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말고 ‘고아’ 말고

이슬아‘일간 이슬아’ 발행인 글쓰기 교사

그동안 부모가 있는 세계의 이야기만을 주로 써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는 엄마와 아빠가 당연한 전제처럼 있었다. 부모 때문에 행복하든 불행하든 말이다. 지금은 그 전제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부모라는 말을 쓰기 전에 주춤하며 말을 고친다. 다양한 성별의 보호자, 다양한 형태의 가족, 가족 바깥의 사람도 포함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다.

이슬아‘일간 이슬아’ 발행인 글쓰기 교사

이슬아‘일간 이슬아’ 발행인 글쓰기 교사

언어는 시대와 함께 살아 숨쉬며 끊임없이 움직인다. 장혜영 의원이 시작한 ‘#내가이제쓰지않는말들’은 이 시대에 통용된 차별과 배제의 언어를 인지하고 수정하는 프로젝트다. ‘부모’ 역시 이 프로젝트가 고민하는 단어다. 엄마만 있는 경우, 아빠만 있는 경우, 둘 다 없는 경우, 엄마가 여럿이거나 아빠가 여럿인 경우, 보호자의 성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고 싶지 않은 경우 등을 예외로 두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가족관계 문서는 ‘부/모’ 말고 ‘보호자1, 보호자2’를 적게끔 한다. 부모가 모두의 기본값은 아니라는 점을 존중하는 문서 형식이다. 현재의 상상력으로는 ‘부모’ 대신 ‘보호자’ 혹은 ‘어른’이라는 말을 일상어로 쓰는 것이 최선처럼 느껴진다. 미래에는 더 적절한 말을 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모’와 함께 다시 돌아보게 된 단어는 ‘고아’다. 한자를 살펴보니 ‘외로울 고(孤)’와 ‘아이 아(兒)’를 합친 단어다. 나에게 이것을 알려준 사람은 보호종료 당사자인 스물일곱 살의 신선씨다. 보호종료란 보호대상 아동에게 만 18세에 자립을 강요하는 아동보호 제도를 말한다. 아동양육시설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신선씨는 고아라는 말에 자주 놀라고 움츠러들며 자라왔다. 치열하게 자립한 뒤 현재는 보육원 출신 아이들을 위한 캠페이너로 활동한다. “부모가 없다고 해서 꼭 외로운 것은 아니고, 반대로 부모가 있다고 해서 꼭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닌데, 고아라는 말에는 편견 어린 동정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 중 한 문단을 언급하기도 했다.

“한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든 신체적 온전함과 존엄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척척 내는 어른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부모님 뭐 하시느냐’ 다짜고짜 묻지 않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고 이력서에 가족관계를 쓰지 않도록 하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이 세상에 ‘불쌍한 아이’는 없다. 부모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굴레를 씌우고 불쌍한 아이를 만들어내는 집요한 어른들이 있고, 정상가족이라는 틀로 자율적 존재를 가두거나 배제하는 닫힌 사회가 있을 뿐이다.”

보호대상 아동의 목소리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다. 신선씨와 친구들은 보육원 출신으로서 자립하며 겪었던 어려움을 후배들이 똑같이 겪지 않도록 유튜브, 팟캐스트, 온라인 카페 등을 운영하며 경험을 공유한다. 보호종료 아동을 위한 주거, 장학지원사업 등 유용하고 친절한 정보들이다. 또한 고유하고도 평범한 자기 삶의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게 바로 연대임을 안다. 연대란 고통을 겪은 어떤 이가 더 이상 누구도 그 고통을 겪지 않도록 움직이는 것이다. ‘부디 너는 나보다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 그러니 내가 알게 된 것들을 최대한 다 알려줄게’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할 수 있는 연대도 있다. 부모가 기본값인 질문을 건네지 않는 것, 고아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는 것, 고아에 대한 이미지를 고정하는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 또한 그중 하나일 것이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