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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나는 ‘프로아나’ 여성들이 무서워하는
‘60㎏을 넘은 여자’다
두툼한 뱃살과 굵은 다리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든다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고,
살이 쪄도 그럭저럭
괜찮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알려주고 싶다



태어났을 때부터 체격이 크고 먹성이 좋았다.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밥 안 먹어!”라고 성질부려놓고 마지못해 끌려온 척 밥상에 앉았다. 최후의 자존심으로 맨밥만 퍽퍽 퍼먹는 퍼포먼스는 빼놓지 않았지만…. 내가 관우였다면, 술이 아니라 국이 식을까봐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헐레벌떡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먹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라는 질문에는 자신만만하게 “살기 위해 먹죠!”라고 외쳤다. 중학생 때였다. 그래 놓고 살기 위해서라면 안 먹어도 되는 붕어빵을 굳이 입천장 데어가며 깨물었다.

아 뜨뜨! 인정해야 했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 게 맞았다. 덜컥, 본능적인 수치심이 들었다. 먹기 위해 사는 삶은 열등하고, 살기 위해 먹는 삶 즉 음식 앞에서 무심하거나 초연한 태도는 고상하게 느껴졌다. 여성의 몸을 조각조각 내서 평가하고 외모를 절대적이고 유일한 가치 평가 기준으로 두는 사회는 매일매일 공중에서 씨앗을 살포한다. 자신의 식욕을 수치스러워하고, 마른 몸을 이상화하는 메시지 말이다.

이미지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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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은 여러 내면과 환경 속에서 다르게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여성을 조른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행하는 ‘프로아나’는 이 씨앗이 소셜미디어와 만나 형성한 기괴한 군락지다. 프로아나는 찬성한다는 뜻을 가진 ‘프로(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애너럭시아(anorexia)’의 합성어다. 거식증 환자처럼 음식을 극단적으로 거부하거나 절식하면서 다이어트하는 행위 또는 사람을 일컫는다.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을 하며 설사약이나 이뇨제도 먹는다. 이들은 ‘프로아나 계’(프로아나 계정)를 만들어 ‘꿀팁’을 공유하고, 서로 질책하거나 격려한다. 목표는 ‘개말라’(매우 마른 사람),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앙상한 사람)다.

‘Love yourself’를 외치고, 적당한 운동과 건강한 식단으로 가꾼 탄탄한 몸이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세상 한쪽에, 극단적인 마름을 추구하며 병들어가는 프로아나가 있다. 최근 5년간 국내 거식증 환자 중 10대 여성이 14.4%, 20대 여성이 11.4%다. 같은 기간 남성 환자 대비 여성 환자가 4배 이상 많다. 청소년기에는 외모에 관심이 늘어나고, 타인의 시선을 민감하게 의식하며, 외모 억압은 여성에게 더 강하게 작동한다.

여기까지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언제나 그랬다. 라떼도? 라떼도! ‘요즘 것’들이 유난히 멍청해서, 건강을 망치면서까지 예뻐지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프로아나 현상에는 몇 가지 특수성이 있다. 외모 억압과 다이어트라는 역사성에, 지금껏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도구와 문화가 새로 첨가되었다.

<트릭 미러>(생각의힘, 2021)를 쓴 지아 톨렌티노는 인터넷이 “규모의 왜곡”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유저를 중심으로 세계를 구축해서, 오직 ‘나’의 관심사만 보여주고, 결국 현재 상태를 공고하게 하는 뉴스 미디어만 소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우리’는 언제나 무조건 옳다고 느끼고, 더 나아가 광기에 빠지게 한다는 지적은 프로아나의 집단행동을 이해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SNS상의 프로아나 계정들, 프로아나는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건강을 망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건강보다 마름이 더 중요하고, 이러한 신념을 공유할 뿐이다. 트위터 캡처

SNS상의 프로아나 계정들, 프로아나는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건강을 망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건강보다 마름이 더 중요하고, 이러한 신념을 공유할 뿐이다. 트위터 캡처

프로아나는 극단적인 다이어트가 건강을 망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건강보다 마름이 더 중요하고, 이러한 신념을 공유할 뿐이다. 관심사와 외모 강박이 비슷한 사용자끼리만 모여 결속하다 보니 현실 감각이 왜곡된다. ‘개말라’가 되면 행복과 선망, 인정이 따라오지만 살찌면 불행하고, 살찐 사람은 자기를 혐오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프로아나 여성들이 무서워하는 60㎏을 넘은 여자인데, 내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두툼한 뱃살과 굵은 다리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든다. 현실의 비만 혐오가 심각한 것과 별개로, 인터넷 환경 속에서 프로아나의 공포는 극단적으로 부풀려진다. 무엇이 이렇게 어린 여성을 내몰았을까?

