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소멸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나 각자의 삶을 살다가 결국 소멸하는 존재다. 광막한 우주와 비교하면 정말 티끌처럼 작은 크기의 공간 안에서, 우주의 나이와 비교하면 정말 순간처럼 짧은 시간을 잠깐 머물다, 우리는 세상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방금 이야기한 존재의 소멸은 온통 의문투성이다. 죽음의 순간에 소멸하는 것은 과연 무얼까? 아니, 죽음 이전에 살아있던,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얼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내 몸을 이루는 세포는 끊임없이 새로운 세포로 교체된다. 위장의 점막 세포는 며칠이면 다른 세포로 바뀌고, 내 몸의 뼈를 이루는 세포도 10년 정도면 교체된다. 10년이면 변하는 것은 강산만이 아니다. 내 몸도 변하니, 나는 10년 전의 내가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소멸을 내 몸을 이루는 개별 세포의 죽음으로 환원해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가 죽기 전에도 수많은 세포들이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죽음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전 내 몸을 이루던 세포 중 지금도 내 몸에 남아있는 것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는 10년 전의 나다. 나는 세포들의 모임이지만, 세포들이 단순히 모여 있다고 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 몸 세포뿐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수많은 원자로 이루어져있다. 수소와 헬륨 같은 가벼운 원자들은 빅뱅 이후 우주가 아주 어렸을 때 만들어져 현재 우주 곳곳에 널리 존재한다. 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 반응은 원자번호가 작은 쪽의 원자들로부터 원자번호가 큰 쪽의 무거운 원소들을 만들어간다. 핵융합으로 모든 원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원자번호 26번인 철의 원자핵보다 더 무거운 원자핵은 핵융합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 더 무거운 원자들은 핵융합이 아니라 초신성 폭발 때 만들어진다. 우리는 초신성의 잔해에서 태어난, 우주에서 온 별의 먼지다. 원자들의 모임인 분자는 내 몸 안에서 종류와 형태를 바꾸기도 하지만, 분자를 구성하는 원자들은 항상 그대로다. 내가 죽어도 원자는 죽지 않는다. 아니, 원자는 죽을 수 없는 존재다. 죽음 이후 내 몸을 구성하던 물질들이 낱낱이 분해되어 흩어지고 나면, 이들 원자는 다른 생명체의 몸을 구성할 수도, 우리가 숨 쉬는 대기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내 몸은 모든 생명체의 공유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각자의 삶은 순간이지만, 나의 몸을 이루는 원자의 삶은 영생에 가깝다. 죽음을 맞아 내가 소멸해도, 소멸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결국 별의 먼지라는 것, 내가 소멸해도 나를 구성하는 원자들은 자리만 옮길 뿐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와 세포가 끊임없이 교체되고 있어서, ‘나’라는 생생한 의식의 느낌을 물질적 구성요소로 환원해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물질적 기반 없이 의식이라는 현상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빠름’은 분해한 차의 부품에서 볼 수 없지만, 자동차의 부품들이 없다면 자동차의 ‘빠름’도 없듯이. ‘나’라는 의식을 내 몸을 이루는 물질에서 찾을 수 없지만, 나의 몸을 이루는 물질이 없다면 ‘나’라는 의식도 없다. 내 몸을 이루는 물질이 죽음으로 소멸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음으로 다르게 바뀐 물질들의 연결 패턴은 ‘나’라는 의식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죽음의 순간에 소멸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연결된 물질이 창발한 ‘나’라는 의식이다. 나를 포함한 여러 과학자들은, ‘나’라는 의식은 결국 구성요소들의 특별한 형태의 짜임으로 만들어지는 일종의 창발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각자의 유한성과 우리 모두가 결국 이곳에서 맞닥뜨릴 소멸의 필연성은 나를 허무로 이끌지 않는다. 거꾸로다. 우리 각자는 소멸하기에 더욱 소중한 존재다. 짧은 삶을 살고 덧없이 사라지는 모든 유한한 존재는 눈물겹도록 사랑스럽다. 영생을 믿지 않는 내게, 지금 나와 당신의 삶은 단 한 번 주어진, 두 번 다시 반복할 수 없는 소중한 삶이다. 이번 생을 망치면 다음 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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