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놋그릇을 살짝 친 듯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 아이들은 이 소리에 귀를 쫑긋하고 학교를 찾아와 배우고 또 배웠으리라. 흰 지팡이가 땅의 감각을 알려주었다면 작은 벨소리는 공기를 통해 방향도 일러주고 안전하게 찻길도 건너게 해주었을 것이다. 빛을 보지 못하는 이들에게 소리는 빛과 같다. 9일 이른 아침에도 서울 종로구 신교동에 자리한 국립 서울맹학교 정문에서는 벨소리가 작게 울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리는 소리는 모르고 지나칠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주변인들을 배려한 일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만큼의 크기였다. 서울맹학교 관계자는 “마침 오늘 겨울방학식과 졸업식이 열린다”고 말했다. 참 다행이다.
서울맹학교에서 500m가량 떨어진 청와대 사랑채 부근에서는 80일 넘게 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집회의 자유’는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다. 문제는 확성기와 마이크를 동원한 극심한 소음이다. 이날도 사랑채 부근 인도에는 천막농성장이 늘어서 있었다. 이 길을 통한 통행은 힘들어 보였다.
청와대 인근 주민들은 지난해부터 더욱 극심해진 소음으로 고통을 호소해왔다. 특히 눈 대신 주변 소리로 세상과 교감하는 맹학교 아이들의 부모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자칫 모든 소리를 잡아먹는 거대한 시위 소리로 위험에 내몰릴까봐 노심초사해왔다. 하루 몇 차례씩 주변 상황을 소리로 파악하며 스스로 이동하는 독립 보행 교육도 힘들어졌다.
최근 이런 문제를 두고 서로 대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늦은 밤까지 확성기 소리에 시달려온 주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침묵 시위를 하는가 하면, 소음을 멈추게 해달라고 민원을 넣었다. 시위 참가자들에게 직접 호소하기도 했다. 새해에는 조금 나아질까 기대했지만 지난 4일 주말에도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종로경찰서가 새해 첫 주말부터 청와대 사랑채 인근 집회를 전면 금지하기로 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이 오전 9시~오후 10시 집회를 허용한 것이다. 보수단체들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퇴진 국민대회’를 열고 청와대 앞까지 행진했다. 같은 날 진보단체들은 대검찰청 인근에서 ‘조국 수호 촛불문화제’를 벌였다.
참다 못한 맹학교 학부모와 졸업생들은 이날 행진하는 시위 주최 측에 마이크와 음향을 꺼줄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맹학교 학부모와 졸업생들이 시위 참가자들의 행진을 막아섰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소리는 줄지 않았고 대신 욕설이 날아들었다고 하니 안타깝다.
갈수록 어디에서든 소음이 커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점심때 식사와 차를 들고 나면 지치는 기분마저 든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목구멍이 싸하고 귀가 멍멍할 때가 많다. 한 시간 반가량 얘기를 나눴던 상대방에겐 솔직히 미안하지만 그가 한 말 중에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이 많고, 되묻기가 귀찮아 알아들은 척 고개를 끄덕이거나 “아” “네” 몇 번의 감탄사로 얼버무리는 경우도 있다. 원래 식당이나 카페가 이렇게 시끄러운 곳이었던가, 아니면 내 청력이 갑자기 나빠진 걸까. 피크 타임 때 조용한 식당과 카페를 찾기 힘드니 덩달아 목청을 더 키우는 수밖에 없다. 다 같이 소리를 줄이면 작은 소리로도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텐데…. 다른 사람을 의식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더 키우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태도와 심리가 꼭 소리 크기로만 표출되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 1인 방송 등에서 거침없이 쏟아지는 말들을 보면 남의 소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외쳐댄다. 마치 시위 현장의 확성기 소리 같다. 소리(내용들)가 듣는 이들을 향한다기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닐까 의구심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내뱉는 말들의 사실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 소리와 말의 강도를 높일수록 결국 그 소리는 자기 귀에만 들릴 뿐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지는 못한다. 정말 절규하는 소리들은 오히려 낮고 작다. 침묵으로 말을 대신하거나 온몸으로 오체투지를 하고, 단식하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공탑에 올라가 있다.
나와 다른 이들과 세상의 소리를 진정 잘 들으려면 나의 소리를 줄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잘 들린다. 겨울이 지나 개학날 아이들이 돌아올 때면 맹학교 앞에서 울리는 작은 벨소리가 소음에 묻히지 않고 아이들에게 잘 가닿아 한 걸음 한 걸음 이끌어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