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빈칸

올해는 150주년을 기념하는, 유엔이 지정한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의 해’다. 1869년 멘델레예프는 당시 알려져 있던 60여개의 원소를 원자량과 화학적 성질을 이용해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했다.

그가 만든 주기율표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표 안에 놓인 ‘빈칸’에 있다. 아직 채워지지 않은 표는 그 빈칸에 더 찾을 무언가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아직 모름’을 인정하지 않는 빈칸 없는 표는 미완의 표를 완결된 표로 보이게 하는 착시를 만든다. 멘델레예프가 남긴 빈칸은 이후 이곳에 들어맞는 화학원소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원자번호 21번 스칸듐, 31번 갈륨, 32번 저마늄, 43번 테크네튬 등이다.

[김범준의 옆집물리학]빈칸

20세기 들어 양자역학의 발전으로, 각 원소의 원자번호는 원자핵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개수고, 이는 음의 전하를 가진 전자의 개수와 같다는 것이 알려졌다. 또, 원자핵 주위 전자들이 낮은 에너지 상태부터 차곡차곡 놓인다는 것으로부터 주기율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의 과학자는 주기율표만 가지고도 많은 원소의 화학적 성질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금은 왜 시간이 지나도 광택을 잃지 않는지, 철은 왜 쉽게 녹스는지, 비소는 왜 우리 몸 안에서 독성을 갖게 되는지, 어렵지 않게 설명할 수 있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뿐 아니다. 채워야 할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아직 모름’을 인정하는 태도가 과학 발전의 주된 원동력이다.

거꾸로, 빈칸이 없어야 과학이라는 완전히 잘못된 뒤집힌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학과 비슷한 것이 없으니 유사과학도 과분해 가짜과학이라 불러 마땅한 창조과학의 일부 주장이 그렇다. 진화의 잃어버린 연결고리(missing link)가 발견되지 않았으니 진화론에 오류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한다. 진실은 거꾸로다. 제대로 된 과학 안에는 숭숭 구멍 뚫린 빈칸이 도처에 널려 있다. 과학은 모두 함께 힘을 모아 빈칸을 채워나가는 인류 공동의 지난한 노력의 과정이다. 빈칸이 없으면 과학도 없다.

‘빈칸’의 가치를 공자도 <논어>에서 “지지위지지(知之爲知之), 부지위부지(不知爲不知), 시지야(是知也)”로 이야기한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즉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부지(不知)의 지(知)”가 바로 진정한 앎의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소크라테스의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도 역시나 비슷한 얘기다. 작가 유발 하라리도 <사피엔스>에서 과학혁명은 결국 “무지의 발견”이라고 이야기한다. 모른다는 사실을 알면, 알기 위해 뭐라도 할 수 있지만, 모르는데 안다고 믿으면, 더 알기 위한 노력을 멈추게 된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윌리엄 수도사는 제자 아드소에게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진리 탐구의 가장 큰 장애물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절대적 진리라는 확신이다. 세계 지도 위에 표시된, 아직 가보지 못한 대양 너머 미지의 여백의 존재는, 그곳에 가려는 노력을 충동하기도 했다. 과학에서나 우리 삶에서나 ‘빈칸’은 소중하다. 빈칸이 없다면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빈칸’은 그곳에 아무것도 없다는 ‘무(無)’의 인정이다. 현대 양자물리학에서 ‘무(無)’, 혹은 ‘정말로 비어 있음’을 뜻하는 ‘진공(眞空)’도 과거 멘델레예프 주기율표의 빈칸처럼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물리학은 진공이 역설적으로 진공이 아님을 발견했다.

현대 물리학의 진공(vacuum)은 넓고 깊은 바다와 비슷하다. 큰 바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바닷물을 직접 보지는 못하고, 물장구를 쳐 수면 위로 튀어 올라온 물방울, 그리고 그 물장구가 남긴 바닷물 속 공기방울만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수면 위로 올라온 물방울을 입자, 바닷물 안 공기방울을 반(反)입자로 생각하면 된다. 진공이 이런 바다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갑자기 입자 하나와 반입자 하나가 짝을 이뤄 동시에 그 존재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진공 요동이다. 양자역학의 진공 요동으로 만들어진 입자와 반입자의 쌍은, 튀어 오른 물방울이 다시 바다로 돌아가 공기방울과 만나 사라지듯이, 오래지 않아 서로 만나 함께 소멸해 없어진다. 결국, 아무것도 없는 진공은 모든 것이 멈춰 있는 정적인 존재가 결코 아니다. 짧은 순간의 양자 요동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입자-반입자가 쌍생성과 쌍소멸을 반복하며, 팥죽 끓듯 하는 동적인 존재가 바로 진공이다. 처음 이론적인 상상으로 제안된 입자-반입자의 쌍생성은 다양한 실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 양성자의 반입자인 반양성자로 구성된 반수소를 실제 실험에서 관찰하기도 했다.

현대 물리학의 진공, 혹은 ‘무(無)’는 자발적으로 온갖 것들을 생성할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바다다. 요즘에는 우주를 탄생시킨 태초의 빅뱅도 바로 이와 같은 진공의 양자 요동으로 시작되었다는 주장에 많은 물리학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우주가 만약 이처럼 순수한 양자 요동으로 시작했다면, 우리 인간의 존재에 어떤 거창한 우주적인 규모의 목적이 있을 리 없다. 어쩌다 보니, 우연히 존재하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나, 당신이나, 지구나, 태양이나, 우리 은하나, 결국 모두는 하나같이 ‘빈칸’의 후예다.

고 노회찬 의원의 6411번 버스 연설 동영상을 봤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른 새벽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고인의 애틋함이 담긴 연설에 눈물을 글썽였다. 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잘 보이지 않는 곳일수록 오히려 더 자세히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과학이나 우리 삶이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빈칸’의 존재가 더 소중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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