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더 이상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선 안 된다읽음

김병익 | 서울성북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얼마 전 동거남의 9세 아들을 여행용 가방 속에 감금해 숨지게 한 사건, 친모와 계부가 9세 여자아이의 목에 쇠사슬을 매어두는 등 상습적 학대를 해온 사건이 발생했다. 관련 언론 보도가 넘쳐났고, 온 국민의 관심이 아동학대 문제에 집중되는 듯했다. 이에 정부 부처에선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을 수립, 발표했다. 하지만 이 관심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다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익숙한 상황이다. 2013년 칠곡 계모에 의한 학대로 아동이 사망한 사건, 2016년 11세 여아가 학대를 피해 집에서 탈출한 사건, 2016년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 등 아동학대로 인한 중대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국민적 관심이 일었고, 정부는 각종 대책을 마련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김병익 서울성북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김병익 서울성북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

지난 7월29일 정부는 아동·청소년 학대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①기관 간 협력 강화 및 아동학대 조기 발굴 ②아동학대 조사업무의 공공화 및 인프라 확대 ③징계권 조항 개정 및 즉각 분리제도 도입 ④다양한 인식 개선 활동과 사후관리 강화를 통한 재학대 예방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실현된다면 높은 수준의 아동학대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지금의 아동학대 방지대책의 성패는 정부의 실천 의지에 달려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장의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정책의 실천 의지를 판가름하는 것은 예산의 투입이다. 조기 발굴 체계 확대와 아동학대 대응 인프라 확대, 다양한 인식 개선 활동 및 사후관리 강화는 예산 확대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동안의 종합대책들은 법의 제·개정과 시스템 정비를 통해 아동학대를 방지하고자 노력했으며, 예산의 부족을 아동학대 대응 종사자의 노력으로 메우고자 했다. 하지만 이내 한계가 드러났다. 혹자는 아동학대도 범죄여서 발생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투입해도 아깝지 않을 것이 아이들을 보호하는 일이다.

정부는 획기적인 예산 투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해야 한다. 첫째, 현재 범죄피해자기금과 복권기금에 묶여 있는 아동학대 관련 예산을 일반회계로 편입하고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아동복지 예산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9%인 반면, 우리나라는 11.1%에 그친다. 실질적인 아동학대 대응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해선 OECD 국가의 평균 수준의 아동 보호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둘째,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지금의 2배로 늘려 촘촘한 대응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전국에서 68곳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운영 중이다. 전국 229개의 자치단체를 기준으로 아동보호전문기관 1곳당 평균 3~4개의 시·군·구를 관할하며 아동학대에 대응하고 있어 즉각적 대응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셋째, 현장에서 학대 피해 아동 사례 관리를 담당하는 종사자들의 업무환경을 개선해 더욱 밀착된 관리가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상담원 1명이 평균 64건의 사례를 관리하고 있어 촘촘한 관리가 어렵다. 휴먼서비스로 이뤄지는 만큼 질 높은 사례 관리를 위해선 상담원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이러한 내용이 종합대책과 함께 시행될 때 아동학대 방지대책이 현장과 학대 피해 아동 가정에서 실질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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