세기 후반, 영국 내 독점 대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했고, 더 넓은 시장과 원료를 찾아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자유 경쟁이 아니라 기득권 동맹이 정치경제 권력을 독차지했고, 해외에서는 식민지 선주민들을 마을공동체에서 내쫓거나 노예로 만들었다. 이 제국주의 패러다임이 세상을 지배하면서 기득권 동맹 밖의 세상 사람들을 피와 눈물, 트라우마로 내몰았다. 안타깝게도 21세기조차 이 역사적 성찰을 도외시한 채 18세기 패러다임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이들이 많다.
장면 둘. 내가 고교생이던 1970년대 후반이었다. 선생님과 대학생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다. “고1, 고2 때는 실컷 놀아도 된다. 그러나 고2 겨울 방학부터 1년만 열심히 해라. 그러면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간다.” 당시 나는 인근의 남녀 고교생들과 동아리 활동도 꽤 열심히 하며 고교 시절을 알차게 보냈다. 막연하지만 ‘꿈’꿀 시간도 있었다. 그러나 그 뒤 10년 내지 15년이 흐르자 어른들은 이렇게 말했다. “중1 때부터 열심히 하지 않으면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 아이들은 중1 되기가 무섭게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두고 학교와 학원을 전전했다. 동아리 활동이나 친구들과의 놀이는 꿈같은 일이 되었고, 모든 꿈은 대학 이후로 미뤄졌다. 그리고 이제는? 요즘은 초등, 아니 유치원 때부터 대학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이가 원하는 대학, 아니 실은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50년이 좋아졌나? 갈수록 대입을 준비할 시간이 어린 시절로 당겨졌고, 청소년 불행지수는 세계 최고다. 자녀 교육비는 갈수록 늘어 부모 소득이 높아도 늘 허덕거린다. 이제 대학조차 낭만과 지성이 아닌, 학점 경쟁과 취업 준비 공간이다. 현재 대학생들의 최대 고민은, 취업도 문제지만 ‘꿈이 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장면 셋. ‘갈-비의 법칙.’ 민간기업은 물론 공공기관 등 각종 조직에서의 생존 법칙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 아래로 잘 갈구고 위로 잘 비벼야 살아남는다는 원리. 신입 사원들은 처음부터 ‘회사 발전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리라’고 맹세한다. 몇 주 내지 몇 개월의 적응 시간이 지나면서 누가 실세인지, 누구에게 줄을 서야 생존과 승진에 도움이 되는지 알아차린다. 어릴 적부터 조건 없는 사랑이 아니라 조건부 사랑 속에서 ‘눈치 보기’를 생존전략으로 익혀온 대다수는 조직 안에서 곧잘 알아서 긴다. 위로 잘 비비고 아래로 잘 갈굴 때 생존한다는 원리를 온몸으로 실천한다. 그렇게 10년, 20년 지나면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사람이 된다. 아래로 갈굴 때의 쾌감과 함께 폭력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비인간화. 그리고 위로 비빌 때의 굴욕감과 함께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비인간화 때문이다.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조직일수록 상사-부하 관계가 뒤틀린다. 비정상을 정상 취급하는 조직문화가 당연시된다. ‘적폐’의 본질이다.
위 장면들의 공통점은, 개인적 합리성과 사회적 비합리성 간의 모순이다. 각 개인은 나름 합리적 행위를 하지만 사회 전체로 심각한 비합리가 초래된다. 결국 온 사회의 비합리로 말미암아 각 개인의 합리적 행위조차 불가능해진다. 시장의 자유 경쟁 맹신이 독과점을 부르고 이것이 더 이상 자유 경쟁을 가능하지 않게 하며, 일찍부터 대입 준비를 할수록 아이들 삶은 엉망이 되고 더 이상 대학 생활에 의미가 없다. 나름 눈치껏 조직 생활을 잘해 높은 자리로 올라가나 조직 전체가 병드는 바람에 사회책임 경영을 할 수 없는 상황 또한 문제다.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 있을까? 사회적 비합리성을 초래하는 개별적 합리성은 가짜 합리성이라는 것,이 통찰이다.
나의 자유와 창의가 공동체의 복리와 평화에 자연스레 연결되는 것, 나의 흥미와 재주가 공동체의 발전과 질적 고양에 자연스레 이바지하는 것, 나의 자율성과 개성이 공동체의 민주화나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승화하는 것, 이것이 조화의 길이다. 좋은 정치란, 개인과 사회를 함께 보살피는 것. 민주 정부와 풀뿌리 민초의 공동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