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동 대공분실. 이 악명 높은 고문시설은 정교하게 만들어졌다. 이 시설을 만든 사람은 당대 최고라 칭송받던 건축가 김수근이었다. 88올림픽 주경기장과 체조, 수영, 사이클 경기장을 모두 설계했던 사람이다. 김수근 주변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은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조사자의 공간과 피조사자의 공간이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 마치 사람이 사는 집과 짐승 우리가 다른 것처럼,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것처럼, 각각의 공간은 너무도 다르다. 먼저 경찰관들이 활동하는 공간은 남향을 기본으로 구성되었다. 잘 꾸며진 일본식 정원, 동시에 두 경기를 즐길 수 있는 널찍한 테니스장, 통유리로 꽤 괜찮은 전망을 만든 식당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제법 울창한 작은 숲도 있다. 똑같이 생긴 방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모든 공간은 용도에 따라 크기도 배치도 제각각이다. 1970년대 건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되었다.
반면, 끌려온 사람들의 공간은 출입구부터 북쪽에서 시작한다. 정문에서부터 조사실에 이르기까지 모두 7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하나의 문이 열릴 때마다 새로운 공포와 맞닥뜨리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좁은 현관문을 통과하면 책상 하나만 놓여 있는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군복으로 갈아입히거나 아예 옷을 벗겨,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전락했음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다시 철문이 열리면, 이번엔 끝없이 반복되는 나선형 계단과 마주해야 한다. 나선형의 좁은 계단을 오르다보면, 결국 도착한 곳이 몇 층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조사실은 5층이고, 대공분실은 7층짜리 건물이지만,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은 자신이 8층 또는 9층, 곧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기억하기도 한다. 자기가 몇 층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함으로써 공간에 대한 감각을 빼앗아 버린다. 공간, 시간 등 기본적인 감각을 빼앗기면 곧바로 공포를 느끼게 된다. 길을 잃었을 때의 공포를 건물 안에서 느끼게 하는 거다. 계단이 끝나는 곳엔 다시 독립된 공간이 나온다. 이곳을 거쳐야만 조사실 복도에 설 수 있다. 여태껏 지나친 공간들을 나누는 건 육중한 철문이다. 조사자들의 공간에는 모두 나무 재질의 문이 달려 있지만, 피조사자들은 7개나 되는 철문을 마주해야 한다.
조사실에 갇히면 그들이 원하는 답을 내놓을 때까지 결코 나갈 수 없다. 조사실에서 먹고 자며 생리현상도 해결해야 한다. 볼일을 보는 장면마저 감시의 눈길을 피할 수는 없다. 변기 바로 앞에는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도어 아이(door eye)는 밖을 볼 수 있는 장치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에선 밖에서 안을 들여다본다. 고문받는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이 시끄럽다고 조사실 벽엔 흡음판을 붙여놓았고, 자해를 막겠다며 형광등에까지 철망을 붙여놓았다. 책걸상도 볼트와 너트로 고정해놓았다.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모든 건축물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저 악랄하고 잔인한 공간이다.
고문을 일삼던 조사자들은 조사실을 나서자마자 그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 7층에는 무도장이란 이름의 체력단련장이 있고, 야외에는 함께 즐길 수 있는 테니스장이 있다. 작은 숲에선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다.
도심 한가운데 간판조차 없는 육중한 이중 철문과 철조망이 쳐진 높은 담으로 세상과 구별된 남영동 대공분실은 그야말로 딴 세상이었다. 하지만 담 안의 모든 건물과 시설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조사자의 공간과 피조사자의 공간은 엄격히 구분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유례없이 추악한 건물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 참담한 현장도 소중하다. 감추고 싶은 역사의 현장이지만, 다시는 그 같은 야만이 되풀이되어선 안된다는 성찰과 교훈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과 마찬가지 까닭이다.
그런데 남영동 대공분실이 위기를 맞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그 시작은 지난해 말, 남영동 대공분실이 경찰청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로 이관된 다음부터였다. 정확하게는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남영동에 짓겠다고 결정한 다음부터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꼽은 기념관 신축 예정지는 바로 테니스장이다. 유감스럽게도 이건 남영동 대공분실을 훼손하는 거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테니스장도 마찬가지다. 테니스 경기를 즐기는 쓸모는 없어졌지만, 그렇다고 상징적 공간으로서의 의미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은 아프지만, 소중한 우리의 유산이다. 그래서 원형을 보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영동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짓겠다는 것이 비싼 역세권 땅을 그냥 놀려둘 수 없다는 실용주의에 기댄 판단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민주화운동의 정신에 맞는 엄격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운동기념관을 남영동이 아닌 다른 곳에 세우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김누리 교수가 제안한 것처럼 대한항공이 호텔을 지으려고 했던 광화문 인근 송현동 부지 같은 곳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이 세워지면 좋겠다. 송현동 부지를 시민의 품으로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화답할 수 있어서 좋다.
부득이하게 남영동 대공분실이어야 한다면, 테니스장 지하 공간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지하 공간에 기념관을 짓고, 테니스장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야외 전시 등에 적절하게 사용하면 된다. 남영동 대공분실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기념관 건립이 가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부디 남영동 대공분실을 망가뜨리지 않아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물려줘야 한다. 우리 세대의 역할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