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한·일 경제전쟁, 북핵 문제, 사드 미사일 배치로 인한 한·중관계 악화, 중동지역 긴장으로 인한 원유가격 불안정 등 우리 경제의 대외적 위험 요인들이 늘고 있다. 국제적 분업질서에 의존하여 국내외 생산체제를 갖춰왔던 우리 주력 산업과 경제는 대외적 위험 요인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권의 대외무역 의존도, 취약한 국내 수요 기반, 대기업과 영세 중소기업들로 이루어진 부실한 기업생태계, 이 세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 대외적 충격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인 국가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를 위해 공급 부문의 중장기적 구조개혁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수요 부문의 역할은 무시되어 왔다.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속에서 수요 부문의 역할이 비로소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른 경쟁국들에 비해 낮은 가계소득 비중은 높이고 상대적으로 높은 생활비용은 낮추는 정책적 노력들이 내수기반을 강화하여 구조개혁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보다 능동적인 소비자의 역할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자 주권행사를 통한 참여와 집단지성이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 정부의 반한기조로 확산된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이러한 소비자 참여와 집단지성의 위력을 잘 보여준다.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소비자들이 자본주의 경제의 방향을 정하는 운전자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한 ‘투표’로 소비자 주권을 행사하고 이런 투표가 기업가를 움직여 생산과 배분이 이루어진다. 소비자들이 수동적으로 주어진 욕망의 노예, 소비기계일 뿐이라면 기업가의 이윤동기만이 지구 자원의 소비를 결정하는 위험한 시장경제가 만들어진다. 이런 획일적 가치가 지배하는 지구경제가 다양한 외부적 충격들을 극복하고 존속할 수 있을까? 소비자들은 스스로 욕망을 제어하고 때로는 새로운 욕망의 차원을 개척하는 자율적인 존재다. 이런 자율적인 소비자 주권이 있어서 시장경제는 윤리적 가치, 환경적 가치, 동물복지와 생명다양성의 가치 등 다층적 가치를 포괄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이를 통하여 불평등, 환경 파괴, 불공정 무역과 착취 등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시장 내의 기제가 마련된다. 이런 기제가 작동하는 데 소비자들의 약간의 분별력이면 충분하다. 다수의 무지한 소비자들이 행사하는 소비를 통한 투표가 누구보다도 현명한 지혜를 발휘한다는 집단지성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힘, 탄탄한 국내수요기반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자국 상품 애호라는 일본 국민의 자율적 소비자 주권의 역할이 크다. 규모로 세계 최상위권인 자동차시장, 일본의 수입차 판매 비중은 아직도 5.8%에 불과하다. 국산차의 품질 경쟁력이 일본과 맞먹는 최고 수준임에도 16.8%를 기록한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자력발전 사고의 악재를 극복하고 관광수지 흑자와 세계 4위의 관광경쟁력을 갖추게 된 데도 국내수요기반이 역할을 했다.
우리의 관광수지는 10년 넘게 적자행진을 지속했다. 우리는 해외관광을 지나치게 선호하는 것 같다. 우리가 관심을 끊은 많은 국내 관광지들이 황폐화되고 있다. 고용이 전체 고용의 7%에 가까울 정도로 관광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고 한류 문화상품의 인기를 감안할 때 그 성장 잠재력 역시 크다. 이런 관광산업이 성장하려면 국내관광이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 국토와 이웃에 대한 애착, 지역균형발전과 상생협력이라는 윤리적 가치에 투표하는 소비자 주권이 국내관광 활성화, 관광인프라 투자 그리고 관광수요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든다.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 노동자와 농어민과 상생협력을 추구하는 윤리적 소비가 확산된다면 국내수요기반이 강화되고 중소기업들이 기술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발판이 된다. 대기업과 중소협력업체 간의 상생협력이 정착되기 위해서도 소비자 주권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협력업체들에 대한 불공정한 납품단가 강요와 부당한 기술탈취를 일삼는 기업을 처벌하고 상생협력을 확산하는 기업을 보상하는 윤리적 소비자 주권 행사가 대기업과 협력업체 간 상생협력을 앞당길 수 있다.
최근 일본상품 불매운동 여파로 국산품 수요와 국내관광이 활기를 띠고 있다. 지난 8월 통계는 대부분의 연령대에서 고용률이 개선되었고 상용근로자도 49만명 이상 증가하여 고용의 질 개선도 뚜렷했다. 윤리적 소비를 통한 소비자 주권 행사가 한·일 경제전쟁이라는 위험 국면을 구조개혁의 호기로 전환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