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선택 급식’ 도입읽음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방역수칙 1단계 조정으로 일상이 어느 정도 굴러가는 느낌이다. 가장 큰 변화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점심을 먹는 것이다. 학교급식법은 1981년에 만들어졌지만 실제로 시행된 것은 1998년이다. 위탁급식에서 직영급식으로, 그리고 친환경무상급식의 단계로 지난 20여년 동안 꿋꿋하게 걸어왔다. 이제 학교에서는 급식세대 교사가 급식세대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급식은 의무교육이 아닌 고등학교까지도 순차적으로 무상급식을 도입하면서 명실상부한 보편적 의무급식으로의 전환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 친환경 농산물을 식재료로 쓰면서 질적 전환도 이루어내고 있다. 물론 중간에 경남처럼 갑자기 유상급식으로 후진을 하는 등의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러나 차별 없이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점심 한 끼를 먹여야 한다는 것에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고 지지한 결과가 지금의 학교급식이다. 그리고 채식급식 선택의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떼고 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2011년 전북에서 도내 20개교 학교를 채식급식 시범학교로 정해 주 1회에서 월 2회 ‘채식의날’을 운영해왔다. 채식을 접한 학생들은 그 이후 채식 섭취에 더 노력한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이후 시범학교를 늘려왔다. 과도한 육식 문화에 대한 우려가 그 어느 때보다 큰 지금,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환경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항간의 오해와는 달리 어른들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채식을 선택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생겨나고 학교급식에서 채식선택권 보장을 교육의 현안으로 만들어냈다. 비록 각하되긴 했지만 지난 4월 학교급식에서 채식선택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소원을 내기도 했다. 이에 서울, 인천, 경남, 울산 교육청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학교에서 채식급식 선택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울산교육청은 10월 들어 ‘고기 없는 월요일’을 운영하고 채식을 원하는 학생에게 채식급식 식단을 상시 제공하기로 했다. 이에 국회 기후변화포럼이 울산의 채식급식 현장을 찾기도 했다.

그동안 신체적 이유나 신념의 문제로 채식을 해온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급식시간에 매번 선택의 딜레마에 빠져야 했다. 밥과 김치, 나물, 두부 정도를 선택해서 먹긴 하지만 완전 채식 단계를 실천하는 ‘비건’일 경우, 젓갈이 들어간 김치를 선택할 수도, 고기 육수를 낸 국을 선택할 수도 없었다. 도시락을 싸와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지만 도시락을 가져올 여건이 안 되면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유난을 떤다는 시선의 압박이 컸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이제는 채식급식을 급식실에서 당당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공공급식의 메뉴 다양성 확대와 선택의 권리 보장이라는 측면에서도 급식 대상자 모두에게 바람직하다. 이런 선택 보장의 요구는 군대에도 확대되어 채식을 원하는 사병들에게 채식 메뉴를 제공하겠다는 국방부의 결정까지 나왔다.

다만 학교급식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채소 반찬이 많은 날에는 어김없이 잔반이 쏟아져 나온다. 학생뿐만 아니라 20, 30대의 교사들 입맛도 학생들과 다르지 않아 고기 선호도가 높아서 메뉴 구성에 애를 먹는다. 음식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나물반찬이 잔반통으로 직행하는 장면을 보는 일도 동물이 죽어 나가는 장면을 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럽다. 학교에서는 채식 메뉴를 따로 구성하는 일에다 근래 식품 알레르기 대체식단을 따로 구성하는 시범사업까지 도입하는 추세지만 현장에 인력 충원이나 관련 지원은 더디다.

학교급식은 영양 균형과 위생, 저염·저당의 조리법 등 여러 원칙을 적용하는 까다로운 식사다. 채식 메뉴를 구성하되 맛있게 만들려면 다양한 채식 메뉴가 개발되어야 하고 현장을 훈련시키며 준비해야 한다. 채식 선택 급식, 그 뜻이 아무리 옳더라도 고기 대신 사람을 갈아 넣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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