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정성은 ‘공명정대’한가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영학
[세상읽기]우리의 공정성은 ‘공명정대’한가

“단일팀 구성으로 그간 열심히 훈련한 우리 선수들 출전 기회가 줄면….”

“비트코인 규제는 2030세대에게 금수저가 될 길을 박탈한 것….”

“얼마나 열심히 공부해 힘겹게 된 정규직인데….”

“이번 시험은 너무 쉬워 변별력이 없어….”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해야….”

최근 한국 사회는 인간성이나 대의명분보다 공정성이나 권익추구에 목을 맨다. 전자가 윤리 영역이라면 후자는 실리 영역이다.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에서 남북한 선수들로 단일팀을 짜기로 하자 국민의 60% 이상, 2030세대의 80% 이상이 반감을 드러냈다. 그동안 땀 흘린 우리 선수들이 맘껏 뛸 기회를 뺏겼다는 박탈감이다. 정부가 비트코인 규제를 하자, 안 그래도 청년실업 등으로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청년 세대가 대박 찬스를 잃었다고 억울해했다.

정규직 직장인과 교사들도 비정규직 직원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자 자신은 힘겹게 정규직이 되었는데 너무 쉽게 정규직이 되려 한다며 불편해했다. 심지어 취업준비생조차 정규직처럼 심적 불편함을 느꼈다.

비슷한 맥락에서 많은 대입 수험생들이나 유명 학원들도 ‘변별력’ 낮은 입시에 대해 불쾌해했다. 자기 실력 입증 기회의 박탈감 때문이다. 한편,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리는 부당한 임금 차별을 고치라는 뜻이지만, 능력 차별은 용인하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 서양에선 남성이 여성이나 이주민의 노동시장 진입에 위협을 느끼면서 방어용 무기로도 썼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 문재인 촛불정부의 국정 철학이다. 민주 혁신 정권이 보수 기득권 정권과 차이가 있다면, 별다른 꼼수를 부리지 않고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권 경쟁’을 당연시하면서도 이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힘겹게 출전권을 따낸 남한 선수 입장에서는 남북 단일팀은 평등한 기회도 공정한 과정도 아니었다. 당사자 의견을 먼저 묻지 않았다. 비트코인의 경우 인생역전을 꿈꾸는 이들에겐 새로운 기회로 보였다.

정규직, 남성, 대기업·공무원, 내국인 노동자 등 이미 일종의 특권을 누리는 이들에겐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나 ‘함께 살자’ 식 구호 자체도 부당하다. 시험의 변별력은 ‘공부’ 잘하는 이들에겐 탁월성의 지표라, 시험이 쉬우면 오히려 억울하다.

여기서 공정성과 관련, ‘주어진’ 게임 안에서 이미 성공한 자와 추격자 사이에 미세한 차이를 본다. 성공자는 성패의 경계선이 강하기를 바라고 추격자는 약하기를 바란다. 패배나 차별, 희생의 트라우마(상처)로 인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나 추격자가 일단 성공하면 변심한다. 기득권 의식이다. 이제, 기득권 게임 ‘안’에서의 공정성이 내면화한다.

참된 탈출구는 게임 그 자체의 의미를 묻는 것이다. 기득권 게임의 지속인가 아니면 의미 찾기 게임인가? 분단 상황에서의 메달보다 중요한 것은 평화공존이고, 노동시장과 시험에서 승리보다 절실한 건 착취·경쟁 없는 시스템이다.

부자 되기 게임에의 집착보다 부자가 아니어도 인간답게 사는 게 필요하다. 잊지 말 것은, 모두가 (의미 게임이 아닌) 기득권 게임에 참여할 때 세상이 더 파괴된다는 점이다.

영화 <아일랜드>나 <월E>의 교훈은, 오염 내지 쓰레기 탓에 지구 미래가 없다는, 또 과학기술도 답이 아니란 것이다. 탐욕 외에 전쟁도 문제다.

약 170년 전, 추사 김정희 선생이 제주도 귀양살이할 때 귀한 책을 보내준 제자에게 선물한 작품이 세한도다. 그 서문엔 “지금 세상은 온통 권세와 이득을 좇는 풍조가 휩쓸고 있다. 그런 풍조에서도 … 이끗을 보살펴줄 사람에게 주지 않고 멀리 초췌하게 시들어 있는 사람에게 보내”준 것을 진정 고마워했다. 아직 이권 경쟁을 내면화하지 않았던 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권리’란 인권이기도 하지만 권세와 이득의 합(이권)이기도 하다. 기득권을 포함한 권리가 자본·권력에서 독립적이면 좋은데, 포섭되면 속물화한다. 공자는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했으니, 어려운 때일수록 실리보다 윤리 즉, 인간다움의 도리에 충실해야 한다. 마음의 상처와 두려움을 사회적으로 돌파해야 할 이유다.

들불같이 번지는 ‘미투’ 운동처럼, 용기의 연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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