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필요조건 ‘열림’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교수·물리학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생명의 필요조건 ‘열림’

열린 문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빈틈없이 문을 꼭 닫아야 안으로 들어오는 찬 바람을 막을 수 있다. 물리학에서도 열림과 닫힘, 안과 밖이 중요하다. 자연현상을 설명할 때 물리학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를 긋는 일이다. 경계의 안을 계 또는 시스템이라 하고, 그 밖은 환경 또는 주위라 한다. 어디까지를 계로 할지, 어디서부터 계를 둘러싼 환경으로 할지에 따라 문제의 성격이 달라지고, 물리학의 적용방식도 달라진다. 갈릴레오가 설명한 자유낙하운동에서 물체의 속도는 시간에 비례해 늘어난다. 이 경우 물체 주변의 공기는 계가 아닌 환경이다. 주변 공기까지 포함한 계를 생각하면 속도 계산을 달리 해야 하고, 지구의 자전도 넣으면 계산은 또 달라진다. “모든 것은 가능한 한 단순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하면 안된다”는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여기서 “모든 것”을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또는 모형으로 생각하면, 결국 아인슈타인이 한 말은, 계와 환경을 가르는 경계긋기에 대한 조언이다. 너무 넓은 영역을 둘러싸도록 경계를 설정하면 문제의 이해나 해결이 어려워진다. 마치, 우리 은하의 모든 원자와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고려한 역학 문제를 풀어 1m 높이에서 떨어뜨린 돌멩이의 자유낙하를 설명하려는 시도처럼 말이다. 경계를 너무 작게 그리면, 문제는 정말 쉬워지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말도 안되는 결과를 얻게 된다. 마치, 중력조차도 계의 밖에 있어, 떨어지려 해도 떨어질 수 없는 돌멩이처럼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은 바로, 단순성을 추구하더라도,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잃을 정도로 과도한 단순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치우친 경계(境界)긋기에 대한 경계(警戒)다.

[김범준의 옆집물리학]생명의 필요조건 ‘열림’

우주 전체를 계로 하면, 바깥은 없다. 우주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의 집합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해진 우주의 경계 너머의 존재는 우주 안의 어떤 것에도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우주 안쪽의 존재에 영향을 주는 무언가가 밖에 있다면, 우주의 경계를 잘못 설정한 것일 뿐이다. 더 멀리, 더 멀리, 경계를 확장해 우주 밖 존재가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도록 경계를 정하고 나면, 그 안의 모든 것이 우주다. 따라서, 우주가 하나라면 밖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 질문은 과학적으로 무의미하다. 거기에 뭐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요즘 다중우주론이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우주 말고도 다른 우주가 부지기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다중우주에 대한 책으로 <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를 권한다. 우주가 여럿이라면, 우리 우주 밖에 무엇이 있는지는 의미 있는 질문일 수 있다). 우주가 하나라면, 우주 전체는 외부로 통하는 문이 꽉 닫혀 어느 것도 경계를 넘나들 수 없는 닫힌계고, 외부로부터 완벽히 차단되어 있는 고립계다(에너지, 물질 등 그 어떤 것도 출입할 수 없는 계를 고립계, 물질은 통과할 수 없지만 에너지 전달은 가능한 것을 닫힌계라 한다).

당신의 몸은 닫힌계일까, 고립계일까, 아니면 열린계일까. 우리는 음식을 먹고 그 안 에너지를 써서 매일의 삶을 이어간다. 아침에 들은 소식을 점심때 친구에게 알려준다. 우리 몸은 당연히 열린계다. 열린계로는 에너지, 물질, 정보가 밖에서 들어올 수 있고, 일련의 변환과정을 거쳐 밖으로 나간다. 당신이 밥 먹고 화장실 갈 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때 늘 벌어지는 일이다. 또, 아이들의 키가 자라고, 새로운 것을 배워 앎을 늘리는 것이 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키와 함께 자란 아이 몸속 뼈는 밖에서 들어온 원자들이 질서 정연하게 다시 배열된 것이고, 이 과정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한다. 우리가 매일 살아있는 이유는 내부의 엔트로피를 끊임없이 낮추기 때문이다.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생명은 밖에서 끊임없이 안으로 유입되는 음의 엔트로피로 가능한 자연현상이라 말한다. 내가 고립계면 난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다. 열림은 생명의 필요조건이다.

계와 환경을 나누는 경계는 임의적이다. 경계의 안과 밖의 구분도 모호하다. 우주를 둘로 나눠 왼쪽을 계라 하고 오른쪽을 환경이라 할지, 거꾸로 오른쪽을 계라 하고 왼쪽을 환경이라 할지는 관심을 어느 쪽에 두는지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것은 조선시대 낡은 구습 때문이지만, 둘로 나누고 그중 어느 하나를 계라고 하지 못할 이유는 자연에 없다. 날아오는 야구공을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맞출 때, 야구방망이에 야구공은 경계의 밖이고, 야구공에는 야구방망이가 밖이다. 방망이에 맞은 야구공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싶은지, 야구공에 맞은 방망이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싶은지에 따라, 계와 환경을 얼마든지 거꾸로 설정할 수 있다. 물리학뿐 아니다. 우리 집 귀여운 강아지 콩이는 내게는 환경에 속하지만, 콩이라는 이름의 열린계에서 나는 강아지의 환경의 한 부분을 이룬다. 자연의 눈앞에 둘 중 누가 계고 누가 환경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자연은 경계를 알지 못한다. 예외 없이 하나하나 제각각 열린계인 지구 위 모든 생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른 생명의 환경이 된다. 우리는 섬이 아니다. 연결된 서로의 환경이다.

마음에도 문이 있다. 열린 이의 마음은 밖의 정보를 받아들여 자신의 내부 상태를 바꾸고, 꽉 막힌 닫힌 이의 마음에는 밖을 향한 문이 없다. 젊어서 열린 마음으로 무언가를 배웠더라도, 나이 들어 밖의 변화에 눈감아 마음의 문을 닫으면, “왕년에는 말이지”를 반복하는 꽉 막힌 꼰대가 된다. 꼰대 고립계의 엔트로피 증가에 맞서는 방법은 딱 하나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다. 닫힌 문으로 안의 공기가 탁해졌다면, 문을 활짝 열어젖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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