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동숲’에서도 열심히 일하나요

김희연 소통에디터

닌텐도 스위치용 ‘모여봐요 동물의 숲(모동숲)’ 에디션이 인기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집콕 인구’가 많은 데다 ‘힐링게임’이라고 알려지면서 젊은층 사이에서 구매 열풍이 일고 있다. 요즘은 품귀현상으로 구입 자체가 쉽지 않아 웃돈을 주고 사는 형편이다.

김희연 소통에디터

김희연 소통에디터

모동숲 세계에는 지극히 평화롭고 아름다운 섬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유유자적하며 한가로이 살 수 있다. 나무를 키워 열매를 얻고 물고기를 잡으며 땅에서는 광물을 캐낼 수 있다. 내집 마련의 꿈도 100% 가능하다. 처음엔 물론 대출을 받아야 한다. 자연에서 수확한 것을 팔아 돈을 마련해 갚고, 남는 돈으로 세간살이도 장만한다. 살다가 더 큰 집을 짓고 싶거나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또 대출을 받으면 된다.

주위에는 마음씨 착하고 나와 얘기하길 좋아하는 동물 이웃들이 있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변가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하며 아름다운 섬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힐링게임으로 불린다.

그런데 막상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의 얘기는 다르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고 푸념한다. ‘노오력’에 배신하지 않는 가상 공간 덕분에 집을 불려나가는 재미가 크지만 큰돈을 대출받는 바람에 쉴 새 없이 나무를 심고 물고기 잡고 땅을 파느라 재미와 힐링은 뒷전이란다. 모동숲을 즐기는 한 20대 청년은 “현실에서 벗어나 대리만족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게임)인데도 왠지 쫓기듯 집 늘리고 돈 버느라 바쁘다”면서 “한국인들의 게임 진행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너무 빨라 닌텐도 측에서도 놀라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여유롭게 즐기라고 나온 게임에서도 왜 정신없이 쫓기는 것일까.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면서 강력한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생활방역으로 전환했다. 여전히 지켜야 할 제1수칙은 ‘아프면 집에 머물며 3~4일간 쉬기’다. 잠재된 전염병의 위험성 때문에 ‘아프면 쉬기’가 강조되고 있지만 따지고 보면 아플 때 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그동안 우리는 아파도 참으면서 일하고 또 일하고, 학교에 갔다는 얘기다.

학창 시절 ‘개근상’은 ‘우등상’에 버금갔다. 특히 초등학교 개근상은 6년간 단 하루도 결석을 하지 않아야 받을 수 있는 상이어서 지금 생각해도 ‘넘사벽’이다. 초·중·고 때 개근상을 모두 받은 남편은 기회가 될 때마다 자신의 성실함, 강인한 정신력을 개근상 수상으로 내세우곤 했다. 문제는 개인의 빛나는 수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같은 잣대로 강요한다는 데 있다.

그 탓에 아이들이 아플 때 자주 갈등을 빚었다. 남편의 주장은 아파도 일단은 등교해 양호실에 누워 있거나 참기 힘들 때 조퇴하면 된다는 거였다. 쓰러져도 학교에서 쓰러진다는 각오로 정신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두통이나 생리통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생각이었다. 아픈데 선생님 말씀이 제대로 들어올 리 없고 반듯이 앉아 있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이후 아이가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1~2교시에 가지 않거나 학원을 빼먹을 때면 ‘나약하게 잘못 키웠나’ 후회하기도 했다.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는 오랜 시대정신이 무언의 조바심으로 여전히 작동한 것이다.

직장에서도 비슷하다. 아파서 결근할 때면 눈치가 보이고, 특히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거나 집에서 돌봐야 할 때도 말을 꺼내기 쉽지가 않다. 여성 직장인의 경우 더 공감하지 않을까. ‘애가 아프다’는 이유 대신 ‘집에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차라리 낫게 생각된다. 이 때문에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공유하게 된 ‘가족돌봄휴가’의 경험은 불행 중 다행스러운 일이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어느 직장에서든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긴 방학을 보낸 아이들의 등교가 곧 시작된다. 재택근무에서 돌아온 직장인들로 출퇴근 지하철이 다시 만원이다. 멈춘 시계로 누가 어디서 더 불편하고 힘들며 고통받는지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가만히 머물러 보는 것이 뭔지도 느끼게 됐다.

코로나19 이후의 시대상이 화두다. 개근상에 보내는 박수 뒤에 역차별은 없었는지, 아파도 쉴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은 어떻게 작동해야 할지, 코로나19 이후 요구되는 공동체의 시대정신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모동숲에서도 아플 땐 쉬고 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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