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장을 바꾸는 ‘무거운 존재’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권력장을 바꾸는 ‘무거운 존재’

질량이 있는 모든 것은 아래로 떨어진다. 지구 중력장에서 질량에 비례하는 크기의 힘을 받는다. 이 힘이 바로 무게다. 질량과 무게는 물리학에서는 명확히 의미를 나눠 쓰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무게는 질량에 중력가속도를 곱한 것이라서, “내 몸무게는 60㎏”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 몸무게는 60㎏중” 또는 “내 몸의 질량은 60㎏”이라 하는 것이 맞다. 우리가 계속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무게와 질량 사이의 비례상수인 중력가속도는 어디서나 거의 일정하니, 오해의 소지는 별로 없다. 오류를 교정해 바꿔 불러야 한다고 우길 생각도 없다. 과학의 정량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가 무게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 많다. 어떤 이의 입은 무겁다 하고, 팍팍하고 힘든 일상을 삶의 무게라고 말한다. 한 작가는 존재의 가벼움을 참을 수 없다 했고, 요즘 우리나라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며 필자는 마음이 무겁다.

[김범준의 옆집물리학]권력장을 바꾸는 ‘무거운 존재’

뉴턴이 처음 보편중력법칙을 발견했을 때 얘기다. 태양이 지구에 힘을 미쳐 지구가 공전한다고 하니, 당시 사람들은 이 이론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태양과 지구 사이에 아무런 직접적인 접촉이 없는데도 어떻게 힘이 전달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눈앞 책상 위에 놓인 볼펜 한 자루를 손이나 막대나 콧바람 없이, 어떠한 직접적인 접촉 없이 밀거나 끌 수는 없다. 오로지 접촉을 통한 힘의 전달만이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당시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었다. 무협영화에 나오는 무술 고수의 장풍도, 현실에서는 손바닥을 밀어 일으킨 바람으로 성냥불 정도는 끌 수도 있겠지만, 공기가 없는 진공이라면 턱도 없다.

접촉하지 않고도 어떻게 태양이 지구에 힘을 미칠 수 있을까? 이런 유형의 질문은 답하지 않겠다는 것이 뉴턴의 생각이었다. 접촉하지 않고도 작용하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이런저런 가설을 도입하지 않겠다는 획기적인 선언이다. 일단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 힘에 의해 지구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될까를 이해하는 데 집중하자는 제안이다. 이전의 자연철학자와 달리,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하겠다는 뉴턴의 연구 방식은 결국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엄청난 먼 거리를 건너뛰어 작용하는 중력 상호작용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상대론의 도래를 기다려야 했다. 독자도 생각해보라.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 만약 어떤 이유로 태양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떤 일이 생길까? 뉴턴의 보편중력법칙은 지구에 작용하는 중력이 그 순간 0이 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셈이다. 한편 어떤 정보도 빛보다 빨리 전달될 수 없음을 얘기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은, 태양의 순간적 소멸과 그로 인한 지구 궤도의 변화는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알려준다. 자연은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준다. 태양의 존재는 우주 공간 곳곳에 중력장을 만든다. 태양이 갑자기 소멸하면, 이로 인한 중력장의 변화가 파동의 형태로 빛의 속도로 전달되어 지구의 위치에 도달한다. 지구가 태양과 직접 순간적으로 먼 거리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위치에 멀리서 태양이 만들어 놓은 중력장을 지구가 느낄 뿐이다.

올해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50주년이다. 무게는 질량에 중력장을 곱한 것이라서, 장소가 지구에서 달로 바뀌어 중력장이 변하면 무게도 달라진다. 지구에서 10㎏의 질량을 들 수 있다면, 달에서는 무려 60㎏ 질량의 물체를 번쩍 위로 들어 올릴 수 있다. 달 표면에서의 중력장은 지구의 6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조심할 것이 있다.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인 관성의 크기는 무게가 아닌 질량이 결정한다. 60㎏ 질량의 물체는 달에서도 여전히 질량이 60㎏이다. 관성의 크기는 지구에서나 달에서나 마찬가지로 우주 어디에서나 같다. 60㎏ 질량의 물체를 달에서 위로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다 해도, 들고 가다 방향을 휙 바꾸면 큰 관성으로 말미암아 물체를 손으로 계속 잡고 있기는 어려울 거다.

중력의 장(場)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질량이 있는 물체를 중력장이 존재하는 한 장소에 가만히 놓고 물체의 움직임을 추적하면 중력장을 잴 수 있다. 배명훈의 소설 <타워>에는 가상국가에 존재하는 권력의 장을 한 상품의 움직임으로 추적하는 얘기가 나온다. 재밌고 기발한 소설이니, 꼭 읽어보시길. 물리학에서 중력장을 재기 위해 이용하는 물체의 질량은 작을수록 좋다. 질량이 크면 물체의 존재 자체가 주변의 중력장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복잡한 관계의 연쇄가 만들어내는 인간 존재의 사회적 장(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가장 연약한 존재에 대한 세심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통해서만 우리 사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가장 소득이 적은 사람, 가장 차별을 받는 사람, 문화적으로 가장 소외된 사람이 우리 사회의 진실을 보여준다. 눈에 띄지 않는 모습이 우리의 참모습이다.

무게는 질량이 아니다. 무게는 질량뿐 아니라 물체가 놓인 곳에서의 중력장의 크기가 결정한다. 질량은 물체가 어디에 있든 변하지 않는 물체의 고유한 속성이다. 내가 어제와 다름없는 동일한 사람이어도 어제보다 마음이 가볍고 무거울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존재하는 사회적 상황의 장(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존재의 무게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무거워질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타고난 고유한 능력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내 키의 두 배인 사람은 없고, 나보다 100m를 두 배 빨리 달리면 세계신기록이다. 하지만 어떤 이는 사회적 장의 변화로 엄청난 존재의 무게를 갑자기 갖게 된다. 무거운 별이 주변의 중력장을 변화시키듯, 부여받은 무거운 책무로 무거워진 사회적 존재는 다시 방향을 돌려 우리 사회의 장을 바꿀 수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를 무겁게 짓눌러온 그동안의 갈등은 이제 뒤로하자. 필자는 조국 신임 법무장관의 어깨에 무겁게 지워진 힘이 만들 권력장의 변화, 아니 우리 사회를 오래 짓눌러온 부당한 권력장의 소멸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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