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새해 인사보다 “2020년이 되면 자동차가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하는 진부한 실망을 더 많이 듣는다. 나는 ‘자동차가 날아다닌다는 발상 자체가 완전 과거형 아닌가? 날아다니는데 굳이 무겁고 바퀴 달린 자동차 모양일 필요가 없잖아’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고 “그러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더 진부한 인사를 하고 만다.
비록 2020년의 풍경이 어릴 적에 그렸던 상상화나 과학 엑스포 전시관에서 봤던 모습은 아니지만, 나는 유튜브 ‘맞춤동영상’ 때문에 내가 충분히 미래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는 별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죽을 때까지 돈을 쓰지 않고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다고 저주받은 세대의 청년답게 아침 출근길에 부동산 대책을 브리핑하는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본다. 봐도 무슨 말인지 통 어렵기 때문에 금방 끄고 ‘오늘 뭐 먹지’를 검색해서 점심메뉴를 미리 골라본다. 수많은 맵고 짠 외식들을 보다가 갑자기 건강이 염려되어 건강식 위주로 검색어를 바꾼다. 장수를 위해 샐러드를 먹으라는 사람과 샐러드는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잘못된 식습관이라고 말하는 사람, 샐러드로 연간 억대의 수입을 올린다는 청년 사업가, 브로콜리를 먹는 고양이 영상이 같이 나온다. 당연히 고양이의 브로콜리 먹방을 선택하고 흐뭇하게 본 뒤에, 이어지는 연관 동영상 중 “안돼요. 끝나버린 노래를 다시 부를 순 없어요”라는 멋진 가사가 있는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라는 명곡을 재생해본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내 유튜브 메인 채널에는 ‘억 소리 나는 한강뷰 아파트’ ‘일주일 동안 샐러드만 먹기’ ‘고양이의 냉동잉어 먹방’이 같이 나오게 되고 나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하며 잠시 혼란에 빠졌다가 한동안 유튜브를 켜지 않는다.
이런 고민을 친구한테 얘기하니 친구는 가만히 살펴보면 그게 전부 다 나의 관심사가 아니겠냐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싫은 거다. 사람들 대부분 하루 동안 수십 가지의 생각을 떠올리고 망각할 텐데 유튜브 한번 봤다는 이유로 나의 허튼 뇌 활동 기록이 한꺼번에 전시되다니. 이것이야말로 SF영화에 나오던 미래다.
‘인간, 네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수치심을 느껴봐’ 하는 로봇들의 저항!
나는 인공지능에게 지배되지 않기 위해 나름의 대책을 세웠다. 바로 ‘유튜브 영상에 댓글 남기기’다. 비웃지 마시라. 글 한 편을 대충 훑어도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면 그것은 내 것이 된다고 했다. 유튜브 댓글창을 보니 이미 굉장히 많은 감상들이 남겨져 있었다. 고양이가 브로콜리를 먹는 영상에는 “고양이가 브로콜리를 먹는 소리가 아주 좋습니다. 하지만 브로콜리가 아니라 콜리플라워인 것 같습니다”, 집값 떨어지는 징조들을 소개하는 영상에는 “집 없는 사람들이 담합해서 집값 떨어질 때까지 안 사면 좋겠다”, 또 무언가를 열심히 폭로 중인 가로세로연구소의 영상에는 “변희재님 안경 벗고 렌즈 끼시면 멋질 것 같습니다”까지. ‘굳이 내가 댓글을 단다고 해서 로봇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또다시 한동안 유튜브를 켜지 않게 된다.
설날쯤이면 새해 인사를 슬슬 마무리해도 좋을 것이다.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유튜브를 보고 있는지 물어보려고 한다. 상대가 봤을 수십개, 수백개의 영상 중에서 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채널은 무엇이고 그게 어떤 재미인지 묻고 싶다. 그러고는 마치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 방향을 유도하듯이 그렇다면 유튜브에서 절대 보고 싶지 않은 채널은 무엇인가요? 하고 물어본 뒤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다가 유튜브를 끄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2020년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새해 대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