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제정 당시 국회는 ‘이해충돌방지’ 규정을 삭제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만 남고 다른 한 축이 빠진 것이다. 이제야 그 배경이 드러났다. 여야가 한목소리였던 이유를 알 만하다. 표면적으로는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적용범위가 너무 포괄적이다’ ‘그래서 의정활동의 족쇄가 될 것이다’ ‘위헌적이다’ 등등의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이해충돌 상황이 자신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옭아맬 법을 제정할 리 없는 국회의원이었다. 국회의원과 그 배우자들 중에는 부동산 임대업자도 있고 기업경영인도 있고 학교법인을 운영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공적 이익과 사적 이해가 충돌하는 상황이 일상다반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전수조사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한둘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친지에게 건물매입을 권유한 뒤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지정받게 한 의원, 역 개발명목으로 예산을 따온 역세권 건물주 의원이나 지방 일부대학의 역량강화를 위해 국비투입 예산안 통과를 추진한 의원이 그 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고위공직자였을 때부터 부친 소유 부동산 근처의 철도사업을 추진했다는 해명을 들어보니 더욱 이해충돌의 소지는 커 보인다. 국비투입 사업지로 선정되기 몇 개월 전에 역 근처 상가건물을 샀다니 더욱 의심스럽다.
이해충돌은 공직자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자신이 맡고 있는 공적인 업무 또는 공공의 이익과 서로 상충되는 상황을 뜻한다. 이해충돌은 일상에서, 직업수행에서 늘 맞닥트리게 된다. 이해충돌 상황의 폭은 권한의 크기에 비례한다. 공직자 중에서도 정책결정 권한을 갖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이해충돌 상황의 크기는 다르다. 그런 면에서 국회의원이 마주하게 될 이해충돌 상황은 어마어마하다. 그의 권한이 크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은 행정부와 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권한, 입법권한, 예산안 심의의결권한 그리고 정책결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 등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 막강하다. 그러니 겉으로는 공적 권한을 행사하면서 뒤로는 사적 이익을 챙기고, 직무로 얻은 정보를 사적으로 이용하고 주변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상황도 많을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도 사람이다. 공적 위치에서 사적인 자신을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팔은 안으로 굽기 마련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나, 내 가족과 친·인척의 이익으로 마음이 쏠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공직자윤리법 제2조의2에 ‘이해충돌 방지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공직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추구하거나 개인이나 기관·단체에 부정한 특혜를 주어서는 아니 되며, 재직 중 취득한 정보를 부당하게 사적으로 이용하거나 타인으로 하여금 부당하게 사용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내용이다. 처벌규정이 없는 선언적 규정이어서 실효성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래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당시에 처벌을 포함한 이해상충 방지가 논의되었다가 아쉽게 삭제되었다. 이후 법제화는 계속 시도되었으나 법안은 잠자고 있었다. 자신의 행동에 제약으로 다가올 법안에 적극적 관심을 보일 국회의원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손혜원 의원 사건으로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이해충돌 방지를 규율하고 범죄화하라는 여론의 압박도 거세졌다. 국회 내부에서도 여러 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거대 여야는 ‘이해충돌’ 문제로 대충돌 중이다. 1월에 국회를 소집했지만 본회의 한 번 열지 못했다. 2월 국회는 아예 의사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손혜원 국정조사’ 없이는 국회를 열 수 없다는 야당 원내대표의 버티기 때문에 국회 정상화는 안갯속이다. 이해충돌로 대치하고 있지만 여야의 속내는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옭아매고 불이익을 줄 법안은 그들에게는 내키지 않는 법이다. 여야가 한통속이라서 더욱 걱정이다. 세비 인상의 예에서 보듯이 여야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 한 몸처럼 움직이다가도 그들 모두에게 불이익이라면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민의 이익이 아니라 종종 자신의 이익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인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다. 그들은 ‘국민’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치적 대표성을 강조한다. 그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치인으로서의 직업윤리다. 정녕 국민을 위하고 국민으로부터 존경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입법권을 행사해야 한다. 사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공적 입법의무를 방기하는 것이야말로 이해상충이다. 전수조사로 이해충돌 사례를 유형화하고 기준을 세워 처벌대상을 좁혀나가면 위헌소지 없는 법안을 마련할 수 있다. 청렴공직사회의 길라잡이가 되고 있는 ‘김영란법’에 이해충돌 방지규정을 끼워 넣는다면 공직윤리규범이 완전체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