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폐기물, 답이 없다읽음

조현철 신부·녹색연합 상임대표

‘건설허가는 위법이지만, 취소는 안된다.’ 지난 2월14일 서울행정법원이 신고리 5, 6호기 건설허가취소청구소송에서 내린 판결 요지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의 ‘중대사고’ 고시 누락 등 위법 사항이 있지만, ‘공공복리’를 고려했을 때 건설허가 취소까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건설허가 취소로 예상되는 1조원의 손실 등이 공공복리에 반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위법 내용이 안전에 관련된 것이라면, 오히려 건설허가 취소가 공공복리에 맞지 않을까.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인 핵발전소 반경 30㎞ 내에 사는 380만 주민의 안전보다 중요한 공공복리는 없다.

[녹색세상]핵폐기물, 답이 없다

지난 2월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안을 의결했다. 지진 안정성과 다수호기 안정성 평가를 하지 않았고, 가압기 안전방출밸브에서 누설이 발견되는 등 몇 가지 중대한 쟁점 사안이 있지만, 추후 보완을 조건으로 승인한 것이다. 뭐가 급했는지, 설연휴 하루 전날에 9명 정원의 원안위 위원 중 4명만 참석해 결정했으니, 위법은 아니라도 졸속은 분명하다. 탈핵을 선언한 정부에서도 원전을 싸고 도는 원안위의 행태는 달라지지 않았다.

수백만명이 살고 있는 부산과 울산은 운영허가를 받은 신고리 4호기와 건설 중인 신고리 5, 6호기로 세계 최대의 핵발전소 밀집지역이 되었다. 핵발전소의 절대 안전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절대’는 없다. 기술적으로 실증되었다는 핵발전소의 안전은 어디까지나 이론이고, 이론과 실제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이 차이가 재앙이 될 수 있음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이미 ‘실증’되었다. 이론으로 주장하는 안전과 현실로 입증된 사고 가능성 중에서 어떤 것을 더 중시해야 할지는 명확하다.

핵발전소의 안전 불감증 이면에 자본의 논리가 있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켜온 ‘비정규직’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어 온 것은 그것이 자본의 논리를 관철하기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다. 산재 사망사고가 대부분 하청노동자들에게 일어나도 비정규직이 건재한 것도 그것이 수익의 극대화에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의 기술적 안정성과 경제성 주장 저 밑에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려는 자본의 꿈틀거림이 있다. 이익을 위해 사람과 생명을 무시하는 자본의 냉혹함은 경제성과 안전성으로 포장된다. 높은 이익이 보장되는 한, 자본은 결코 핵발전을 포기하지 않는다. 핵발전소에서도 자본의 논리와 생명의 논리가 충돌한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오복음 6, 24). 이것은 양자택일의 문제다. 탈핵은 단지 발전 방식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볼모로 한 자본의 폭주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의 문제다.

중대 핵사고만이 아니라 사용후핵연료도 핵발전의 실체를 폭로해준다. 사용후핵연료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이 방출되는 고준위핵폐기물로 핵발전소 내의 임시저장소에 보관해왔다. 임시저장소는 고준위핵폐기물에 요구되는 안전성이 전혀 확보되지 않은 위험한 공간이다. 더구나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가까워지면서 이런 공간마저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이 난감한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려면 핵폐기물은 답이 없고, 핵폐기물을 배출하는 핵발전도 답이 없다는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 ‘겸손’이 절실히 필요하다.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를 앞둔 3월6일, ‘핵폐기물 답이 없다’ 시민선언이 예정되어 있다. 이날은 가톨릭교회가 회개와 정화를 위한 ‘사순시기’를 시작하는 ‘재의 수요일’이기도 하다. 이날 신자들은 이마에 재를 받으며,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창세기 3, 19). 흙(humus)에서 온 사람(human)이 세상에서 취할 근본 태도가 겸손(humility)임을 마음에 새긴다.


경향티비 배너
Today`s HOT
황사로 뿌옇게 변한 네이멍구 거리 젖소 복장으로 시위하는 동물보호단체 회원 독일 고속도로에서 전복된 버스 아르헨티나 성모 기리는 종교 행렬
라마단 성월에 죽 나눠주는 봉사자들 크로아티아에 전시된 초대형 부활절 달걀
선박 충돌로 무너진 미국 볼티모어 다리 불덩이 터지는 가자지구 라파
이스라엘 인질 석방 촉구하는 사람들 이강인·손흥민 합작골로 태국 3-0 완승 모스크바 테러 희생자 애도하는 시민들 코코넛 따는 원숭이 노동 착취 반대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