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으로 뭘 바꿀 수 있을까

[이봉수의 참!]‘이낙연’으로 뭘 바꿀 수 있을까

고위공직자를 선임할 때 언론이 소홀히 하는 것이 성향 분석이다. ‘하마평’에 단골로 등장하는 내용은 ‘마당발’ ‘두주불사’ 등 생활 태도나 학연·지연 등 인맥에 관한 것들이다. 인사청문회 때는 도덕성 검증에 몰두한다. 정파 언론이 반대 정파 후보를 낙마시키는 데는 도덕성 검증이 제일 잘 먹히기 때문이다. 정작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공직자의 정치 성향과 정책 지향인데 언론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은 집권세력 관점에서는 ‘인사 참사’에 해당하는데, 원인은 지독한 검찰주의자인 그의 성향을 꿰뚫어보지 못한 데 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사면론을 치고 나오자 당원과 의원 상당수가 배신감을 토로했는데 나는 그게 의아하다. 그는 원래 보수성향 인물인데 압도적 표차의 대표로 뽑은 쪽도 그들이 아닌가? 그렇게 판단하도록 만든 배경에 제대로 성향 분석을 하지 않은 언론이 있다. 그는 총리 청문회에서 “전두환 찬양 기사를 썼다”는 지적을 받자 “연설을 인용한 것이었다”며 넘어갔다. 국회에서는 언론인다운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그의 기자 시절을 더 파보면 ‘전두환 대통령 방미의 성과’라는 해설기사와 ‘정상회담’이라는 기자칼럼 등이 많이 눈에 띈다. 수많은 기자가 해직되고 현역기자들도 대개 ‘찬양 기사’는 피하려고 소극적 저항을 하던 시절에 찬양 일변도 기사를 쓴 것이다. 그런 인식을 가졌던 이 대표가 두 전 대통령 사면을 주장한 것은 일관된 생각이다. 그는 박근혜 정권 때 박정희 탄생 100년을 앞두고 광화문에 동상을 세우려던 추진위원회에도 부위원장으로 참여했다.

더 중요한 것은 정책을 대하는 기득권적 태도였다. 그는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했고, 2차 재난지원금 논란 때는 그가 추천한 홍남기 부총리와 함께 보편복지 논의로 이어질 수 있는 전 국민 지원을 선별 지원으로 주저앉혔다. 총선 때 종부세 완화를 주장하는가 하면, 공시가격 9억원 이하 주택으로 재산세 감면 대상을 확대하자고 했다가 대통령에 의해 저지되기도 했다. 그는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등이 주도하는 보수성향 싱크탱크 여시재에 찾아가 “여시재가 대한민국 의제를 가장 절묘하게 집어내고 해결책도 잘 제시한다”며 “나도 여시재의 의제와 해법에 늘 관심을 가진다”고 말했다. 그의 정책 지향점은 보수에 가깝다.

그가 사면론을 펴자 크게 환영한 곳도 소속 정당보다 보수야당이었다. 신문도 경향·한겨레는 비판한 반면 조선·중앙·동아는 옹호했다. 보수언론은 국격과 통합을 위해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력자는 죄를 지어도 풀어주면 국격이 올라가는가? 이제 수구세력이 사면을 주장해도 반박할 근거가 없어졌다.

여야 모두 사면은 대통령 고유권한이라고 전제하는데 사면권이야말로 군주가 은전을 베풀던 구시대 유물이고 3권분립에 위배된다. 왕조시대에 억울한 백성을 풀어주는 제도였던 사면이 민주주의 시대에 정치인과 재벌 등 권력층과 기득권층을 풀어주는 제도로 악용되는 것은 역사의 퇴행이다. 우리 헌법은 79조에 대통령의 사면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11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천명했다. 헌법 조항이 상충하는 모순은 빨리 해소돼야 한다. 사면론이 일으킨 굉음은 안 그래도 부진한 검찰·사법·언론 분야 개혁 목소리를 묻어버렸다. 이슈가 이슈를 덮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기자 출신 대표가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다짐 대신 “최선을 다해 전진과 통합을 구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박병석 국회의장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통합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맞장구쳤다. 박 의장은 협치 타령을 하다가 공수처법 등 개혁입법이 늦어지는 바람에 법무부와 검찰이 맞부딪히는 결과를 빚는 데도 기여했다.

보수 언론 출신이 정치인으로 변신해 개혁의 발목을 잡는 현실은 언제까지 지속될까? ‘개혁’(改革)은 가죽을 바꾸는 어려운 일이다. 정치부 기자 출신은 정국을 정치공학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하다.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을 위해 필요한 것이 수구세력을 껴안는 정치공학인가? 개혁에 의한 진정한 통합을 바라는 국민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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