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면읽음

인아영 문학평론가

“어머니, 주승이 때리셨어요?” 얼마 전 발표된 안보윤의 단편소설 ‘밤은 내가 가질게’(‘자음과모음’ 2020년 겨울호)에서 어린이집의 주임 보육교사 ‘나무’는 네 살 주승이의 어깻죽지와 여러 신체 부위에서 새끼손가락만 한 파란 멍을 발견하고 양육자에게 묻는다. 이미 아동학대 전력이 있는 양육자의 폭력을 의심해도 이를 증명하기란 쉽지 않다. 양육자는 도리어 소리 지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런 거 없었거든요! 어린이집 다녀와서 생긴 거거든요!” 결국 ‘나무’는 주승의 알몸을 매일 검사해 학대 정황을 포착한다. 하지만 경찰 신고 과정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주승의 파란 멍을 어루만지면서 모순적인 말을 뱉는다. “좀 더 크고 뚜렷했다면 좋았을 텐데. 단면이 거칠거칠하거나 이쪽으로 조금만 더 길게 이어졌다면.”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양육자가 접근금지 처분을 받고 사건이 일단락되었다고 해서 ‘나무’의 곤욕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 소설에서 보육교사의 진짜 곤욕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진 이후부터 시작된다. 경력 3개월차 신임 교사는 방치도 학대라고 말하면서 ‘나무’의 죄책감을 건드린다. 양육자와의 갈등을 무릅쓰고 아동학대 혐의를 증명하는 역할을 했음에도 학대 피해 아동을 보육한 전력은 다른 학부모들의 항의에 빌미가 되기도 한다. 일련의 사건에 지친 ‘나무’는 신임 교사에게 냉소적으로 말한다. “유치원 선생은 교육직이지만 어린이집 선생은 보육 서비스직이야.” 보육교사가 자신의 직업적 책임 및 그에 수반되는 선의를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 소설은 날카롭게 짚어낸다.

태어난 지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동이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 경찰 신고 시스템이나 입양 제도 등을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것 중 하나는,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손쉬운 비난의 대상이 되면서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비가시화되곤 하는 보육교사들의 자리다. 다행히 이번 사건에서 보육교사가 학대 혐의를 경찰서에 신고하고 피해 아동을 잘 보살펴주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감사와 위로의 인사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보육교사에게 부당한 책임을 묻는 상황으로 크게 번지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겪는 정신적인 압박과 부담이 일시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보육교사는 자신이 담당하는 아동의 학대를 신고하기까지 크고 작은 위협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단지 신고 의무자의 신고율을 높이기 위해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동학대가 체벌에 관대한 정서, 공적인 제도의 개입, 돌봄노동의 환경 및 이에 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이라는 연쇄적인 고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개선되어야 한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아동 성폭력의 전말을 밝혀내려는 변호사가 말했듯,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한 사회의 무르고 취약한 부분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비극의 구멍이 된다. 그 구멍은 우리 사회의 얼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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