양육자가 아이를 SNS에 올리며
외모를 평가하는 환경에서
‘마르고 예쁜 것’은 새로운 효도가 됐다



개념부터 차근차근 짚어보자(참고한 논문은 맨 마지막에 표기). 자신의 신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거나 실제보다 크게 혹은 작게 왜곡하여 지각하는 현상이 ‘신체 왜곡(body image distortion)’, 혹은 ‘신체 불만족(body dissatisfaction)’이다. 프로아나는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수치상의 체중이나 타인의 조언이 무용하다. 여성일수록, 나이가 어릴수록, 경제 상태가 낮을수록 신체 이미지를 왜곡할 위험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신체상(body image)’은 “자기 신체에 갖는 의식적, 무의식적 태도의 총합”으로, “개인이 자신의 신체 구조, 기능, 외모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태도와 느낌에 대한 개인 내적인 경험”이다. 미디어는 오랫동안 소수의 ‘이상적 신체’를 과잉 조명하면서 신체상을 일그러뜨리는 주범이었고 스마트폰과 SNS는 이 억압의 그물코를 더 촘촘하고 새롭게 짠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다큐멘터리 속 소녀는 ‘좋아요’ 수가 늘어날 때까지 자신의 얼굴을 보정하고, 나쁜 평가 한 줄에 우울해진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다큐멘터리 속 소녀는 ‘좋아요’ 수가 늘어날 때까지 자신의 얼굴을 보정하고, 나쁜 평가 한 줄에 우울해진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스마트폰이 어떻게 인류를 황폐화하는지 고발한다. 그리고 미국 10대 여성의 자해로 인한 병원 입원율과 자살률이 폭증한 시기가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다큐멘터리 속 소녀는 ‘좋아요’ 수가 늘어날 때까지 자신의 얼굴을 보정하고, 나쁜 평가 한 줄에 우울해진다. 지금의 10~20대 여성은 어릴 때부터 다양한 필터와 보정 기능을 사용하여 ‘다른 얼굴’을 연출하고, 매 일상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인기가 실시간 ‘좋아요’ 수로 수치화되는 데 익숙하다.

연예인도 아닌데 외모 평가와 악성 댓글에 시달린다. Z세대에게 필터와 보정은 기본이고, 그 모습 또한 자신이라고 인식한다. 더 다양한 모습까지 자신이라고 받아들이는 ‘신체상의 확장’으로도 볼 수 있지만, 문제는 비교가 따른다는 것이다. 살아 숨 쉬고 대부분 부어 있으며 매일의 컨디션이 다른 현실의 나는 기억 속 ‘인생 컷’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불일치가 새로운 시대의 신체 왜곡을 강화한다.

또 다른 요인은 ‘인정 욕구’와 ‘자기 통제감’이다. 거식증은 음식 먹는 것을 ‘통제’해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과 보상, 영향력을 확인하는 욕구와도 밀접하다. 프로아나 계정을 살펴보면 ‘예쁜 딸’이 되어 사랑받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많다. 이전의 바람직한 자식 모델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면, 양육자가 아이를 SNS에 올리거나 영유아·청소년의 외모를 일상적으로 평가하는 환경에서는 ‘마르고 예쁜 것’이 새로운 효도가 된 것이다. 이외에도 개인의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방어기제, 혹은 대응 방식(록산 게이는 <헝거(Hunger)>에서 강간당한 후 폭식으로 몸을 불린다), 유전적·신경생물학적 요인 또한 작용한다.

섭식장애는 사회적 구조 때문에 생긴 ‘병’이다
다이어트 관련 기사 하단에도 자살 예방 문구처럼
‘섭식장애는 치료가 필요한 것’이라는 안내문구가 필요한 것 아닐까



보호장치와 규제가 필요하다. 인스타그램에서 #bulimia, #anorexia를 검색하면,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팝업과 함께 사용자가 지원받을 수 있는 조치가 뜨거나, 일부 게시물이 숨겨진다. 그러나 #거식증, #프로아나는 아무런 제약 없이 검색할 수 있다. 프로아나 활동이 가장 활발한 트위터도 마찬가지다. 17년간 앓아온 섭식장애를 기록한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창비, 2021)의 저자 김안젤라는 자살 사건의 기사 하단에 우울증으로 힘든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의 연락처가 표기되듯, 다이어트 관련 기사에도 섭식장애는 치료가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섭식장애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구조 때문에 생긴 병이기 때문이다.

📌 “칭찬 한 마디로도 섭식장애가 될 수 있어요” 8년간의 섭식장애 극복하는 법

하긴, 다이어트나 몸매 이야기는 미디어와 일상에 공기처럼 퍼져 있어 들이마시지 않고 대화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나쁜지에 대한 인식은 부족하다. 오랫동안 누적된 몸 억압과, SNS의 폐해가 교차하는 때 누군가 청소년기를 보내고, 그중 취약한 사람이 프로아나가 된다. 프로아나는 일부 철없는 10대들의 이상 행동이 아니다. 사회적 질병이고 상징적인 현상이다.

개인적으로는, 몸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부터 실천할 수 있다. 칭찬까지 포함해 ‘보디 토크’ 하지 않기. 또 내 이야기다. 한때 13㎏을 뺀 적 있다. 가는 곳마다 축하와 칭찬을 들었다. 그런데 한 모임에서만은 아무도 그 큰 변화를 알아주지 않았다. 서운했다. 그러나 다시 체중이 불어났을 때, 유일하게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만은 두렵지 않았다. 내 몸이 어떻든, 내가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너무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은 공동체가 방공호가 되기도 한다. 프로아나의 세상이 ‘살이 찌면 끝나’는 것이라면, ‘살이 쪄도 그럭저럭 괜찮은 세상’도 존재한다고 알려주고 싶다. 작아도 엄연히 존재하고, 그 거대한 불안과 공포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다이어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신발 안의 돌멩이처럼 좀 거슬려도 그럭저럭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참고 논문>

맹성준·한창근, ‘청소년의 신체 이미지 왜곡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 : 스트레스의 매개 효과를 중심으로’, 보건사회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권미선·최승원, ‘20대 여성의 신체상 왜곡과 신체불만족에 관한 연구’, 문화와 융합 제42권 12호, 한국문화융합학회, 2020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

※정신적 고통 등 주변에 말하기 어려워 전문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자살예방핫라인(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에서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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