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맛있었던 찹쌀떡 한 개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이맘때가 되면 몇 년 전 대리운전을 하다가 손님으로 만났던 50대 남성이 문득 떠오르곤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졌던 그날에도 나는 일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오후 7시쯤 이른 시간에 서울 관악구에서 경기 안양시로 가는 콜이 나왔다. 손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하고, 이제 5분 후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었다. 그때 뒷좌석에 앉아 있던 그가 “저어, 기사님 이것 좀 드세요”하고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찹쌀떡이었다. 그는 “제 딸이 오늘 수능을 봤어요. 이거 안양에서 제일 유명한 찹쌀떡인데 맛있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그 떡을 받아들었다. 일을 하다 보면 종종 먹을 것을 건네주는 분들이 있다. 어차피 잘 먹으면서 하는 일은 아니니까 고맙고 유용하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마침 그의 딸에게 전화가 왔다. 그의 한껏 들뜬 목소리만 듣고도 오늘 저 찹쌀떡을 가장 먼저 먹은 사람이겠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고생했어, 잘했어, 아빠가 용돈 보내줄게 친구들하고 맛있는 거 먹어, 그래 집에서 봐, 그래그래. 그는 자신이 오래 응원하고 지켜봐 온 한 사람이 다시 한번 하나의 단계를 넘은 것을 막 확인한 참이었다. 아이가 처음 일어서서 걷던 순간, 처음 가방을 매던 순간, 처음 시험을 치르고 돌아오던 순간, 그 무수한 순간들, 그리고 지금. 운전석에 앉은 나는 그를 축하해 줄 유일한 하객이었다. 그를 바라보는 나도 그만큼이나 마음이 고양되어갔다.

전화를 끊은 그는 나에게 아이가 있는지를 물었다. 5세, 2세 아이가 있다고 답하자 그는 그들이 중학생이 되기 이전까지 많이 놀아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 딸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싶었지만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라고만 했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전화를 받을 때와는 다르게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를 축하해야 할지, 위로해야 할지 잘 알 수가 없었다. 주차를 마치고 그에게 “따님이 잘되면 좋겠어요”라고 말을 건넸다.

내가 인생의 여러 단계를 지나오는 동안 그 과정을 응원하고 지켜본 사람들이 있었다. 우선은 당연히 부모님일 텐데, 나는 결혼을 준비하던 때가 되어서야 내 뒤에 항상 그들이 있었음을 비로소 떠올렸던 것 같다. 누구에게 들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결혼식에서 축하받아야 할 사람은 신부와 신랑만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오히려 결혼이라는 단계까지 한 존재를 잘 키워낸 그 부모를 축하하고 위로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인생의 어느 순간에도 나 홀로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래저래 군말 없이 하자는 대로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날 번화가로 걸어 나오면서 찹쌀떡을 먹었다. 가장 맛있는 떡집이라더니, 이렇게 맛있는 찹쌀떡을 먹은 사람은 시험을 잘 봤을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마음이 될 만큼 맛있었다. 나의 아이가 수능을 볼 나이까지 잘 큰다면, 내가 다행히 그를 그때까지 잘 돌본다면, 나도 그에게 꼭 맛있는 찹쌀떡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그에게 전화해서 아빠는 괜찮으니까 친구들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말해줄 것 같다. 그러고는 그간 함께 그를 응원해 온 사람과 서로의 고생을 나누며 맛있는 밥을 먹어야겠다.

지금 우리 모두는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 중이다. 수능을 본 학생들도 아마 생각했던 이런저런 작은 일탈들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어제 함께 저녁을 먹던 친구는 자신의 조카가 시험을 보았는데 언니가 맛있는 음식을 해 두고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건 너무 좋은 일이라고,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할 사람들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고 친구와 함께 웃었다.

어제는 모두가 조금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감각할 소중한 시간 역시 부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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