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야 한다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재작년부터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에 관한 책을 두 달에 한 권씩 2년간 펴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언제나 원고 마감이 코앞에 있는지라 시간을 아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일정표가 깨끗해졌다. 아무것도 채워 넣을 수 없으니 텅 빈 일정표가 꽉 찬 일정표인 셈이다.

[고병권의 묵묵]함께 살아야 한다

집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낸다. 가족들과 밥을 먹고 휴식하는 시간을 빼고는 방에서 혼자 글을 쓰거나 자료를 정리한다. 답답하면 산책을 하고 잠시 동네 카페에도 들르지만, 대체로 혼자 걷고 혼자 커피를 마신다.

처음에는 이런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워낙에 사람들과 어울려 수다 떠는 걸 좋아했고 산책도 우르르 몰려다니곤 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턴가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아졌다. 고요함에 귀를 기울이면 음악을 듣는 것 이상으로 좋았고, 글을 쓰고 산책할 때는 혼자임에도 세상에 온전히 감싸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 사태와 더불어 삶이 달라졌다. 그동안 자가격리된 사람처럼 지냈던 터라 생활에서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건 내가 살던 삶이 아니었다. 똑같은 방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자유를 잃은 사람처럼 답답했고, 고요함은 똑같은데 세상에 감싸여 있다기보다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느낌을 받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왜 모든 것이 달라졌는지.

그러다가 옛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손님 없는 사무실에 멍하게 있다가 친구들 생각이 나서 전화를 돌리는 중이라고 했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오히려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연신 반갑다는 말만을 주고받고 겨우 가족의 안부를 묻고는 통화를 끝냈다. 그런데 이 짧은 통화가 명의가 처방한 약처럼 내 증상을 호전시켰다.

그러고는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였을 때도 혼자가 아니었다는 걸. 다만 의식에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내 더듬이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느끼고 있었다. 방에서 혼자 글을 쓴다고 했지만 학교를 다녀온 아이가 ‘아빠’ 하고 문을 여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서 산책할 때도 사람들과 표정을 나누었으며, 이따금씩 들르는 카페의 주인은 언제부턴가 주문하기 전부터 내가 마실 커피를 알고 있었다.

감염을 막기 위해 서로에게 멀어지라는 정부의 지침이 내려진 이후 나는 혼자 지내는 삶과 격리된 삶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 산책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었고 그나마도 표정 없는 KF80, KF94들뿐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멀리서부터 미묘하게 간격을 유지한 채 걸어왔다. 카페에는 어느 날엔가 중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문구가 붙었고, 다음에는 손님들이 보이지 않았고, 그다음에는 2주간 문을 닫는다는 문구가 붙었다. 답답하고 우울한 기분이 든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혼자 지낼 수는 있지만 격리된 채 살기는 어려운 것이다.

20년 격리상태로 있던 장애인
코로나19의 첫 희생자가 됐다
바이러스로부터 격리된 게 아닌
바이러스로서 격리된 탓이다

청도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죽은 첫 번째 환자는 격리 지침이 내려지기 훨씬 전부터 격리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사방이 막혀 있고 창문마저 철망으로 덮여 있는 폐쇄병동. 그에게는 연고자도 없었다. 모든 끈이 끊어진 채 20년을 갇혀 지내고는 죽은 뒤에야 42㎏의 삐쩍 마른 몸으로 그곳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정신장애인 창작예술단인 ‘안티카’의 한 단원은 그의 혼을 달래며 쓴 글에 이렇게 적었다. “당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어쩌면 그 안에서의 20년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서 이미 죽은 사람이 이제야 죽어 거기서 나왔다는 뜻이다.

무려 20년 전부터 철저한 격리 상태에 있던 장애인들이 왜 바이러스의 첫 번째 희생자들이 되었을까. 그것은 이들이 바이러스로부터 격리되었던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로서 격리되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못 쓰게 된 물건처럼 눈에 띄지 않는 어딘가에 치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치된 사람들이었으니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이상할 게 없다. 몇 년 전 시설 조사를 나갔을 때 나는 세상과의 끈이 끊어진 채 방과 거실에 잔뜩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우리를 맞이한 생활교사들은 방 구석구석을 윤이 나도록 쓸고 닦았다. 그러나 거기 사람들의 삶에 내려앉은 곰팡이는 그들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함께 사는 곳에서는 잠시 떨어져 지낼 수 있고 얼마든지 혼자 사는 것도 가능하다. 언제든 연락할 사람, 연락해오는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잠시 연락을 끊고 지낼 수도 있다. 하지만 격리된 채 고립된 사람들은 살 수가 없다. 제아무리 강한 사람도, 제아무리 큰 도시도 이것을 버틸 수는 없다.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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