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자석

빨갛고 파랗게 절반씩 칠해진 막대자석을 갖고 놀던 어린 시절 기억이 난다. 막대자석 둘을 가까이하면 같은 색깔은 서로 밀치고, 다른 색깔은 서로 잡아당겼다. 자석은 왜 자석이 되는 걸까? 쇠못을 전선으로 여러 번 감고 건전지에 연결하면 마치 막대자석처럼 종이 클립을 끌어당기는 초등학교 과학실험도 생각난다. 전류가 흐르는 전자석은 왜 자석이 되는 걸까?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막대자석 안에는 수많은 원자가 있다. 양자역학적인 원자의 스핀은 엄청나게 작은 막대자석처럼 주변에 자기장을 만들어낸다. 또 스핀들은 하나같이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상태를 좋아한다. 이때 에너지가 가장 낮기 때문이다. 한 방향의 많은 스핀이 만들어낸 자기장이 더해지면, 막대자석 전체가 커다란 자성을 가진 자석이 된다. 막대자석이 자석인 이유는 원자의 양자역학적 특성인 스핀 때문이다. 더 낮은 에너지 상태에 있기를 선호해 한 방향으로 정렬한 여러 원자의 스핀들이 막대자석을 자석으로 만든다.

전자석은 다르다. 엄지를 뺀 오른손 네 손가락을 동그랗게 오므려 원형 도선의 전류 방향으로 하면, 엄지손가락은 원의 중심 부분의 자기장 방향을 가리킨다. 원기둥을 도선으로 여러 번 감으면 마치 원형 도선 여럿이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셈이어서, 자기장이 더해져 중심축을 따라 큰 자기장이 생긴다. 전자석이 자석인 이유는 전류가 만들어내는 자기장 때문이다.

초등학교 실험처럼 쇠못 둘레를 도선으로 감으면 전자석의 자성을 더 크게 할 수 있다. 외부의 자기장이 없는 경우, 쇠못과 같이 철로 된 물체 안은 여러 자기 구역(magnetic domain)으로 나뉜다. 각 구역 내부의 스핀들은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만, 그 방향은 구역마다 제각각 달라 전체 쇠못은 자성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전류를 흘려 자기장이 걸리면 여러 자기 구역의 스핀들이 자기장 방향으로 정렬하려는 경향이 생긴다. 이때 전류가 만들어낸 자기장보다, 쇠못 안 여러 자기 구역의 스핀들이 하나같이 한 방향을 가리켜 만들어내는 자기장이 더 클 수 있다.

외부 자기장이 여러 자기 구역을 통일해 스핀들의 방향을 하나로 정렬하는 것을 보면 세상 속 우리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나라 전체가 위기에 빠지면 한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국난극복을 취미로 여기는 멋진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외부의 위기가 외부 자기장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전류가 만들어낸 자기장보다 여러 자기 구역의 스핀들이 하나로 정렬해 만들어낸 자기장이 더 클 수 있는 것처럼, 작은 계기가 촉발한 변화는 일파만파 확산되고 증폭되어 우리 사회를 크게 바꾸기도 했다.

요즘은 언론 매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같은 외부 자기장이 눈에 띈다. 동쪽 방향 스핀은 동쪽 방향 자기장 안에 있을 때 에너지가 낮아 더 편한 것처럼, 우리 모두는 자신과 같은 성향의 매체와 콘텐츠에 더 자주 접촉한다. 동쪽 스핀은 동쪽 자기장을 찾아 나서고, 안주한 장소의 동쪽 자기장은 스핀이 동쪽을 향하려는 성향을 더 키운다. 또 동쪽을 향한 스핀은 자기 주변에도 동쪽을 향하는 스핀이 많을 때 에너지가 더 낮다. 마치, 자기 주변에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가 더 편한 마음이 되듯이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자기장이 동쪽인 장소에 모여 끼리끼리 함께 행복하게 모여 사는 동쪽 스핀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 헤어진 서쪽 스핀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양극화된 세상에서, 각자는 넓은 세상을 잊고 자기 마을에 안주하지만, 단절되고 고립된 세상은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동쪽 스핀 마을 사람들에게는 서쪽 자기장이, 서쪽 스핀 마을 사람들에게는 동쪽 자기장이 필요하다.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려면 불편해도 건강한 자극이다. 두 마을의 빈번하고 활발한 접촉도 둘로 나뉜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어느 날 불현듯 주변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자신과 같은 동쪽 스핀만 보이는 사람들은 잊지 마시길. 강 건너 서쪽 스핀 마을 사람들은 당신의 동쪽 스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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